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김강미 지음 / 봄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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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저절로 기분 좋아지는 말 아닐까요?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라니. 일하지 않는다는 게 돈을 벌지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이 전부였던 인생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천직이라 굳게 믿은 일 때문에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김강미 에세이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일 말고 다른 것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는 말들이 가득합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일에서 벗어나는 것. 일상을 새로 고치고, 새로 느끼고, 새로 다듬고, 새로 채우고, 새로 즐기는 일상 새로 고침 프로젝트는 할 만큼 했는데 숨 막히는 시점이 찾아오는 바로 그 시기에 요긴한 조언이 될 겁니다.


"익숙한 그곳을 과감히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도 없으니까~" -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30대를 상납한 광고 회사를 퇴사한 김강미 저자. 직장인 신분에서 백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결심을 했을까요. 물려받은 재산은 없고, 직장 생활하며 쓸 시간이 없어 모였던 돈 정도만 쥐고 있었지만 일단 푹 쉬어보기로 합니다. 갓 퇴사한 시점에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도, 또 그것을 향해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지겨운 시기니까요.


직장 다니다가 그만두고 쉬면 처음엔 프리를 만끽할 테다 싶다가도, 뭔가를 할 때마다 다들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하며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자책감에 빠지며 제대로 쉴 줄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소설을 읽다가도 자기계발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독서조차 일을 위한 도구, 일을 위한 발견 즉 일을 위한 해결책에 불과했던 습관 때문입니다.


회사를 떠난 후 삶의 기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일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를 해도 자꾸 잊게 되고 조급한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백수 생활 3개월을 넘어서니 정작 주변에서 더 걱정입니다. 뭐하고 살지 생각해야 되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찌릅니다.


여전히 남은 생에 대한 그 어떤 플랜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럴수록 그동안은 남에 의해 흔들리는 인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좋은 날이란 것도 남이 좋아해야 좋은 날이 되더라고 말이죠. 나의 좋은 날의 중심에는 정작 내가 없었습니다.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에서는 퇴사 전후의 심정을 생생하면서도 담담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자." -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일상의 무료함이 닥치기도 해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을 받아 생계유지를 하기도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발견해나갑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시작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느낀 감정도 고백합니다. 책임을 내려놓고 일을 맞이하니 모든 게 달라지더라고 말이죠. 머리와 몸이 오히려 유연해지더라고 합니다. 프리랜서라고 꼭 혼자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비슷한 업종끼리 한곳에 모여 각자의 일을 하면서 의외의 시너지를 만끽할 수도 있다고도 하고요.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거절하는 법을 배웠다는 겁니다. 해도 안 될 것 같은 일,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노력만으로 밀고 나가던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결정의 중심에 오롯이 나를 두는 일을 이제는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또 다른 나를 발견해나가고 이끄는 과정은 40대에 일본 디자인 학교로 4년간의 유학을 하면서 정점에 달합니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다 투자한 셈입니다. 한자 까막눈이의 일본 유학 적응기를 읽다 보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생활이었기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덜 느껴지더라고요.


바쁠 때는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내려놓으니 그제서야 찾을 수 있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학생이 되었던 용기, 세상으로부터 달아난 게 아닌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인상 깊습니다.


이 선택에 책임을 묻기보다 응원하며 살겠다는 저자처럼 지금 하는 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망설이는 이들이 읽는다면 걱정을 덜어줄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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