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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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방영된 미드 <핸드메이즈 테일>의 원작소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최근엔 <시녀 이야기 그래픽노블>도 출간되어 영상과는 또 다른 생생함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요, 원작이 1985년도 작품임에도 오늘날 여전히 격공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철저히 억압된 길리어드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통제 사회의 면면을 보여준 <시녀 이야기>.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후속작 <증언들>이 34년 만에 출간되었어요! 게다가 2019 부커 상을 받았으니, 긴 세월 동안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계급에 따라 색깔로 구분된 드레스와 하얀 모자가 인상적인 길리어드 공화국의 여성들. 이번 <증언들> 소설의 메인 이미지는 <증언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상징하는 그림이 교묘하게 겹쳐져 있습니다. 꼭 숨은그림찾기 하듯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한국어판 책 띠지를 제외하곤 앞, 뒤 커버에 어떤 소개글도 없이 제목, 작가명, 이미지만 눈에 띄게 디자인된 점도 인상적입니다.





소설 <시녀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서 길리어드 공화국의 패망을 접할 수 있었는데, 다들 궁금한 점은 비슷비슷했을 거예요. <증언들>은 길리어드 공화국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트리거가 된 시점을 보여줍니다.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공포 체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체할 수 있었는지 그 여정을 여성 세 명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시녀 이야기>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마녀 같은 모습을 보여준 리디아 '아주머니'가 첫 장면을 시작하길래 깜짝 놀랐어요. 비밀 은신처에서 원고를 쓰는 리디아 아주머니라니. 길리어드 공화국의 더러운 비밀 정보를 많이 아는 리디아 아주머니는 권력 상위층에 속해있습니다. 그런데 왜 목숨을 걸고 고발 문서를 쓰고 있는 걸까요.


<증언들> 표지 디자인의 초록색이 상징하는 인물인 아그네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령관과 결혼하도록 예정된 선택받은 아이들 중 한 명인 아그네스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습니다. '시녀'의 아이로 태어나 사령관의 딸로 입양되어 키워진 아그네스의 눈으로 바라본 한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모습, <시녀 이야기> 주인공이었던 시녀 오브프레드의 눈으로 바라봤던 이야기들과 맞물려 있으면서도 또 다른 관점으로 보여줍니다.


"내가 듣는 것들은 대체로 조각조각 쪼개지고 심지어 침묵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 파편을 맞추어 말하지 않은 문장의 빈칸을 채워 넣는 재주가 늘고 있었죠." - 증언들





의외의 인물이 첫 장면에 등장해 놀랐을 정도로 리디아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흥미를 돋웁니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탄생되어 체제를 갖춰나가는 과정에 기여한 인물이기에 그렇습니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법, 유니폼, 슬로건, 찬송가, 이름들을 정한 창설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직책 높은 '사령관'에게 배당되는, 출산을 위해 종족 번식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시녀'. 사령관과의 결혼 관계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시녀를 들여야 하는 '아내'. 이런 체제가 잘 돌아가도록 여자를 교육하고 관리하는 '아주머니'.


판사에서 여성들을 계몽시키는 '아주머니'가 되기까지 리디아 아주머니의 고백이 담담히 이어집니다. 길리어드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중년의 전문직 여자들이 겪은 극악의 체험. 그곳을 거치고 나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될 뿐입니다. 돌팔매질을 당하기보다는 돌을 던지는 편이 낫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희망을 없애고 기대치를 낮추는 길리어드 공화국의 작업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뤄집니다.


"궁지에 몰리면, 자기 자신의 악몽 말고는 아무것도 흥미롭지 않고 의미도 없다." - 증언들 


사령관의 '아내'가 될 운명인 아그네스는 특권층 집안에 속하면서도 결혼의 굴레에 구속받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초록 드레스를 입고, 예비 신부 학교에서 고위직 가문의 안주인 노릇 하는 법을 배웁니다. 순종, 굴종, 온순의 미덕을 요구하는 길리어드에서 결국 아그네스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증언들>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한 명의 인물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소녀입니다. 호기심에 길리어드 규탄 시위에 참가해보는 아직 철없는 십 대 소녀입니다. 하지만 이 소녀의 출생에 담긴 비밀이 드러나면서 본격 길리어드 공화국 흔들기가 진행되니, 꽤 중요한 인물이랍니다.





<시녀 이야기>의 시녀 오브프레드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찾지 못했던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의 궁금증을 <증언들>에서 답해줍니다. 이번엔 좀 더 닫힌 결말을 내리려고 한 듯한데 (재회 장면이랄까) 그 부분은 솔직히 저는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대신 리디아 아주머니의 빅 피처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주머니의 큰 그림에 혀를 내둘렀네요.


"모든 건 타이밍에 있다. 농담이 그렇듯." - 증언들 

공포가 어떻게 한 인간을 마비시키는지 보여준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 어떻게 순식간에 세상을 바뀔 수 있는 건지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역사적으로 이미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오싹해집니다. 극악의 공포로 인한 포기는 감염성이 강하고, 뉴노멀이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새로운 규범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어요. 하지만 그 체제가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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