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 북한 작가 김주성의 남한에서 책 읽기
김주성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1월
평점 :
책으로 한국을 알아가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파악하며 살아가는, 북한 출신 작가 김주성의 서평 에세이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탈북 11년 차 된 김주성 작가는 방송을 통해 낯설지 않은 분이셔서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재일조선인 3세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년을 보내고 10대에 조부모님을 따라 간 북한에서 30여 년을 살다가 2009년 대한민국의 시민이 된 그의 이력부터 눈길을 끕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놀림당했고, 북한에서는 쪽발이라 불리며 환영받지 못하는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김주성 작가의 삶이 녹아든 문장 하나하나가 와닿는 책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북한에서 소설가로 활동한 저자는 정작 이곳에서는 소설책 한 권 펴내지 못했다며 자조하지만,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한국을 알아나가고, 한국인으로서의 삶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으니 헛된 시간을 보낸 건 절대 아니지요.
와중에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일으켜 세운 계기가 된 책이라고 합니다. 탈북 작가로 끝나는 게 아닌, 현직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의욕을 다진 책인 만큼 김주성 작가의 소설도 언젠가 읽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고서는 탈북에 대한 예언서라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라며,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몸소 겪은 생생한 경험담이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의 북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포인트들을 들여다보면 선입견과 편견을 고수한 채 북한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깨닫기도 했어요.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솔직히 다를 게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준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서는 탈북자들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자임을,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끝없는 모색, 의지, 노력을 펼치며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알던 한국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좋은 것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현재의 행복을 위해 거쳐온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그에게 정신적 진정제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인상 깊게 읽은 책이라고 합니다. 문학조차도 사상 교양의 무기로, 선전선동 수단의 양식으로 이용된 북한에서의 삶과 이곳에서의 삶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작가에게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책입니다.
그 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로 5·18민주항쟁을, 안은별의 《IMF 키즈의 생애》로 고난의 90년대 한국 사회를, 《금요일엔 돌아오렴》으로 세월호 참사의 고통 등 현대사의 아픔을 대면합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흔적은 남아있다는 말 한마디에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그의 삶도 위로받았다는 그는 우리들에게도 소망합니다. 현재를 이르게 한 과거의 분투를 잊지 말 것을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자극하는 문장이 많은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한국 작가의 책만 소개된 게 아니라 조지 오웰 《1984》, 맷 타이비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에리크 쉬르데주 《한국인은 미쳤다!》 등 인권, 자유 등에 관한 다양한 책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김주성 작가의 시선 덕분에 저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욤비 토나, 박진숙의 《내 이름은 욤비》처럼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어요.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고선 개인의 관점과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음에 놀라웠다는 작가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누려온 것들이 그에게는 이렇게 비쳤구나 하며 주목하는 포인트가 다른 점이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를 읽고는 음식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신기했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저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콕 짚어준 셈입니다.
이렇다 보니 저야말로 책으로 한국을 좀 배워야겠단 생각이 절절히 드네요. 너무 익숙해 관심 두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넛지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