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 - 여자들에게만 보이는 지긋지긋한 감정노동에 대하여
제마 하틀리 지음, 노지양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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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사이다인 이 책의 탄생 계기가 된 사건은 남편에게 부탁한 청소업체 부르기였습니다. 이게 단순히 청소 자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남편은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전화를 돌리지 않고, 추천받지 않고, 검색과 비교도 하지 않고, 비용 지불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시간 약속을 잡지 않아도 일이 해결되어 있길 바랐던 아내의 마음. 이것은 수만 가지를 신경 쓰게 하는 감정노동에서 잠시라도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남편의 대처는... 대부분의 아내라면 눈치챌만한 바로 그 행동입니다. 뭉그적거리다가 자기가 직접 청소하겠다는 말과 함께 결국 청소는 제대로 되지 않고, 아내의 노여움을 유발하게 하는.

 

"어느 누구도 내가 요구하기 전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 책 속에서

 

남편이 청소 중 꺼내둔 수납상자는 이틀 동안 아무도 치우지 않은 채 있었고, 결국 아내가 다시 끙끙거리며 치우니 그제서야 "나한테 올려놓으라고 말하지 그랬어"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이런 사례는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집안이 돌아가게 하는 모든 시스템에 일괄 적용되고, 아내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이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폭발합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소진시켜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큰 싸움으로 이어지거나.

 

 

 

"나는 당신한테 하나하나 시키기 싫단 말야." - 책 속에서

 

가시적 결과를 내기 위해 밟아야 할 정신적 단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이 집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의 반도 의식하지 못하는 남편. 도움이 필요하면 부탁하면 되지 않느냐는 그 말이 아내의 분노를 일으킵니다. 왜 '돕기'로 인식하는 걸까요. 아내는 관리 감독, 지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청하고, 좋은 말로 부탁하기는 추가되는 감정노동일 뿐이니까요.

 

1983년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는 여성이 가정에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의 저자 제마 하틀리는 감정 관리와 생활 관리가 결합된 감정노동을 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대가 없이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책은 정신을 소진시키고 육체를 지치게 하는 감정노동의 부정적 역할의 다양한 사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를 읽으며 온갖 행태(!)에 폭풍공감하며 읽게 됩니다. 무엇보다 나는 악녀가 아니었고, 나만 이상한 아내였던 게 아니었다는 안심을 하게 된 책이랄까요. 무엇보다 아내 스스로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돕기와 책임지기에 관한 차이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된 책입니다.

 

감정노동이란 건 사실 해악이 아닙니다. 돌봄, 공감, 연민 등이 통합된 소중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감정노동은 너무나도 경시되어 있고, 불균형의 극치입니다. 생활의 사소한 모든 부분을 책임져주는 아내가 있기에 여러 면에서 편하다는 것에 만족한다면, 가정에서의 남편 위치는 어디쯤에 있게 될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뿐이었다. 나도 몰라!" - 책 속에서

 

돕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의 역할 구분은 육아에서 정점을 달합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자연히 다음 단계를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정답을 알아내야 하는 건 엄마입니다. 육아하는 남편은 희귀종으로 바라보는 사회 속에서 여성의 감정노동을 당연시 여깁니다.

 

돕는다는 건 "이건 당신 책임"이라는 의미와 같다고 합니다. 동등한 태도로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이 가정에 필요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현명한 여성들은 알고 있습니다.

 

감정노동 불균형 문제는 오로지 남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도와주려는 남자들의 시도까지 막는 결과를 낳는 아내의 기대치 조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저 마음 편히 먹고, 기대치 낮추는 정도만으로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다가가지 못합니다.

 

감정노동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감정노동을 무시할 때 자기 삶의 수동적인 구경꾼이 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저자 역시 전업주부, 워킹맘, 남편의 실직 등을 경험했지만 가정의 감정노동을 도맡는 건 언제나 본인이었다고 자조합니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건, 집에 있건, 돈을 벌건 그런 건 감정노동의 강도를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감정노동의 변화를 갈망하는 여성이지만 "내가 안 하면 누가 해요. 아무도 안 해요."를 답습하며 결국 아내가 다 해치우거나, 여자들은 원래 그런 일을 더 잘한다는 여성성 신화 등 악순환 고리에 갇혔습니다.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는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오는 불만과 스트레스 사례를 소개하며,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을 남편은 소수일 테지만 어쨌든 내 감정노동을 알아봐 주길 소망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내 아들은 가정에서의 감정노동을 돕는 처지가 아닌, 함께 책임지는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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