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과 신호 - 당신은 어느 흔적에 머물러 사라지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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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접목해 인간 성찰,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책을 선보였던 시인이자 정신분석상담사 윤정 저자. 신간 <흔적과 신호>는 그동안의 여정이 집대성되어 더욱 탄탄한 체계를 갖춘 느낌을 받았습니다.

 

철학, 사회학, 윤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외에도 물리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면역학 등의 기초적 개념을 두루 살펴 인간을 성찰하고 있는 <흔적과 신호>. 기술의 발달에도 행복보다는 불안과 우울의 확장이라는 폐해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 윤정 저자는 역사의 흔적 속에서 성찰의 힘을 얻고자 합니다.

 

 

 

역사 속 인간 사유와 존재에 대한 고민들을 윤정 저자는 흔적이라고 명하고, 이 시대 우리에게 전해진 그들의 해결방안을 신호라고 명명합니다. <흔적과 신호>에서는 39명의 물리학자, 철학자, 정신분석가들이 시대의 고민을 삶을 통해 해결한 흔적과 신호를 보여줍니다.

 

 

 

흔적, 신호와 더불어 그 고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설을 더한 '정보', 윤정 저자의 목소리를 더한 '시선'까지. 우리가 성찰해볼 필요가 있는 주제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철학, 이데올로기, 종교 등 문명을 되돌아봄으로써 사유와 존재의 주체인 인간의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제의 서두를 여는 흔적 파트에서는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초반 진입 장벽이 없진 않았지만,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숲에 비유한 문학적 표현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숲속의 나무들은 떨어진 낙엽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라며 모든 것을 그대로 품는 숲을 인간의 자아 이야기와 연결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신호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탄생되는 과정, 정보를 통해 그 시대의 보편적 질서의 흐름을 이야기하며 인류가 시대마다 어떤 고민을 했는지 선사에서부터 중세, 근대 등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봅니다. 이 과정에서 익히 들어본 인물들이 등장해 낯설지 않았습니다.

 

자아에 대한 생각도 불변이 아닌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온 점을 짚어줍니다. 모든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고받는 흔적을 남기고 흔적 속에 머문 신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합니다. 이게 자아이고요.

 

존재와 사유는 자극의 물리적 정보가 누적되어 정신적인 것으로 바뀐 결과물이라며 중세에는 자아 역시 신에 의한 질서에 따라다녔다는 걸 짚어줍니다. 새로운 철학과 과학의 질서가 요구되는 시기에는 또 다른 자아 개념이 등장합니다. 데카르트, 데이비드 흄, 칸트 등 시대에 따라 자아의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다 보면 단순히 인물별 철학사를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윤정 저자 특유의 문학적 언어 표현은 이 책에서도 빛을 발휘합니다. 흔적과 신호, 정보, 시선 간에 저마다의 독특한 문체 덕분에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다가도 어느새 과학 책을 읽는 듯한 서술이 조화롭게 펼쳐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민한다는 것은 곧 자아에 대한 의문과도 같고, 이 책에 등장한 고민들은 한결같이 자아로 귀결합니다. 내 존재를 성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과학적 현상 속에서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치료 대안을 제시하는 윤정 저자. 프로이트와 라캉의 계보를 이어오면서도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지금까지 읽은 윤정 저자 책 중에서 가장 어렵게 다가오긴 했지만 그의 이론이 집대성된 책인 만큼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볼 만한 가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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