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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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된 60대 페미니스트 페이스와 20대 사회 초년생 그리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의 설득>. 교양인문 책 비주얼이지만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메그 월리처 작가의 소설입니다. 10년간 경제적 독립을 실현할 기회를 잃어버린 기혼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10년간의 낮잠』, 남편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묻은 아내 이야기 『더 와이프』(동명 영화 원작 소설) 등 메그 월리처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대학 신입생 그리어를 포함해 여러 여학생들이 당한 성추행 사건. 결과는 가해자에게 내려진 물처분 뿐입니다. 형식적인 예의로 또는 모호한 대답조차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라고 해석하며 무례하게 접촉한 성추행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와 스스로 묻어버리기로 마음먹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그리어는 단짝 친구 지와 함께 부당함을 알리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마침 미국 여성운동에 영향력 있는 60대 페미니스트 페이스의 강연에 참석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그리어는 페이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현재의 방식에 관해서요. 지금 느껴지는 방식이요. 마치 벽지처럼 사방에 존재하며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여성혐오 같은 것들이요. 제 말뜻 아시겠어요? 21세기에도 여전히 이게 용인되고 있는데, 왜 그런거죠?" - 여성의 설득

 

 

 

<여성의 설득>은 소설 속 페이스가 남성우월주의에 맞서 균형을 강조한 「여성의 설득」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페이스의 강연은 그리어에게 한 마디로 "머리가 쪼개져서 열린 것" 같은 인상을 남깁니다. 자신의 인생을 형성하는 데 이용하는 개인주의적 페미니즘, 더불어 모든 여성이 원하는 각각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걸 목표로 다른 여성과 연대하는 자매애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사회적, 정치적 역할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를 준 페이스의 이야기는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여성들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로부터 외부적 목소리를 써보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을 받은 그리어는 대학 졸업 후 페이스와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여성의 설득>은 그리어의 시선뿐만 아니라 그리어의 남자친구 코리, 단짝 친구 지, 그리고 페이스까지 각자의 시점에서 진행하며 전환되는 방식이 딱딱함을 덜어줍니다.

 

 

 

1970년대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는 페이스의 이야기는 작은 깨달음이 중요한 인식의 방향을 잡아주고 거기에 대해 뭔가를 하게 만드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가족의 비극을 수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제2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그리어의 남자친구 코리에게서는 그리어에게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방식의 페미니즘을, 여성성이라는 덫을 싫어하는 친구 지에게서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성들의 연대 뒤에 숨겨진 야망, 욕망, 배신 코드도 빠질 수 없습니다.

 

"남은 평생 다시는 성적을 받을 일이 없으니까 이제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겉보기에 어떤지 같은 건 잊어버리고. 어떤 일인지만 생각해." - 여성의 설득

 

<여성의 설득>은 고급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 페이스의 여성운동과 함께 여러 방식으로 세상에 펼칠 페미니즘의 미래를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이 여정에서 놓칠 수 없는 건 바로 관계의 힘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행동한 페미니스트들의 유산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페미니스트 세대 간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다양한 캐릭터로 보여준 <여성의 설득>. 의미를 찾는 여성들에게 권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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