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의 역사 - 우리와 문명의 모든 첫 순간에 관하여
위르겐 카우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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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직립보행한 사람은? 맨 처음 말을 내뱉은 사람은? 맨 처음 세워진 도시는? 맨 처음 종교를 만든 사람은?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원에 대한 문제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책을 읽는 내내 절감합니다. "그게 이렇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만으로 끝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섣불리 정답을 내놓을 수도 없습니다.

 

역사를 만든 인류 문명의 첫 순간을 다룬 인류문화사 책 <모든 시작의 역사>. 가벼운 호기심으로 덤벼들었다가 꽤 식겁한 책이기도 합니다. 질문 속에 담긴 의미가 하나씩 펼쳐질때마다 일부 지식만으로 결론을 도출해보려고 했던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모든 시작의 역사>에는 기술적인 발명품은 다루지 않습니다. 문자, 예술, 법, 언어, 종교, 정치적 지배 등 인간 사회의 시작을 이야기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상상했던 목적으로 생겨난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어째서 생겨났는지 시작들에 대한 의문은 철학적인 질문에 가깝습니다.

 

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발명자가 없다.​ #책속한줄

 

 

 

네 다리 영장류가 똑바로 일어나서 걷고 난 뒤 '인간직전' 원숭이라 불리기까지의 공백.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대체 왜 두발걷기가 진화 과정에서 살아 남은 것일까. 애초에 두발걷기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원숭이가 더 멀리 내다보려고 똑바로 일어섰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우리의 단편적인 사고방식을 짚어줍니다.

 

말하기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발전된 것도 아니고, 물물 교환을 하다 돈이 생겨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특수한 생활 방식 때문에 생기는 법도 없었고 갑작스런 습격 같은 시작 따윈 없었습니다.

 

<모든 시작의 역사>에서 다룬 주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함께'이기에 시작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독일어권 최고 권위의 저술상을 수상하며 인류 문화사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인정받는 위르겐 카우베 저자의 관점은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인과관계를 따지기 쉽지 않은 주제를 사회적 맥락으로 바라보며 차근차근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일부일처제가 사회적 기대를 담은 롤모델이라는 이야기도 재밌더군요.

 

우리가 아는 것들은 과정입니다. '시작'이라는 개념이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해답을 찾아가는 이 책 역시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인류 문명사에 등장한 숱한 가설들을 체크하다보면 우리가 아는 얼마 안 되는 지식에 매달려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됩니다.

 

분명한 건 시작들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는 사실입니다. 단 한 가지 원인 덕에 생겨나는 건 없었습니다. 시작들에 대한 탐색, <모든 시작의 역사>. 다양한 모델이 등장하고 완벽한 결론은 없지만,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폭넓은 이해력이라는 성과를 안겨주니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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