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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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 매리언 울프는 전작 <책 읽는 뇌>를 통해 읽기가 어떻게 뇌를 변화시키고 인간의 발달에 기여했는지 읽기와 뇌의 관계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10년 새 우리의 세상은 변했습니다. 예전엔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해력과 단어 중심 문화였다면 이제는 즉각성, 빠른 업무 전환, 끊임없는 주의 환기를 조장하는 디지털 스크린 기반 문화입니다.

 

10년 만의 신작 <다시, 책으로>에서는 인간의 후천적 능력인 읽기 능력이 SNS식 글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인지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시, 책으로>에서는 글, 텍스트를 잘 읽는다는 것은 깊이 읽기 과정에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느냐에 달렸다는 전작 <책 읽는 뇌>의 핵심 내용이 먼저 나옵니다. 전문적인 주제임에도 편지글 형식이라 집중이 잘 되고 수월하게 읽히는 느낌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초고속으로 글자를 인식해 뇌가 읽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경이로운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단순히 일렬도 아닌 지그재그, 앞뒤를 오가고 상호작용하며 읽는 뇌. 무의식적이 읽던 행위가 이토록 고도의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었다니. 단어 하나 읽을 때 수만 개의 뉴런 작업군이 활동한다고 합니다.

 

문장으로 넘어가면 새로운 인지 영역으로 높은 수준의 깊이 읽기 과정을 보여줍니다. 신기한 건 소설 한 편을 집중해서 읽을 때와 단순히 재미로 읽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다르다는 겁니다.

 

글을 읽을 때 일어나는 통찰을 경험하게 해주는 깊이 읽기를 했을 때는 타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이 생깁니다. 지난 10년 새 우리의 공감 능력이 40퍼센트나 감소했다는 수치는 예전 문화에 비해 디지털 기반 문화일 때 나타나는 폐해를 짐작하게 합니다.

 

깊이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읽기'가 인간의 후천적 능력이듯 '깊이 읽기' 역시 결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배경지식, 유추와 추론, 비판적 분석이 필요한 게 바로 깊이 읽기입니다. 주의의 질이 높아야 가능한 행위라고 합니다.

 

 

 

tl; dr 을 아시나요? 너무 길어 읽지 않는다는 신조어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정보 양은 약 34기가바이트라고 합니다. 읽는 양은 늘었지만 깊이 읽기와 깊은 사고는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줄었습니다. 우리의 읽기 변화는 이미 이뤄진 셈입니다. <다시, 책으로>를 읽으며 가독성이 좋은 책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가독성이란 점점 짧고 간결해진 문장, 듬성듬성 읽어도 이해되는 문장이라는 것을요.

 

건너뛰는 방식으로 읽는 이 시대의 읽기 스타일은,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거나 반대로 사용할수록 성장하는 뇌의 가소성 때문에 실제적으로 우리 뇌를 변화시켰습니다. 뇌 회로가 디지털 매체에 익숙하게 변한거죠. 매리언 울프는 인간의 언어를 잘 양육되면 무한한 창조의 힘과 집단적 지능 발전을 도모하지만, 그 역도 가능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냅니다. 읽기가 그 자체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쓰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지니까요.

 

기성세대가 '중독'이라 부르던 것들을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당연시 여기게 되는 세상에서 사실 '다시, 책으로'라는 인쇄 기반 문화 접근성이 통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의문에 저자는 해법을 내놓습니다.

 

바이링구얼에서 비책을 찾은 겁니다. 이중언어 학습자처럼 인쇄 기반과 디지털 기반 읽기와 학습의 다양한 형식을 아이들은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이죠. 매체에 상관없는 리터러시 능력, 즉 양손잡이 읽기 뇌를 키우면 된다고 말입니다. 양손잡이 읽기 뇌는 빠르게와 느리게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며 비판과 추론적 사고를 기반으로한 집단 지성의 민주사회를 이끌어나가는데 필요한 읽기 능력입니다.

 

 

 

<다시, 책으로>는 어떻게든 인쇄 기반 문화에서 작동한 뇌를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디지털 기반 문화에서의 뇌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채롭게 작동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기반 문화를 피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아직은 두 문화가 섞인 지점이라 그에 맞는 해법이 있고, 디지털 스크린 읽기로 완벽하게 대체되는 세상이 오기 전엔 매리언 울프가 말하는 바를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균형을 찾게 도와줘야한다는 매리언 울프의 조언은 그 과정에 숱한 한계와 장애물이 놓여져있지만, 깊이 읽기와 깊은 사고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허투루 넘길 사안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의 읽기 회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흥미진진한 사례와 실험 결과를 덧붙여가며 깊이 읽기에서 멀어진 이 시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다시, 책으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인간에게 깊이 읽기가 의미하는 바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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