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참 간사하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일드가 재미가 없었다. 감정 표현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딱 그만큼의 감정 표현밖에 안 하는 드라마를 본다는 게,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유치하더라도 같이 웃고 싸우고 미워하고 헐뜯는, 한드가 낫겠다며, 일본 아줌마들이 한드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얼마 전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드라마를 두 편 보내줬다. 그중 한 편이 <카모메 식당>스러운 분위기, 출연했던 주인공들이 나오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담은 드라마로, 편집자 출신 주인공이 식당을 하던 엄마가 돌아가시자 그 가게를 물려받아 자신만의 샌드위치 가게를 연다는 내용이다. 늘 그렇듯 몇몇의 등장인물, 고양이 한 마리, 정갈한 음식과 인테리어가 는적는적하게 흐르는,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특별할 것 없이 사람 따위,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따위, 지금 내가 있는 여기에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것인데, '그 특별하지 않음'이 왠지 나쁘지 않게 보였다. 그동안 특별해지려 지나치게 애써왔던 건 아닐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걸 망각해왔던 건 아닐까. 일상을 꾹꾹 눌러 담은 드라마 한 편이, 알고 보면 괜찮은, 나의 일상은 아닐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일순 행복해지는 삶인 것을, 근 몇 달간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순간순간의 미세한 떨림과 흥분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2013-09-02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난 밥과
사랑스러운 하루
늘 즐겁게 누리면
웃음꽃 피어나는 이야기 찾아들겠지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02 15:08   좋아요 0 | URL
'맛난 밥'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끼니를 대충 때울 때를 보면,
삶도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아주 맛나게 지어서 아주 맛나게 먹어볼까나. :)

잉크냄새 2013-09-0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일상이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 있죠.
삶이 소소함과 번잡함의 줄타기로 이루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랫만이네요. 방긋.(이모티콘을 줄여보고자 방긋을 써 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9-02 15:07   좋아요 0 | URL
정신 없이 바쁘다가 한가해지니까 소소한 일상이 하찮게 보였나봐요.
삶이 그러한 것을!!!
그나저나 잉크 님도 정말 오랫만이네요. 저도 방긋, 으로 화답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