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참 간사하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일드가 재미가 없었다. 감정 표현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딱 그만큼의 감정 표현밖에 안 하는 드라마를 본다는 게,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유치하더라도 같이 웃고 싸우고 미워하고 헐뜯는, 한드가 낫겠다며, 일본 아줌마들이 한드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얼마 전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드라마를 두 편 보내줬다. 그중 한 편이 <카모메 식당>스러운 분위기, 출연했던 주인공들이 나오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담은 드라마로, 편집자 출신 주인공이 식당을 하던 엄마가 돌아가시자 그 가게를 물려받아 자신만의 샌드위치 가게를 연다는 내용이다. 늘 그렇듯 몇몇의 등장인물, 고양이 한 마리, 정갈한 음식과 인테리어가 는적는적하게 흐르는,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특별할 것 없이 사람 따위,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따위, 지금 내가 있는 여기에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것인데, '그 특별하지 않음'이 왠지 나쁘지 않게 보였다. 그동안 특별해지려 지나치게 애써왔던 건 아닐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걸 망각해왔던 건 아닐까. 일상을 꾹꾹 눌러 담은 드라마 한 편이, 알고 보면 괜찮은, 나의 일상은 아닐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일순 행복해지는 삶인 것을, 근 몇 달간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순간순간의 미세한 떨림과 흥분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