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이 나의 독서 황금기였다.
어느 방학, 매일 동네서점에 가서 천 원~천오백 원 하는 범우사 문고를 한 권씩 사서 하루에 한 권씩 독파하는 재미에 살았다. 헤밍웨이며 도스도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은 다 그때 접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보다는 그냥 하루에 한 권씩 냠냠 헤치우는 그 맛이 참 좋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요새도 책을 꿀떡꿀떡 삼키는 재미에 읽기도 하지만
아마 대량으로 섭취했던 어린 시절의 독서량이 내 삶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도서정가제!라고 하니까 천 원이면 책 한 권 살 수 있는 시절도 있었구나, 싶다.
머리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책이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역시나 먹을 수 없는 '책'을 사려고 할 때는 고민이 되는 게 실상이기도 하다.
나 역시 스스로 돈을 벌며 나 혼자 써도 될 때에는 한 달에 열 권은 기본으로 책을 사제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책 한 권이면 삼겹살 두 근'식의 계산법이 생겼고,
도서관을 애용하기 시작했으며, 도서관에 없는 책들을 볼 때마다 분개하고, 진정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책들을 위주로 구매했다.
도서정가제가 되면 어떻게 달라지려나.
진정 합리적 가격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윤리를 따를 것인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늘 책을 사는 사람과 영화는 매주 보면서 책은 일 년에 한 권도 안 사는 사람들의 수가 늘거나 주는 데는 별 영향을 안 끼칠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별 수 없겠지란 체념이 먼저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