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이 나의 독서 황금기였다.

어느 방학, 매일 동네서점에 가서 천 원~천오백 원 하는 범우사 문고를 한 권씩 사서 하루에 한 권씩 독파하는 재미에 살았다. 헤밍웨이며 도스도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은 다 그때 접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보다는 그냥 하루에 한 권씩 냠냠 헤치우는 그 맛이 참 좋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요새도 책을 꿀떡꿀떡 삼키는 재미에 읽기도 하지만

아마 대량으로 섭취했던 어린 시절의 독서량이 내 삶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도서정가제!라고 하니까 천 원이면 책 한 권 살 수 있는 시절도 있었구나, 싶다.

머리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책이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역시나 먹을 수 없는 '책'을 사려고 할 때는 고민이 되는 게 실상이기도 하다.

 

나 역시 스스로 돈을 벌며 나 혼자 써도 될 때에는 한 달에 열 권은 기본으로 책을 사제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책 한 권이면 삼겹살 두 근'식의 계산법이 생겼고,

도서관을 애용하기 시작했으며, 도서관에 없는 책들을 볼 때마다 분개하고, 진정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책들을 위주로 구매했다.

 

도서정가제가 되면 어떻게 달라지려나.

진정 합리적 가격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윤리를 따를 것인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늘 책을 사는 사람과 영화는 매주 보면서 책은 일 년에 한 권도 안 사는 사람들의 수가 늘거나 주는 데는 별 영향을 안 끼칠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별 수 없겠지란 체념이 먼저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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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2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마음님과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군요. 삼겹살 두 근이면 책 한 권 ㅎㅎ
엄마도, 친구들도 너는 돈만 생기면 책을 사냐고... 쓸데없다고! 그렇게 닦달을 하는데 저는 책수집광이므로...
도서정가제를 저는 참 내키지 않아하는데, 그 이유는 제가 아직 학생이라 돈이 없어 책값이 조금이라도 싸면 훨씬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저도 나중에 글삯으로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라는 이기적인 것이고요. 저는 빌린 책을 잘 못 읽거든요. 무언가 반납 기한이 정해져있다는 게 구속으로 다가오고, 빌린 책이라 메모도, 밑줄도 못 긋잖아요. 그러니까... 제말은... 아 모르겠습니다. 하는 대로 따라야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1-23 13:2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도서정가제를 찬성해야 할지 반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점점 사라지다 못해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동네책방을 생각하면 찬성해야 할 것 같고, 과연 출판사가 거품을 빼고 합리적인 정가를 책정할지 의심스러우니 반대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제가 찬성/반대를 생각할 때 '제가 져야 하는 부담'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네요. 좋은 책이 있으면 삼겹살 세 근 가격이라도 전 살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한우 세 근' 이상의 가치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고요. 물론 그런저런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린다는 전제하에 ㅋㅋ(일단 도서관이 많이 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찌됐든 책을 사랑하는 이진님께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

숲노래 2013-01-2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 님은 돈이 적으면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보셔도 되지요.

..

저는 고등학생 때 문고판은 500원 주고 사서 보았습니다 ^^;;
때로는 350원짜리 책도 있었지요~
최인훈 전집이나 황순원 전집은 1500원이나 2000원쯤 주고
사서 읽었지요 @.@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1-23 13:29   좋아요 0 | URL
우왕, 500원이던 시절도 있었네요.
저도 어릴 때 집에 헌책방에서 사온 전집이 참 많았더랬어요.
큰오빠가 책을 좋아해서 세계명작시리즈, 명탐정 홈즈 시리즈(얇은 책인데 혹시 아시나요? 한 편씩 구성된...), 백과사전 등등등. 여기저기 이사 다니면서 처분했던 그 책들이 아직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