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어라.

 

이혼 사실을 밝히고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일숙의 손을 끌어잡고

할머니가 말한다.

"먹기 싫어도 먹어라. 안 넘어가면 국에 말아서 훌훌 삼켜."

 

나는 늘 궁금했다.

지금 속이 속이 아닌데 어른들은 왜 늘 밥을 먹으라고 난리인 걸까.

울며 억지로 삼켜서 체하느니 그냥 배가 고플 때 먹게 두지.

기어코 조금이라도 먹일려고 밥상 앞에 끌어다 세우는 걸까.

 

그런데 오늘 일숙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밥을 입에 넣는데, 아하 싶었다.

마음은 복잡하고 시끄러워도,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 들어가면

차갑던 몸에 혈기도 돌고,

각종 장기가 본연의 임무를 다하며 순환도 되고,

그러면서 몸은 평소처럼 '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배가 든든하면, 마음이 허기가 조금 해소된 듯한 착각도 경험할 수 있겠고.

 

밤 세우기를 밥 먹듯 하고, 먹는 것에 소홀한 친구가

나를 사랑하는 법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잘 먹고 잘 재우고 몸에게 좋은 걸 해주라고 했다.

영혼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있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이 생에 사는 한,

껍데기로서의 몸도 아주 소중하니까.

 

'마음'만이 소중한 줄 알았는데...

이제 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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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도 이 드라마 보다가 할머니가 국 퍼주는 장면에서 목이 메이더라구요. 눈물이 글썽거렸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7-16 15:47   좋아요 0 | URL
할머니가 그랬죠.
안 해보고 후회한 건 있어도, 해보고 후회한 적은 별로 없는 거 같더라고.
우회적으로 괜찮다, 괜찮다 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마음이 찡-했어요.

프레이야 2012-07-1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할머니의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같이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밖에서 아무리 찔리고 들어와도 집밥 한 공기 먹고나면
풀린다고. 눈물 콧물 섞인 밥 한 숟가락 입에 넣는 일숙이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눈빛.
그런 게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7-16 15:48   좋아요 0 | URL
지지고 볶고 싸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그 모든 게 함축돼 있는 게 집밥인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