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어라.
이혼 사실을 밝히고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일숙의 손을 끌어잡고
할머니가 말한다.
"먹기 싫어도 먹어라. 안 넘어가면 국에 말아서 훌훌 삼켜."
나는 늘 궁금했다.
지금 속이 속이 아닌데 어른들은 왜 늘 밥을 먹으라고 난리인 걸까.
울며 억지로 삼켜서 체하느니 그냥 배가 고플 때 먹게 두지.
기어코 조금이라도 먹일려고 밥상 앞에 끌어다 세우는 걸까.
그런데 오늘 일숙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밥을 입에 넣는데, 아하 싶었다.
마음은 복잡하고 시끄러워도,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 들어가면
차갑던 몸에 혈기도 돌고,
각종 장기가 본연의 임무를 다하며 순환도 되고,
그러면서 몸은 평소처럼 '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배가 든든하면, 마음이 허기가 조금 해소된 듯한 착각도 경험할 수 있겠고.
밤 세우기를 밥 먹듯 하고, 먹는 것에 소홀한 친구가
나를 사랑하는 법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잘 먹고 잘 재우고 몸에게 좋은 걸 해주라고 했다.
영혼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있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이 생에 사는 한,
껍데기로서의 몸도 아주 소중하니까.
'마음'만이 소중한 줄 알았는데...
이제 다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