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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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해남 이용석 이경해 김주익 송석창 박상준 곽재규 이현중
2004 김춘봉 정상국 박일수
2005 오추옥 정용품 김동윤 류기혁 전용철 홍덕표 김태환
2006 하중근
2007 정해진 이근재 허세욱 전응재

B급좌파 김규항이 자신의 블로그에 정리해놓은 이름들이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불의에 항거하여 목숨을 잃은 23명의 열사들이다. 이해남 열사와 이현중 열사는 세원테크노조 조합원이었다. 이현중 열사는 구사대의 폭력에 두개골이 함몰되는 부상을 입은 후 사망했고, 이해남 열사는 극심한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분신했다. 이경해 열사는 제네바 WTO 본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다가, 멕시코 칸쿤에서 할복을 시도하여 죽음을 택했다.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는 한진중공업 조합원이었다. 김주익 열사는 35미터 고공크레인 위에서 129일 동안 농성을 벌이다가 크레인에 목을 매고 자결했다. 곽재규 열사는 지하 11미터 도크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송석창 열사는 국민연금관리공단노조 조합원이었고,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었다. 박상준 열사는 화물연대 포항지부 조합원으로,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음독, 자결했다. 이용석 열사는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었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다. 김춘봉 열사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였고,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공장에서 목을 매고 자결했다. 정상국 열사는 버스 노동자였으며, 해고와 노동탄압에 저항하며 음독, 자결했다. 박일수 열사는 현대중공업 내에서 사내하청협의회를 조직하다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오추옥 열사는 여성농민회 소속으로, ‘쌀개방 반대’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정용품 열사는 한농연 회원으로, 쌀수입개방 반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김동윤 열사는 화물연대 회원으로, 유가인상과 유류보조금 압류 등에 저항하며 분신했다. 류기혁 열사는 현대자동차 파견노동자였으며, 노동탄압에 저항하며 목을 매고 자결했다. 전용철 열사와 홍덕표 열사는 농민회 소속으로,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집단 폭행으로 사망했다. 김태환 열사는 레미콘 노동자로, 사측의 대체투입 차량의 돌진에 치여 사망했다. 하중근 열사는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경찰의 폭력에 뇌 손상을 입어 사망했다. 정해진 열사는 인천전기원 노동자로, 단체협약체결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이근재 열사는 노점 노동자로, 고양시의 노점상 폭력단속에 항의하며 자결했다. 허세욱 열사는 택시 노동자로,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 전응재 열사는 택시 노동자로, 택시 노동자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2008 이병렬
2009 이성수, 윤용헌,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번에는 이명박 정권동안 목숨을 잃은 열사들이다. 이병렬 열사는 공공노조 조합원으로, 촛불집회도중 분신했다. 이성수 열사, 윤용헌 열사, 이상림 열사, 양회성 열사, 한대성 열사는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에서 생존권 투쟁 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40년이 지났다. 1970년과 2010년 강산이 네 번 변하고도 남을만큼 시간이 지났건만,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위에 언급한 열사들의 이름을 가만히 되새겨본다. 


이 책은 열사 40주기를 기념하여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 보이는 창>, <철수와 영희> 이렇게 네 출판사가 힘을 합쳐서 만들었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각 출판사가 각자의 방식으로 내용을 채워서 제각각 다른 형식이다. 레디앙은 전국 각지에서 ‘전태일’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기획이지만, 내용 전개가 좀 산만하다. 하지만 글은 충분히 재밌다. 후마니타스는 나태일과 외계인이 주인공이고 전태일이 잠시 등장하는 만화를 넣었는데, 만화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참신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 삶이 보이는 창은 유일하게 두 꼭지를 실었다. 청춘일기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 기획의도는 참신하지만, 발췌해서 넣은 느낌의 일기들이 너무 제각각 놀아서 산만하다. 무슨 말을 하고픈지 잘 모르겠다. 청춘수다는 말 그대로 청춘들의 대담(혹은 좌담)을 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수와 영희는 하종강 선생님이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노동백과사전을 실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단행본이 아니라 잡지를 보는 것 같다. 만화와 대담기사가 실려서 그런 것 같다. 다양한 시도와 참신한 기획은 다 좋은데 전반적으로 구성이 너무 산만하다. 무려 4개의 출판사가 참여했다는 의의가 퇴색되는 느낌이다. 아쉽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하종강 선생님의 노동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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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8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 리뷰보고,저도 이 책 주문했어요.
산만하여 퇴색되는 느낌이군여,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책을 꼭 읽어줄거예요~^^

감은빛 2010-11-23 13:23   좋아요 0 | URL
아, 댓글 확인이 많이 늦었네요.
지금쯤 읽어보셨겠는걸요.
이 책 기획단계에서부터 소식을 듣고,
어떤 책일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금 실망했어요.

그래도 여러모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양철나무꾼님의 평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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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서울역 앞 2010년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나갔다가 큰 수확을 얻었다! <들꽃이야기>를 출간되자마자 구할 수 있었다. 출판사가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가판을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강우근 선생님이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도장을 찍고 글씨를 써주고 계셨다!


예전부터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조심스럽게 인사들 드렸다. 선생님은 아주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셨다. 추운 날씨에 마주 잡은 그 손이 참 따뜻했다. 그리고 아주 익숙하면서도 신중한 동작으로 도장을 찍고 글씨를 써주셨다. 그 간결하고 힘 있는 동작이 멋있었다.


예전에 용산참사 현장에서 이윤엽 선생님이 <여기 사람이 있다> 판화를 흰 면 티셔츠에 찍어서 팔고 계셨는데, 셔츠를 사는 사람도 함께 판화를 찍는 일에 참여하게 했다. 그 셔츠를 사면서 이윤엽 선생님과 함께 판화를 찍어봤는데, 참 재밌었다. 특히 이윤엽 선생님의 능숙하고 힘 있는 동작들이 참 인상 깊었다.


이 책 <들꽃이야기>는 예전에 '노동자의 힘'이라는 단체의 기관지에 실렸던 원고들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일단 책이 너무 예쁘다. 책과 함께 받은 달력 포스터도 아주 예쁘다! 아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아주 좋아했다. 강우근 선생님께 직접 받은 도장을 자랑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책을 보여주었는데, 다들 책이 예쁘다고 야단이었다.


책에 실려 있는 강우근 선생님의 그림들도 하나같이 다 개성있고, 멋지다! 대개 들꽃이나 동물들의 그림은 세밀화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은데, 강우근 선생님의 그림들은 판화작업을 해서 그런지 선이 굵다. 그 굵은 선으로도 각 생물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표현해낸다는 게 참 대단해 보인다.


그림이야 뭐 워낙 유명한 분이시니, 더 칭찬해야 입만 아플 테고, 글을 읽어보니, 글도 쉽고 간결하게 잘 읽힌다. 그림도 잘 그리시는데, 글도 이렇게 잘 쓰시다니! 이름 모를 들꽃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 실은 세상을 움직이고 또 바꾼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주제를 이렇게 잘 풀어주신 걸 보면, 역시 나은희 선생님의 역할이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유명해진 가족필명인 붉나무를 안 쓰고, 강우근의 들꽃이야기라고 쓴 이유가 궁금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붉나무의 <열두 달 자연놀이>나 <사계절 생태놀이>는 나은희 선생님과 두 아이들까지, 말 그대로 가족이 함께 창작한 책이고, 이 책은 나은희 선생님이 도움은 주셨겠지만, 창작은 강우근 선생님이 직접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나온 내용 중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 하나만 소개해보자.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최근에 겪고 있는 수난에 대한 해석에 특히 공감이 갔다. 예전부터 봄만 되면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고 가지를 다 잘라내고, 흉측하게 몸통만 남은 양버즘나무들을 보면서 참 기분이 안 좋았다. 몇 해 전에는 전화와 홈페이지를 통해 시청에 항의를 해보기도 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것처럼 허옇게 남겨진 양버즘나무들을 찍어 블로그에 올려서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에서는 상가에서 민원이 자꾸 들어와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앞으로는 너무 심하게 가지를 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성의 없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또다시 같은 일은 벌어졌다.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르겠다.


양버즘나무가 무슨 죄라고 그렇게 사지를 절단해놓는 건지 묻고 싶다. 죄가 있다면 잎이 좀 크다는 죄 밖에 없다. 오히려 인간들을 위해서 온갖 매연과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공기를 정화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제공했던 공으로 상을 줘도 모자란 지경인데 말이다.


강우근 선생님은 가로수로서 가장 적합한 양버즘나무가 최근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고 다른 수종으로 바뀌고 있는 현상이 근본적으로 정치논리라는 것을 잘 짚어준다. 천박한 자본주의와 비열한 정치인들이 만나 만들어낸 이 우습지도 않은 상황은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주 낯익은 풍경들을 떠올릴 수 있다. 고속철도, 새만금 개발, 청계천 복원 그리고 4대강 사업 등이 바로 그런 거짓 정치논리로 만들어진 비극이었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참 뜻은 깊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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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09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늘 재미있는 책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욤..잘 보았어욤...

감은빛 2010-11-10 22:41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1-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지고 싶다.
사진도 좀 찍어서 올려주시지..
책 소개에도 미리보기가 없어서 아쉬워요.
어흑, 달력 포스터도 갖고 싶다...
이거 알라딘에서 주문해서는 못 받겠지요? 일단 장바구니에는 넣어야겠어요.

감은빛 2010-11-10 22:43   좋아요 0 | URL
이 글 올리고 나서,
강우근 선생님의 도장과 글씨를 찍어서 올려볼걸 하고 생각했으나,
역시 저는 카메라랑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관계로 넘어갑니다.
좋은 그림들이 참 많은데,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네요.

오늘 보니, 달력포스터 선착순 100명 증정 이벤트가 걸렸어요.

2010-11-1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0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데미샘 2010-11-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읽고 싶은 책이죠.
좋은 글 솜씨로 멋진 책 소개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강우근 님의 친필싸인 모습은 저도 보았지만, 그런 세세한 동작까지 읽어내지는 못했거든요. 동작 하나하나 유려하게 읽어내시는 감은빛 님의 세심한 시선도 글 솜씨 못지않게 부럽네요.
이 글도 주변에 널리 알려 많은 이들이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마녀고양이 님/ 당일 출판사 관계자가 그러던데요. 주문하시는 백 분께 선착순으로 달력 포스터를 드린다고요.

감은빛 2010-11-10 22:56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강우근 선생님이 도장에 먹을 묻힐 때, 정확한 위치에 놓고,
순간적으로 힘주어 누르는 모습.
책에 도장을 찍을 때, 살짝 올려놓고, 꾹 눌렀다가,
도장이 움직이지 않게 잘 잡아놓고,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눌러주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이 글 쓸때는 더 자세히 쓰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네요.

양철나무꾼 2010-11-10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기억하고 있었는데,11월13일 출간 예정이었었는데요.
벌써 구하셨다니 부럽습니다~ㅠ.ㅠ

감은빛 2010-11-10 22:59   좋아요 0 | URL
아, 나무꾼님은 이미 출간예정일까지 알고계셨군요!
그날 나온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신간을 구한 것도 좋았지만,
강우근 선생님이 직접 도장을 찍고, 글씨를 써주셨으니,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

순오기 2010-11-10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목차를 봤더니 너무 탐나는데요.
어제 장바구니 결제했는데 벌써 또 채워가고 있어요.ㅜㅜ
일단 님께 땡스투하고 담아봅니다.

감은빛 2010-11-10 23: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좋을 거예요.
순오기님께서 탐낼만한 책입니다.
땡스투까지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

2010-11-1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정말 사고 싶은 책입니다. 좋은 책 알려주셔서 고마워요..ㅠ.ㅜ
저도 당연히 땡스투입니다.ㅎㅎ

감은빛 2010-11-11 01:39   좋아요 0 | URL
제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땡스투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꿈꾸는섬 2010-11-1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갖고 싶은 책이네요.^^

감은빛 2010-11-12 12:18   좋아요 0 | URL
좋은 책입니다!
재미도 있고, 그림도 좋고, 생각할 거리들도 던져주고요! ^^

2010-11-2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3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 학벌없는 사회
학벌없는사회 외 지음 / 메이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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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를 교육의 장애물이라고 했다. 근대 교육제도로서 학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누구나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학교가 생기면서부터 지배계급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들만 학교에서 강제로 배우게 되었다. 게다가 의무교육 제도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세습하는 가장 뛰어난 도구였다. 대다수는 학교를 나오고도 경쟁에서 뒤쳐져 낙오되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학생들만 살아남아 인정받는다. 일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극소수가 따지만, 대다수는 잃게 되어 있는 복권을 강제로 구입하는 것‘이 바로 학교를 통한 의무교육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끔찍이도 학교를 싫어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로봇이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참 못했는데, 성적이 나쁘다고 때리거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서 마저 외우게 시키는 선생님들이 정말 싫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때 이미 그 두 과목을 다 포기해버렸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 두과목을 진지하게 공부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그 많은 선생님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두 과목을 다 포기하고도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수학과 과학은 늘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지만)나 중학교도 싫었지만, 가장 싫었던 건 고등학교였다. 선생님들의 일상적인 폭력도 싫었고,(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놀랍게도 매일 성폭력 휘두르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신세도 싫었지만, 가장 짜증나는 건,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태도였다. 학생들은 늘 등수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했고, 성적이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부당한 방식을 견딜 수 없었다. 하루빨리 간수(선생님들)들이 지키는 감옥(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가끔 탈옥(땡땡이)을 시도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학 진학 가능’ 이라는 딱지가 나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대에 돌아가게 되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악몽이다. 나에게 그보다 더한 악몽은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꿈이다. 그만큼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었다. ‘학벌없는사회’가 지은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라는 책이다. ‘학벌없는사회’에서 일하는 여덞명의 필자가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에 다니게 되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들이 바로 몇 년만 지나면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알아보라고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하는데, 나는 솔직히 대안학교가 현실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거기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만한 경제력이 우리 부부에게는 없다. 보낼 수 없는데 어떻게 대안이 된단 말인가!

 

학교는 변해야 한다. 아니 없어져야 한다. 당장 학교를 없앨 수 없다면, 가장 큰 문제 -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을 없애야 한다. ‘학벌’이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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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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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멋진 만화책을 읽었다. 세스 토보크먼이라는 미국의 급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에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표지는 강렬한 로우킥(자세를 보면 태권도의 옆차기와 비슷하기도 한데....)으로 건물을 부수는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있다. 느낌이 강한 표지다. 이런 표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덕분에 어떤 만화인지 표지만 보면 딱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표지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이라고 눈에 띄는 표시가 되어 있다. 아마도 책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텐데, 보통 이런 건 ‘무슨 슨 상 수상’ 이라거나, ‘누구누구가 선택한 책’이라거나 그런 말이 붙어 있는데, 여긴 ‘전격 연재 중단’이라니. 그만큼 ‘쎈’ 만화라는 뜻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뒤표지를 보면 제렐 크라우스 <뉴욕타임스> 전 아트 디렉터의 말이 실려 있다. ‘더 많이 실으려 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라는 설명이다. 그의 직함에 ‘전’ 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맘이 쓰인다. 혹시 세스 토보크먼의 만화를 더 싣기 위해 애쓰다가 ‘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쯤 되면 어떤 내용의 만화인지는 얘기 안 해도 뻔하다. 국가(정치인들)가 싫어하고, 자본(기업인들)이 싫어하는 만화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이 싫어하는 만화이므로, 분명히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국가와 자본이 실은 얼마나 나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만화일 것이다!

그림은 아주 멋지다! 판화 느낌이 난다. 선이 굵으면서도 특징들을 잘 잡아낸 그림들이 아주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우근 선생님 그림이 떠오르고, 이윤엽 선생님 판화도 떠오른다. 물론 그림체가 닯았다거나, 비슷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닮았다는 뜻이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사만화나 풍자만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대놓고 사실을 들춰내는 만화는 그닥 보지 못한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읽지 못했지만,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 라는 만화가 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내 바람은 이렇게 진실을 파헤치는 만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와 자본의 어이없는 미친 짓들이 참 많았다. 광우병 수입으로 인해 대대적인 국민 저항을 보여준 촛불집회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가 있었고, 기륭전자, 동희오토, 콜트 콜텍 등등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진압되었다. 용산참사가 있었고(5분의 철거민이 돌아가셨다!), 최근에는 천안함 사태가 있었다.(46명의 장병이 돌아오지 못했다!) 삼성 X파일 사태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황유미, 박지연씨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지금 전국을 삽질 으로 파헤쳐놓은 4대강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시계를 더 돌려보면 한미FTA저지 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허세욱 열사의 분신이 있었다!), 이라크 파병반대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김선일씨가 볼모로 희생되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치열한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농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는 것을 폭력으로 저지했고(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농민이 방패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포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을 또다시 짓밟았다.(하중근 열사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되돌아보니 참 우울해진다. 김규항에 의하면 참여정부라고 부르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희생된 노동자와 농민 열사만도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한분 한분의 고귀한 희생이 이제는 다 잊혀진 듯하다. 우울하다고 해서 잊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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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생태계 파괴와 경제성장 사이의 진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제목 치고는 참 길다. 그리고 질문이 좀 어렵다. 아니 질문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이 좀 복잡하고 어색하다. 정확하게 뭘 묻고 싶은 건지 금방 알기 어렵다. 그런데 더 쉬운 말로 바꿔보려 해도 잘 안 된다. 결국 이게 최선의 제목인 것일까?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처음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지독한 의욕상실과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잠시 사막화방지운동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새만금 개발 반대운동’,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운동’ 등의 굵직한 개발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골프장 건설 저지’, ‘젤라틴 공업용 쇠가죽 원료사용 중단’, ‘재생가능 에너지 확산’ 등의 다양한 운동에 참여했지만, 단 한 차례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환경운동은 기본적으로 개발반대 싸움이다. 개발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겨, 자연생태계를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헤비급 챔피언과 라이트급 아마추어의 권투시합만큼 불공평한 싸움이다. 처음부터 힘이 다른 거대한 권력집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개발반대 싸움의 현장을 겪으면서 느꼈던 건 무력감이었다. 물막이 공사가 막 끝난 새만금 방조제 4공구 현장에서 밤새 삽과 곡괭이를 휘둘러, 아침 무렵 겨우 다시 바닷물을 만나게 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바로 몇 시간 뒤 전경들과 용역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한쪽으로 쫓겨간 틈을 타서, 포크레인이 바닷물을 다시 막아버렸을 때의 느낌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무력감이었다. ‘이 싸움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법정공방까지 갔던 ‘새만금 사업’은 결국 개발을 원하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또한 지율스님께서 목숨을 걸고, 4차례에 걸쳐 총 241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고속철도 공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뭇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몇 년 동안 나는 점점 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뭘 해도 다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환경운동단체를 그만두고 문화운동단체로 옮겼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종철 선생님을 만난 건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은 내가 갖고 있는 의문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환경운동가로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산업사회를 벗어나는 상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기며 자본주의를 뒤엎을 상상은 자주 하고 있었지만, 그 사회주의조차 산업사회라는 틀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산업사회를 끌고 가는 유일한 힘이다. 그리고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틀 속에 갇혀있으면서 생태계의 파괴를 막아 보겠다고 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이뤄보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똑같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비록 눈이 가려져 있어서 쉽게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매우 비인간적인 곳이다.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를 불릴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것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었기에 시화호의 교훈도 잊어버리고 다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 환경파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돈과 권력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오직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죽이고도, 오히려 그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찾고 싶었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산업사회라는 틀 바깥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비로소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경제성장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자연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경제성장이 허황된 이데올로기라고? 경제성장을 해야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복지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해서 경제성장이란 거짓말에 우리가 속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제성장 포기하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온 세상이 다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 사회 혹은 한 국가만 경제성장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다시 찾아나가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야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 뜨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운동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평화와 환경위기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상식(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경제’만을 외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직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돈에 미친 건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산업사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다시 들었던 강연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의외로 우리와 비슷한 ‘또라이’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그 강연을 들으러 온 50여명은 대부분 그  ‘또라이’들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또라이’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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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2010-10-15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촘촘하고 성실한 독서가 느껴지네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감은빛 2010-10-15 13: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종종 놀럭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