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자마자 출판계는 날벼락을 맞았다. 국내 대형 도매상 중에서 거래량 규모로 2위인 송인서적이 부도를 맞았다. 페이스북 지인들 중 출판계 선후배가 많아서 금방 이 소식을 접했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만약 내가 아직도 출판 영업자로 일하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뒷목을 잡고 쓰러질만한 소식이다. 순간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중소형 출판사 영업부장을 맡고 있거나, 창업해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송인서적에 아주 오랫동안 일해왔던 친구가 떠올랐고, 여러 선배들 얼굴이 떠올랐다.


부도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떠오른 생각은 '중소형 출판사 피해가 어마어마하겠구나' 였다. 송인서적은 예전부터 그런 경향이 있었다. 큰 출판사들은 오히려 거래 규모에 비해 잔고도 낮고, 수금도 현금으로 받아가고, 중소형 출판사들은 잔고가 높고, 지불을 4개월짜리 어음으로 받아가야 했다. 최근에는 그래도 은행 어음이나 전자어음으로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예전에는 문방구 어음이라 부르는, 4개월 후에 송인서적에서만 다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종이조각을 지불했다. 오래전 맨 처음 영업자로서 이 문방구 어음으로 지불받았을 때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게다가 송인은 북센에 비해 재고도서 파악이 잘 안 되고, 잔고에서 전국 서점에 깔려있는 도서와 송인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도서를 뺀 금액(업계 용어로 '공간'이라 부름)도 알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힘없는 중소형 서점들은 더욱 제대로 된 수금이 어렵다. 이는 거래량에 비해 계속 잔고가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나중에 어디 지역 소매 서점 하나가 폐업하거나 부도나면 반품 폭탄을 맞기도 한다.


한편 송인은 '일원화'라고 부르는 다른 도매상과 거래하지 않고, 송인하고만 거래하는 출판사가 꽤 많은 곳이다. 내 주변에 그런 출판사가 제법 있었다. 어차피 규모가 작을 때는 여러 도매상에 책을 뿌리는 것 보다는 한 곳을 통해 배포하는 것이 나을 수 있고, 일원화 출판사에 대한 배려나 혜택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도가 난 지금 송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원화 출판사들은 더 큰 폭탄을 맞았을 것이다.


나는 첫 출판사에서 영업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출판사에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송인서적의 잔고를 줄이고, 현실적인 수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수금액을 결정하기 위한 전무님과의 면담이 무척 어렵고 힘들었다. 한편으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나중에는 그 전무님과 많이 친해져서 대부분 내가 원하는 수준의 수금을 받아갈 수 있었다. 


오늘 저녁 몇몇 친구들과 선배들과 통화를 했다. 피해액을 물었더니 대개 예상 범위였다. 좀 적으면 1천만원에서 2천만원, 좀 많으면 3천만원에서 4천만원. 경우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중소 규모 출판사에서 3천~4천만원은 1년치 순수익의 3분의 1이나 절반(어쩌면 그 이상)에 해당할 수 있는 돈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타격이다. 어렵게 만들어 유통시킨 책들과 수금받아온 어음들이 한순간에 종이 쓰레기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아니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고 표현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일했던 출판사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을 그만두고 거의 3년 동안 딱 한 번, 그것도 볼일이 있어서 찾아갔을 뿐, 연락을 한 적은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큰 일이 닥치니 연락이 왔다며,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바빠서 연락을 못드려 죄송하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고, 피해 규모를 물었다.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만둔지 꽤 되었지만, 매출 규모를 뻔히 짐작하는데, 굳이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암튼 내가 그만둔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잔고를 줄여서 생각만큼 피해가 크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타격이 크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출판사를 그만두면서 나는 대표님께 전달한 인수인계 문서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송인서적에는 신간을 최소한의 수량(10권 이하)으로 보낼 것"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잔고가 늘어날 위험이 있었다. 신간을 적게 보낸 것이 다행이었다고, 내가 인수인계 문서에 적어놓은 말 덕분에 피해가 줄었다는 말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갑작스런 내 연락에 친구들은 한결같이 "송인 부도 덕분에 네 연락을 다 받아보네!" 하는 반응이었다. 인정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간 출판계 친구들과 선후배들과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 업계를 떠난 이후로 대화 주제나 공감대가 달라진 것이 이유이기도 하고, 정말 물리적으로 바쁜 삶을 살기도 했다.


이번 부도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없어보인다.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지만 짐작컨데 방법이 없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중소형 출판사들 중 피해액이 큰 업체들의 연쇄 부도 가능성을 의미한다. 쓰레기 조각이 되어버린 어음은 고스란히 빚(대개 4개월이 되기 전에 인쇄소, 지업사 등 거래처에 현금대신 지불하므로)이 되고, 전국 소매서점과 송인 창고에 묶여 있을 도서들은 송인 채권단에게 압류 당할 게 뻔하다. 그리고 그 압류된 도서들이 나중에 다른 유통망을 통해 반품도서로 돌아오면 2중 피햬를 당한다. 안 그래도 책이 안 팔려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해마다 갱신하는 판에, 이정도 피해를 견디고 버티기는 쉽지 않다. 출판계에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불어닥치지 않을까 두렵다.


마침 다음 아고라에 '부도난 송인서적에 공적 자금 투입 필요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송인은 이미 IMF 시절에 한번 부도가 났다가 출판계의 수혈을 받아 간신히 다시 살아난 도매상이다. 이번에도 외부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속으로 무척 안타깝지만 나는 이제 외부자의 시선으로 이 사태를 보고 있다. 정작 당사자들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가고, 썩어들어가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부디 이 사태를 잘 이겨내시길 바란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97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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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7-01-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선배 둘도 중소출판사를 운영하는데 화가 미치지 않기를 바라네요. 걱정입니다. 안 그래도 불황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출판계가 얼마나 더 떨어지게 될지...

2017-01-04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4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MF 때처럼 출판사가 문 닫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체부는 개인 업체의 부도라고 해서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정유라 챙겨줄 때부터 알아봤지만, 문체부야말로 해체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