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정장을 꺼내 입었다. 구두도 꺼내 신었다. 넥타이도 메야할까 생각하다가 귀찮아서 생략. 애들 엄마가 큰 아이의 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본다. "아! 나 오늘 좀 멋진데!" 이런 생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데도, 내가 봐도 내가 너무 멋져서(내가 보는 거니 그런거겠지만) 매일 정장 입고 출근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사실 와이셔츠 빨아서 다려 입는 것만 아니면 정장 입고 다니는 것이 더 편하긴 하다. 뭘 입을지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애들 엄마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독특한 스타일의 파마를 한 듯 하다. 낯설다. 저 사람이 10년 넘게 같이 살았던 사람이 맞나 싶다. 내가 채 교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보안관실에 방문 접수를 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한 2주 전쯤에 애들 엄마가 메일을 보냈다. 아이의 담임이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여학생들에게 성차별적 발언으로 모욕을 주고, 아이들에게 답안지를 던진다던가 폭력적인 행동을 일상적으로 했다고, 교사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너무 자주 해서 아이들이 무척 힘들어했고, 그 와중에 급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여학생들에게만 머리를 묶으라고 강요하면서 특정 학생을 심하게 몰아세우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에 몇몇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담임을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몇 차례 교장, 교감과 간담회를 가졌다고 했다.


그런 내용을 애들 엄마가 몇 번 메일로 전달했다. 나는 애들 엄마가 그 논의에 들어가 있으니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전해주는 소식만 들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 최종적으로 교장과 학부모들이 만나서 담임 교체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런데 하필 어제 결근한 담임 대신 대리로 들어온 다른 선생 둘이 학생들에게 "너희가 뭔데 선생님을 괴롭히냐?", "선생님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만두시겠냐?". "선생님이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봐라"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발언들을 했단다. 학교를 마친 큰 아이가 애들 엄마랑 떡볶이를 먹다가 너무 억울하고 싫었다고 울먹였다고 했다.


큰 아이는 2학기에 여자 회장이 되었다. 회장으로 뽑혔다고 나한테 신나서 자랑하던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인간들이 그따위로 아이들을 억압하고 몰아붙이니 회장으로서 아이가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오늘 아침 애들 엄마가 전화로 이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고 교장을 만나서 단단히 따져야겠다고, 나에게 함께 가 줄것을 요청했다. 이 인간들이 엄마들만 찾아갔을 때랑 아빠가 한 명이라도 함께 갔을 때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바쁜 날이었지만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출근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얕잡아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해 일부러 옷도 갈아입고, 구두도 꺼내 신었다.


교장과 교감 두 명을 만났다. 애들 엄마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요구사항을 말했다. 교감과 교장은 어제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하면서 배경을 설명하겠다고 변명을 했다. 핵심은 아이들에게 절대 하면 안되는 짓을 한 것인데, 계속 말을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참다 못한 내가 정중하게 정곡을 찔렀다. 생각 같아서는 훨씬 더 심하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최대한 표현의 수위를 낮췄다. 그들은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말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목소리가 막 떨렸다. 아니 몸도 막 떨렸다. 아, 쪽팔리게. 잠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진정시켰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꼭 붙잡고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은 학교측에서 선생들에게 제대로 이 상황을 인지시키고, 앞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눈 후에 결국 교장과 교감의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나왔다.


마지막에 한 마디를 하고 싶었던 걸 참았다. 원칙적인 얘기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 학교를 구성하는 주체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 선생들의 인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는데, 무슨 자격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단 말인가?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기본부터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교육자로서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인권 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시켜야 한다. 선생들이 먼저 똑바로 태도를 갖춰야 학생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을게 아닌가. 


늘 생각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 아이들은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동반자로 봐야 한다. 그런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이 교육자라고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무시하고, 성차별을 일삼고, 폭언을 퍼붓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억압하니 아이들이 뭘 배우겠나?
















큰 아이가 1학년때 담임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 많은 여선생이었다. 아이들에게 엄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히스테리를 부렸다. 아이는 그 선생을 엄첨 무서워했다. 아이를 데리러주러 학교에 함께 갔다가 아이가 울면서 학교 가기 싫다고 난리를 쳐서, 들여보내지 못하고 데리고 출근한 적도 있었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빨갱이'라고 부르면서 막 짜증을 내기도 했단다. 잘못이 있으면 잘 알아듣도록 타일러야지. 아이들이 당신들 짜증을 받아주는 존재인가? 그리고 애들에게 빨갱이가 뭔가? 그 단어 뜻도 모를 초등학교 1학년에게 그게 무슨 짓인가? 


이번에 교체된 담임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어제 아이들에게 헛소리를 했던 선생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렇게 지적하면 나이 많은 교사들에 대한 편견이자 일반화의 오류가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교사들보다는 나이 든 교사들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고, 인권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제발 나이 값 좀 하고 살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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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오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오늘 선보는 날이냐? 왜 이렇게 쫙 빼입고 왔냐? 어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하고 왔냐? 이 사람들이 진짜! 이 나이에 무슨 선을 보나? 다 설명하려면 너무 긴 얘기라 그냥 그럴 일이 있다고 하고 지나치려는데, 한 두명이어야지. 매일 정장입고 출근할까 잠시 생각했던 것 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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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8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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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2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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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11-1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교육이 그따구여서 저는 아이가 생기면 학교를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책도 없이 그냥 애를 데리고 어디든 함께 다닐 계획(?)인데요 ㅎㅎ

감은빛 2016-11-22 00:35   좋아요 0 | URL
홈스쿨링과 대안학교 등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지 못해 결국은 공교육에 아이를 맡겼지만요.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스스로 판단하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6-11-2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선생이라기보단 개새끼만도 못한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르네요.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생산되는 지금은 더할 지도 모르겠어요

감은빛 2016-11-22 00: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 선생 같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수업을 들었죠.
학교라는 공간을 감옥처럼 여기며 12년을 꼬박 보냈어요.
지금은 좀 달라졌으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2016-11-21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2 0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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