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음악


글을 쓰거나 교정을 볼 때 버릇 하나는 팝음악을 틀어놓는 것이다. 가요를 들으면 자꾸 가사가 머리속으로 들어와서 일에 집중이 안된다. 팝음악은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다. 어려서는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씨디로 음악을 들었다. 한 십여년 전에는 엠피쓰리 파일로 음악을 들었고, 요즘은 그냥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는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찾아서 틀어놓으면 자동으로 비슷한 노래나 같은 가수의 곡을 계속 이어서 들려준다. 이게 어떤 설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기능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한번만 찾으면 그 다음부터는 신경쓰지 않아도 내 취향의 곡을 계속 이어서 재생해주니 말이다.


오늘 아침 아이들의 아침 밥을 준비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이 목소리 참 오랜만이다. 오래전 잠깐동안 차를 몰고 출퇴근 한 적이 있어다. 출근 시간에는 이 '오늘아침'을 들었고, 퇴근 시간에는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침 출근길에 차분한 목소리와 밝고 경쾌한 노래 선곡이 참 좋았고, 퇴근길에는 정겨운 목소리와 다양한 올드팝에서 최신유행곡까지 팝음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수잔 베가의 Tom's Diner 가 나왔다. 비와 참 잘 어울리는 노래. 빗소리와 노래 소리가 시너지를 일으켜 나를 20여년 전 어느 밤으로 나를 데려갔다. 잠시 추억에 젖어 있느라 아이들 밥 차리던 것도 잊었나보다. 배고프다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준비했다.


오후 늦게 휴대폰을 보니, 시민신문 편집장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엊그제 마감에 맞춰 교정을 도와주러 다녀왔는데, 오늘 새벽 기사 하나를 보내어, 교정을 보고 분량을 줄여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아이들과 놀고 있던 참이라 교정 볼 기분이 아니었지만, 얼마나 급했으면 그 새벽에 연락했을까 싶어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열었다. 교정을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를 켜고 무슨 곡을 검색할까 잠시 고민했다. 아침에 들었던 Tom's Diner 를 또 듣고 싶어 검색했다. 오래전 카세트 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던 곡. 이젠 비가 그쳐, 창문 너머 빗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조금 아쉽다. 암튼 잠시 노래를 감상하다가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기사는 그리 길지 않은데, 원고를 줄여달라니 좀 난감했다. 분량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글을 두 번 읽는 사이 노래는 포 넌 블론즈의 What's up 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노 다웃의 Don't speak 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선 교정교열을 끝내고, 글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잠시 그웬 스테파니의 섹시한 목소리를 감상했다. 이 노래 예전에 가끔 듣긴 했지만, 그리 인상적인 느낌이 아니었는데, 지금 들으니 제법 매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끝까지 듣고, 다시 원고로 돌아갔다.




그때 자동으로 넘어간 다음 노래가 크랜베리스의 Linger 였다. 20년 전 티비에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몽환적인 느낌으로 노래늘 부르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모습을 본 후, 빠져들었던 크랜베리스. 수많은 노래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곡은 Zombie 와 Linger 였다. 다시 원고로 돌아와 겨우 한 문장도 읽지 못했는데, 교정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돌로레스의 목소리를 듣던 나는 마음을 바꿔 얼른 교정을 끝내버리고 크랜베리스의 로래를 감상하기로 했다. 노래를 멈추고 원고로 돌아가서 흐름상 불 필요한 문장을 지우고, 앞뒤 맥락에 맞춰 문장을 고쳤다. 얼마 뒤 교정 원고를 전송하고 답을 보냈다.



보물창고


 Linger 에 이어서 나온 노래는 Dreams 였다. Zombie 를 좋아하기 전에 가장 좋아했던 곡이었다. 이어서 Zombie 가 나왔고, 그 다음에는 Ode to my family 가 나왔다. 크랜베리스의 초기 노래들이 자동으로 이어서 재생되는데, 모두 좋아했던 곡이었다.




이건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좋아했던 노래들과 함께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또 신기했던 건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보다보니 씨디로 음악만 듣던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크랜베리스의 모습들, 아니 돌로레스 오리어던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뮤직비디오의 컨셉을 통해 곡에 대한 다른 해석도 해보았다.



이어 자동재생된 노래는 Promises 였고, 그 다음 곡은 Animal Instinct 였다. 하나하나 오래전에 테이프가 닳도록 듣고, 씨디를 사서 무한반복으로 들었던 곡들이다. 자동재생으로 들려주는 것만 기다리기엔 좀 답답해서 좋아했던 다른 곡들도 찾아봤다. I just shot John Lennon 과 Sattered 도 많이 좋아했던 곡들이다. 아니 나중에는 Sattered 를 가장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크랜베리스는 사회문제나 정치적인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영어를 썩 그리 잘 하지 못해 노래에 숨겨진 어떤 맥락들을 다 이해할 수 없어 아쉽다. 단편적으로 이런 의미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Fee fi fo 나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Bosnia 등의 곡들이 있다. 이젠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외에도 많은 곡들이 비판적인 가사로 채워져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예전에 좋아했던 곡들의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다음에는 누구로 해볼까? 쉐릴 크로우? 알라니스 모리셋? 에반에센스? 뭐 찾아볼 가수는 많다. 그만큼 시간을 낼 수 있을지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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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크랜베리스 네요~~
엔날에 많이 듣다 요즘 가끔 듣고 있습니다..ㅎ

저는 작업할 때 주로 고딕 메탈을 듣습니다요~ㅋ

감은빛 2016-09-19 12:18   좋아요 0 | URL
한 달도 훌쩍 지나서야 답을 남기네요.
그간 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살아서요.

야무님도 크랜베리스 좋아하시나봐요.
요즘도 가끔 들으신다니!

고딕 메탈이라~
저는 10대때 메탈 계열을 좋아했는데,
20대 이후로는 잘 안 듣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