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주말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잤다. 추석 연휴 전부터 엄청 바빴고,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목이 부었고, 비염이 심해졌다. 비염은 미리 처방받아둔 약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목이 부어도 병원갈 여유가 없었다. 추석때는 갈때 7시간, 올때 8시간 운전을 했다. 일터를 옮기면서 요샌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의 운전이었다. 그 오랜만의 운전이 명절 장거리 운전이었기 때문에 좀 힘들긴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계속 달리면 그건 나름대로 재밌고 괜찮은데, 주차장이 된 도로 위에서 오가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건 진짜 못견딜 일이다. 


암튼 고향을 다녀와서 한나절 겨우 쉬고 다시 출근. 바쁜 일주일이 지났다. 목요일에는 밤새 일을 했다. 새벽 서너시쯤 계산했을 때에는 아침 나절에 일을 끝내고 집에가서 잠시 눈 붙였다가 좀 씻고 나와서 다시 일을 해야지 싶었는데, 금요일 점심때가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는데 시간 가늠을 잘못한 탓이다. 결국 오후 늦게 전날 시작했던 일을 마치고, 다시 퇴근시간까지 그날 해야할 일을 조금 했다. 다 못한 일은 다음주에 하기 위해 체크해두면서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고 싶었으나, 하다하다보니 퇴근시간 보다 더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요일 저녁에도 어느 토론회에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몸도 피곤했고, 일터에서 밤을 샜기 때문에 씻지도 못한 몰골로 나갈 수가 없어서 죄송하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러고 집에 가서 씻고, 밥먹고, 애들하고 놀다가 뻗었는데, 토요일 아침부터 다시 목이 심하게 붓고, 온 몸이 다 쑤시고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자다가 잠시 깨서 약먹고 다시 자기를 반복했다. 주말 동안 3개의 일정이 있었는데, 하나도 못 나갔다. 전화가 울려도 모르고 잤다. 나중에 저녁에 정신을 차리고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금요일부터 총 4개의 일정을 펑크냈다. 각 일정의 당사자들에게 무척 미안했지만, 내 몸은 도무지 움직일 상태가 아니었다. 너무 무리해서 잠시 고장난 거였다고 생각해본다.


그래도 이틀동안 밀린 잠을 자고 났더니 월요일부터는 좀 괜찮아졌다. 하지만 월요일 하루 일하고 나니 화요일부터 다시 목이 부었다. 어제(화요일)도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나서 누군가 물었다. 몸은 좀 어떠냐고? 괜찮아졌다가 다시 목이 붓고 있다고 했더니, 그래도 맥주 한 잔 하자고 한다. 뭔가 할말이 있는 눈치여서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함께 했다. 역시 심각한 이야기가 있었다. 늘 느끼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가져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12시가 다 되어 헤어지면서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나는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


사람은 안 변해


저번에 알라딘에서 '핵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어제는 매주 목요일 진행하는 탈핵 선전전에 사용할 피켓 문구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녹색당에서는 대부분 핵발전소라고 쓰는데, 한 사람이 '원자력발전소' 혹은 '원전'이라고 표기하자고 의견을 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가 뭔지 모른기 때문에 그 표현을 쓰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핵발전소가 뭔지 구체적으로 모를수는 있어도 그 단어의 느낌 때문에 짐작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틀린 표현인 원전을 우리라도 쓰지 않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둘이 한창 의견을 냈고, 주변에서는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결론은 다른 사람이 낸 중재안으로 결정했다. 피켓의 한 면에 '핵발전소 = 원자력발전소' 라는 표현을 넣기로 한 것이다.


결론이 난 후, 한 사람이 툭 던졌다. "사람은 안 변해. 2년 전에도 두 사람이 똑같은 건으로 논쟁한듯." 그 말을 듣고 보니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 친구와 같은 사안으로 논쟁했던 기억이 났다. 그랬구나. 이게 처음이 아니었구나. 역시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


책 소개


비정기적으로 지역 시민신문에 책 소개 글을 쓰고 있다. 이번에도 글을 싣기로 했는데, 토요일까지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일요일에 저녁에 쓰게 될 것 같다. 일요일 낮에 일정이 하나 있는데, 이게 취소될 확률도 있어서 어쩌면 낮에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슨 책을 읽고 쓸까? 알라딘을 뒤지면서 오랜만에 이웃들 글도 좀 읽었다.


한참을 뒤졌는데 최근 신간 중에 딱 이거다 싶은 책이 없어서, 지난 주에 카렐 차페크 수첩이 탐나서 주문한, 조금 묵은 신간으로 결정했다. 마침 어제 책이 도착했다.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 중인 할매들을 돕기 위해 농활을 가는데, 짬짬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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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8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ka 2015-10-08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 챙기셔야죠.

과학무지자로서 의견을 내자면 관의 홍보로 원자력발전은 우리에게 부족한 전기를 주는 필요악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핵발전이라면 또 다르지않을까 싶어요.

감은빛 2015-10-08 13:03   좋아요 0 | URL
치카님, 고맙습니다!
건강 챙겨야죠. 급한 일이 겹쳐서 그랬는데, 이제 좀 나아질 겁니다.

그렇죠. 핵발전이란 단어가 가져오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정부와 핵마피아들이 원전이란 단어를 고집하는 거죠.
의견 고맙습니다!

2015-10-08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8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11-0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헌 선생의 책은 저도 최근에 구했습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요.ㅎ 이분 말빨이 좋아서 책도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은빛 2015-11-12 19:2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벙커원에서 했던 강연을 옮긴 것이더라구요. 유튜브에서 그 벙커원 강연의 일부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말씀이 청산유수더라구요. 강연을 듣는 것도 재밌었지만, 현장에서 듣는게 아니라 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반면 책은 내용을 조금 더 다듬어서 잘 만든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하고, 조금 더 알고 들으면 달라진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재즈란 음악이 어렵다고만 느꼈는데, 이 책 덕분에 좀 더 관심이 갑니다. 자주 듣지는 못하겠지만, 생각날때마다 하나둘씩 찾아듣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