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아직 감정이 남아있어 이 내용을 어떻게 옮겨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잘 옮기는 일은 늘 어렵다. 요즘은 짧은 기사 하나를 쓰는 일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보내고도 자신이 없다. 간혹 누군가가 잘 읽었다고 말을 걸어오면,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재미없었다고 생각할까봐 불안하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기획안이나 보고서 류의 글도 이젠 부담스럽다. 욕심때문일거다. 아마도. 잘 쓰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때문에 글쓰기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글은 계속 남는다. 언젠가 자료를 찾다가 오래전 내가 쓴 글을 발견하고, 급한 일도 미뤄두고 옛날 글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저땐 저렇게 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간혹 '이런 글도 썼구나' 싶을 만큼 괜찮은 글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수준 이하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글쓰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말은 곧 사라진다. 듣는이가 잊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이 덜하다. 말을 잘 하는 편은 못되지만, 어떤 행사나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거나, 발표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인터뷰에 응할 때 비교적 부담없이 결정하는 건 그런 이유다. 물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거나, 발표를 하면 긴장하고 몸이 떨린다. 준비를 했음에도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나고, 평소 자주 쓰던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순간만 넘기면 괜찮다. 일단 말을 내뱉고 나면 조리있게 말을 잘하지 못했더라도 큰 부담이 없다. 듣는 이가 조목조목 따지고,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끔 일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글을 청탁받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잘 전달하려면 인터뷰에 응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쓰는 게 훨 낫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인터뷰 후에 나온 기사를 보면 내가 말했던 내용과 조금 달랐다. 심지어 아예 촛점이 어긋난 글도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는 대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갖고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전달하려는 의도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나 자신이 인터뷰를 하러 갈 때와 다녀와서 기사를 쓸때 늘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암튼 어떠한 상황에 대해 내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을 직접 써야할텐데 요즘 그게 두렵다. 과연 핵심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글을 쓸 생각만으로도 벌써 스트레스가 쌓인다.
글쓰기나 말하기나 왕도는 없다. 그냥 많이 쓰고, 많이 말해야 조금씩 실력이 늘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늘 글을 잘쓰고, 말을 잘 하는 건 아주 먼 나라의 일인것처럼, 아주 먼 미래의 일인것처럼, 아니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인것처럼 느껴진다.
금요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음주독서나 해볼까? 오늘은 무슨 맥주를 마시며, 무슨 책을 읽어볼까? 집에가면서 고민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