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인 2월 27일에는 녹색당에서 마련한 강연이 있었다. [시대를 읽다]라는 제목의 3회 연속 릴레이 강연으로 이 시대의 약자인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각 약자의 대표로 김진숙 지도위원, 김조광수 감독, 정희진 선생이 바톤을 이어받으며 강연을 했다. 각각의 강연 제목은 "이 시대에 '노동자(성소수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앞의 두 강연, 김진숙 지도위원과 김조광수 감독의 강연은 시간이 맞지 않아 듣지 못했다. 마지막 강연은 꼭 듣고 싶어서 일정표에 중요 표시까지 해놓았는데, 평소 정희진 선생의 글과 생각에 동의하고 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유난히 강연을 가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그 날은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날이었다. 아내도 정희진 선생을 좋아해서 가고 싶어했으나, 선약이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강연장인 정동까지 가면 강연 시작시간인 7시는 훌쩍 넘어갈 게 뻔했다. 아마 빨리가도 7시 40분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강의에 집중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따로 아이돌봄 서비스는 제공이 안 될 것이고, 아이들이 긴 시간 지루해하지 않으며 잘 견뎌줄 지 걱정이었다. 보통 회의 참석이나 행사 참석 때에는 걱정없이 데려가는데, 아무래도 사람들 많고, 조용히 해야 하는 강연은 조심스러웠다.

 

두 번째는 감기였다. 며칠째 나와 아이들과 아내까지 우리 식구들은 모두 감기에 걸려 있었다. 특히 작은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가 이제 조금 좋아진 상태였다. 저녁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늦게 돌아오는 일정이 부담스러웠다.

 

세번째는 며칠째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였다. 잠시 밖에 다녀와도 목과 코가 불편하고, 그 덕에 감기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야 뭐 어쩔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을 미세먼지에 노출시켜가며, 나갔다 오는 것이 또 부담스러웠다.

 

당일 퇴근 전까지 강연을 갈지 말지 여러번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강연을 듣기로 결정했는데, 정희진 선생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 맞춰서 사무실을 나섰고, 집 근처에서 아내가 데리고 나온 아이들을 만났다. 아내는 약속 장소로 가고, 우린 버스를 기다렸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지 못하고, 집에서 가져나온 빵 몇 조각을 나눠 먹었다. 하필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오랫동안 오지 않았고, 날씨가 많이 풀렸어도, 저녁이 되니 제법 쌀쌀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춥다고, 왜 우리는 버스를 안 타냐고 한 마디씩 했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서 잠시 걸었다. 강연장인 '레이첼 카슨 홀'은 예전에 언론재단 건물에 있었는데, 정동으로 옮기고 나서는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분명 이 근처인데, 길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길가에 세워두고, 길을 찾아 헤매야 했다. 길을 찾는 와중에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붕어빵과 계란빵을 조금씩 샀다. 마침내 건물을 찾아서 로비에 들어섰는데, 또 다른 어려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강연장은 건물 로비의 왼쪽이었는데, 이미 꽉 차서 들어갈 자리조차 없었다. 앉을 자리는 커녕, 설 자리조차 없었다. 게다가 로비에는 아이들을 있을 자리가 전혀 없었다. 의자도 없었고, 추위를 피할 공간도 없었다.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강연은 한창 진행중이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나가서 배고픈 아이들과 식당을 찾아야하나? 꼭 듣고 싶은 강연이라, 여러 어려운 상황에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일단 아이들에게 붕어빵과 계란빵을 먹으라고 하고 잠시 사람들을 밀고 강연장 안으로 들어가봤다. 서있는 사람들에 가려 단상에 선 정희진 선생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을 잘 들렸다. 강연을 처음 듣는데, 말이 무척 빠르고,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였다. 강연이라기 보다는 아줌마 수다라는 느낌. 사람들은 강사의 말에 자주 웃었다. 웃을만한 내용이었지만, 그건 농담이라기 보다는 뼈있는 말이었다. 정희진 선생은 누구에게든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선 비판을 약간 누그러뜨릴만큼의 부드럽고 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잠시 서서 들으면서도, 로비에 있는 아이들에게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곧 작은 아이가 쪼르르 다가왔다. 다리가 아프니 앉고 싶다는 거였다. 일단 밖으로 나가 아이를 안았다. 의자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대책이 없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로비 안쪽 가운데에 있는 안내대 뒤쪽에서 경비아저씨가 여분의 의자를 꺼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계단 아래 자투리 공간에서 의자 하나를 꺼내셨다. 아이들은 빵들을 거의 먹어치우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안내대 뒤쪽으로 갔더니, 또 하나의 구세주가 있었다. 경비아저시가 텔레비전을 틀으놓은 것이다. 아이들은 집에 티비가 없어서, 밖에서 한번 티비를 보면, 마치 빠져들어갈 것처럼 꼼짝도 않고 티비에 집중한다. 여분 의자는 하나 뿐이라서 아이들을 반쪽씩 사이좋게 앉혀 놓았다. 곧 서로 좁다고 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소리지르지 말고, 사이좋게 있으라는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해주고 다시 강연장으로 들어갔다.

 

다시 강연장 입구에 간신히 몸 하나 서있을 공간을 차지했는데, 나처럼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오거나, 그냥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포기하고 가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제서야 강연장 전체를 돌아보니 뒤쪽에 책상을 쌓아놓은 곳이 있었다. 저 책상들을 빼고 그 자리에 사람들이 서서 들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난 어차피 아이들에게 신경쓰느라 입구에 서 있는 게 편했다. 강연을 들으면서 자주 밖을 내다보며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살피곤 했다.

 

역시 정희진 선생의 강연답게 날카로움이 있었다. 선생은 우선 강연 기획이 너무 상투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부터 지적했다. 우선 릴레이 강연 각 강사들이 하나의 역할만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누구나 다 노동자이며, 성소수자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래서 유명한 어떤 한 사람을 데려다 단 하나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듣는 다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자신이 여성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선다는 사실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신은 여자라기 보다는 아줌마이며, 또 오히려 남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도 했다. 또 강의 제목에 대한 문제제기도 했다. "~으로 산다는 것"이 유행하는 말이고, 강연 제목으로 쓰기에 적합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자신은 이 말을 무척 싫어한다고 했다. 이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 말이고, 약자가 자신의 피해를 하소연하는 말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부정적인 내용 외에도 긍정적인 내용을 다룰수도 있을텐데, 강연 제목을 저렇게 지어버리면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희진 선생이 생각하는 이 강연의 제목은 "약자가 되자"라는 것이었다.

 

정희진 선생의 강연 방식은 다소 산만했다. 이 얘길 하다가 중간에 어떤 중요한 개념을 소개하면, 갑자기 옆 길로 새서 다른 얘길 한참했고, 그러다가 또 돌아와서 원래의 이야기를 잠시 이어가는가 싶다가도 또 다른 옆길로 새곤 했다. 그렇지만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다양한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이거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 강사의 표현을 내 방식대로 다시 풀어쓰면 이렇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그거 자체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평일 저녁 시간에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어떤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사람들은 안 되고, 그런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도 안 되고, 아이들이나 집안 어른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도 안 되고(정희진 선생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을 해야하거나,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들도 안된다. 자, 전체 인구에서 이런 사람들을 다 빼고나면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저녁에 밖에서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정상인(소위 말해 장애가 없고, 건강한 사람들), 시민(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 선생 말씀으론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이주노동자처럼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고학력(대부분 대졸 이상), 중산층(이 단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체감이 많이 다르겠지만), 유권자 등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두세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강사는 3.5명을 거치면 다 아는 사람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이 말이 갖고 있는 의미는 그 만큼의 심각한 계급사회라는 뜻이다. 끼리끼리 놀고, 일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자기들끼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경제력에, 비슷한 성적의 학교를 나오고,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쪼개어보면 세분화된 무수히 많은 계급으로 다시 나눌 수 있고, 이 계급의 틀을 벗어나면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말했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며 생각난 것이 있었다. 재작년 총선 직후였다. 득표율 2%를 넘지 못해 정당 등록이 취소(얼마전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았고, 같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위헌 판결을 받아, 녹색당의 이름을 되 찾았다.)되는 녹색당, 진보신당, 청년당 이렇게 3당이 선거 뒷이야기를 나눈 '수다회'의 사회를 보았는데, 이때 내가 한 말이 이런 거였다. 나는 정말 녹색당의 득표율이 이정도로 낮을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대부분 녹색당의 당원이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상 선거 결과를 보고서 내가 얼마나 좁은 틀안에 갇혀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랬다. 정희진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는 사실 일반화하기 어려울만큼 특수한, 좁은 사회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이 사회의 평균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운동가나 지식인이나 정치인 등이 자기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인간은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사람들(앞서 말한 운동가, 지식인, 정치인)은 이 범주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소위 유명한 좌파 운동가나 지식인 중에서도 이렇게 자기 범주를 벗어난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비로소 올바른 운동이나 정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도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내용을 누구나 다 알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정희진 선생은 되도록 상세하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보편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첫 출발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참 강연을 듣고 있는데, 다시 작은 아이가 다가왔다. 춥다는 것이었다. 로비는 춥긴 했지만, 아까 경비아저씨께서 전기 난로 근처에 아이들을 앉혀 주셔서 괜찮겠지 싶었다. 게다가 강연 도중에 경비아저씨는 자신의 의자마저 양보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잡다한 일을 하고 계셨다. 아마 두 녀석이 의자 하나를 두고 티격태격했을테고, 보다못한 아저씨가 작은 아이를 자신의 의자에 앉혀주시고, 굳이 지금 안 해도 될 일을 찾아 부산하게 움직이고 계신 게 아닐까 싶었다. 고맙고 또 죄송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까 싶었는데, 당장은 강연을 좀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직 강연이 좀 남았지만, 더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비 아저씨께도 죄송했고, 나도 배가 고팠고, 계속 서있었더니 다리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아마 빵만으로는 요기가 안 되었을테고, 작은 아이 감기가 다 낫지 않은 상황에 춥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애들을 챙겨서 나와야 했다. 경비아저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뭐라도 하나 드리고 싶었는데, 가진 게 없었다. 가방에서 잡지 한 권을 꺼내 심심할 때 읽으시라고 전해드렸다. 감사하다는 말씀에 허허 웃으시며 괜찮다고 어차피 할 일이 있어서 일어난 거라고 하셨다.

 

늦게 도착했다가 먼저 일어나느라 강연장에 있던 여러 아는 분들과는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물으니,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배를 채웠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생각을 크게 열어주는 훌륭한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기분은 무척 좋았다. 서둘러 돌아왔는데도, 집에 돌아온 시간은 많이 늦었다. 피곤해하는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아빠 때문에 늦게까지 춥고, 피곤하고, 힘든 시간을 보낸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뽀뽀를 전했다.

 

 

 

 

 

 

 

 

 

 

 

 

 

 

 

아내 덕분에 초판이 나오자마자 구매해서 읽었고,

새로 나온 개정판도 아내가 구해왔다.

지금 우리집 책장에는 두 책이 함께 꽂혀있다.

초판은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시간나면 개정판과 초판을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었다.

조만간 꼭 다시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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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3-0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저의 고민을 말씀드립니다. 누구나 자기 우울 안에 사는 것에 동감하지만, 그 경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자칫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모든 규칙을 갖은 것은 아무런 규칙을 갖지 않는 것과 같을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노회찬씨가 이야기한 정의당이 새로 생기는 야당 통합에 거절한 이유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감은빛 2014-03-05 14:54   좋아요 0 | URL
'우울'인가요? '우물'인가요? 아마도 우물이겠죠?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해 토론을 한번 해봐야겠네요.
알을 깨야한다는 은유나,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그 범위를 벗어나야 보이지 않았던 범위가 보인다는 뜻이죠.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하지만,
특히 운동가나 지식이나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는 뜻이죠.

노회찬씨와 정의당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몰라서 공감하기 어렵네요.

마립간 2014-03-05 15:21   좋아요 0 | URL
우물입니다. 오타입니다.

1) 노회찬씨의 정의당에 관한 이야기는 신문 기사가 전부입니다. 그 기사로 받은 저의 개인적 느낌입니다.
2) 알을 깨야 한다. 매트릭스의 약, 한계를 넘어서 범위 등과 그리고 운동가, 지식인, 정치인 등에 주어진 의무 ; 모두 동의합니다. 아마 제 댓글은 제 기준에 의하면 변절로 분류될 운동가, 지식인, 정치인때문에 생긴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3) 정체성 ; 2번과 같은 이유로, 변하지 않을 정의나 옳음, 선에 갈망에서 비롯된 용어 같습니다.

감은빛 2014-03-06 14:09   좋아요 0 | URL
두번째 말씀을 읽고 나니 어떤 말씀이신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해요.
저는 변절한 운동가나 정치인들이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정체성이라는 건 고정된 어떤 상태나 개념처럼 느껴지지지만,
실은 끊임없이 성찰하고 바꿔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생각의 범위를 넓혀 보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4-03-05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비로소 올바른 운동이나 정치가 이뤄지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네요.

아이들이랑 힘들게 강연장 찾아가는 모습이 막 그려져요. 참 부지런하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는 것에 멈추지 않고,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려는 아빠의 적극적인 모습을 아이들도 예쁘게 기억할것 같아요.

보내주신 책선물 잘 받았습니다. 감사해요, 감은빛님. 잘 읽겠습니다^^

감은빛 2014-03-05 14:49   좋아요 0 | URL
그 문장으로 정희진 선생이 말씀하신 건 아니예요.
제가 들은 내용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어쩌면 강사의 의도와 관계없이 제가 잘못 해석한 것인지도 몰라요. -_-;;

책 잘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고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3-0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따지고, 학력 따지고, 경제력 따지고...그래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니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죠.전에 어떤 사회학자가 그러는데 한국인은 자기와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도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감은빛 2014-03-06 14: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첫 만남에서 무례하게 나이 묻고, 결혼 여부를 묻고, 직업도 묻죠.
그래서 자신과 묶이는 게 별로 없으면 곧바로 관심을 두지 않더라구요.
저는 반대로 학교 동창회 따위의 친목 모임을 나가는 것이 두려워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인간들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더라구요.
잠시라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