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찾기


야근을 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 머리가 멍했고, 일을 하려고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던 일을 끝내고 가고 싶어서 계속 앉아 있었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거의 막차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서는데, 서류 하나를 놓고 온 것이 떠올랐다.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또 일을 할 건 아니니까 그냥 가자고 생각했다. 그 잠깐의 망설임 때문이었을까? 열심히 뛰어서 지하철 역에 개찰구를 통과해 승강장에 내려셨는데, 막차의 문이 닫히고 열차가 떠나버렸다. 단 1분만 더 빨랐어도 탈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피고감이 몰려왔다.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개찰구를 향했다. 지하철을 타지도 못했는데, 요금은 내고 나갔다. 큰 길로 나가서 택시를 기다렸다.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빈차는 많았으나, 이쪽으로는 빈차가 오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몸을 때렸다. 몸이 덜덜 떨렸다. 겨우 빈 택시를 잡아 타고 집에 오니 새벽 1시였다.


문득 찾아볼 내용이 생각나서 책 한 권을 찾기 시작했다. 이사하고 나서 아직 책 정리를 하지 않아, 책은 제멋대로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래도 평소에 대충 어디쯤 있을거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어렵지 않게 책을 찾아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성대앞 사회과학전문 서점인 풀무질에서 책을 샀고, 조금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 있는데, 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리가 없는데, 여기 어디쯤 있을텐데 하고 찾고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피곤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책 찾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쯤하고 그냥 잤어야 했는데, 결국 모든 책장을 다 훑기 시작했다.


한시간 반 동안 모든 책장을 다 뒤졌지만 원하던 책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 사무실에도 없을텐데. 이상하다. 없을 리가 없는데, 어디 갔을까? 결국 그 책을 다시 사야하나, 도서관에 있을까 등을 생각하느라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뜨니 새벽에 내가 왜 그 책을 찾아 헤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어떤 부분을 찾아보고 싶었던 건데, 그게 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난 그 늦은 시간에 무슨 짓을 한걸까?

 

달콤한 휴식


2월 초는 정말 죽을만큼 피곤하고 힘든 나날들이었다. 특히 2월 3일, 월요일은 최고였다. 년초에 정리해야 할 업무들이 밀려 있었고, 월초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주초에 처리해야할 일상업무들 역시 미뤄둘 수 없었다. 그러나 연휴때 제대로 쉬지 못한 몸은 월요일 아침부터 휴식을 원했다. 입 속과 코 속의 헐어버린 상처들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 저녁에는 중요한 행사가 있었고, 금요일에는 지역 녹색당 총회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총회를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해야하는 입장이었다. 낮엔 회사일을 하고, 저녁엔 행사나 회의가 있었고, 밤에는 녹색당 일을 해야했다. 술을 마시거나,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나서, 새벽에 집에 들어오면 다시 녹색당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드디어 금요일, 함께 준비한 여러 당원들 덕분에 성공적으로 총회를 마치고, 뒤풀이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술도 술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로 밤을 지새웠다. 토요일 아침에 집에 들어갔고, 그대로 뻗어서 잤다. 늦은 아침에 아이들 밥을 차려 먹이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다가 다시 낮잠을 잤다. 또 아이들 밥을 차려 먹이고, 책을 한 권 펼쳐 들었다. 오래전 알라딘 이웃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었는데, 받았을 당시 조금 읽다가 말고 방치해두었던 책이었다. 한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다가 아이들에게 늦은 저녁을 먹이고, 씻긴 후,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다.

 

전날 일찍 잠들었음에도 일요일엔 늦잠을 잤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덕분에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배가 고프면 대충 챙겨먹고, 졸리면 자고, 깨면 다시 책을 읽었다. 오후 늦게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왔다. 읽던 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책을 어서 읽고 아이들과 놀다가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자가 왔다. 지역 시민신문에 연재하던 글의 마감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사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건 아니고, 마음 한 켠에서는 고려를 하고 있었던 거였는데, 당장 몸이 피곤하니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주말 이틀간 그토록 원했던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일요일 밤에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야하다니 갑자기 우울해졌다. 해야할 일이라면 빨리 해치우는게 낫다. 1년간 계속했던 시민신문 연재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아직 글감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던 터라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이는 상태로 제법 오래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뭔가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거의 쉬지 않고 빠르게 글을 써나갔다. 중간에 한번 분량을 확인하느라 잠시 쉬었을 뿐 30여분 많에 정해진 분량을 살짝 초과한 상태로 글을 마쳤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조금 남아있던 책을 마저 읽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써놓은 글을 고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문장과 표현들을 지우고, 어색한 내용을 바꾸고, 비문이 없나, 오타는 없나 꼼꼼히 살폈다. 대략 세 번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본 후에 글을 저장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시간이 제법 늦었다. 월요일을 위해 자러 가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푹 쉬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몸을 뉘었다.


책, 낮술, 저녁술


다음 한 주도 바빴다. 저녁에 회의나 술자리가 있었고, 아이들과 보내는 날도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작은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졸업식을 겸한 음악발표회가 있었다. 제목은 음악발표회이지만 괴상한 영어 노래를 틀어놓고 아이들에게 해괴한 옷을 입히고 춤을 추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행사다. 큰 아이때부터 벌써 몇 해째 참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젠 대충 무슨 무슨 순서로 진행될지도 뻔히 다 외울 지경이다. 올해도 장미 한 송이를 사서 행사가 진행되는 교회 강당으로 갔다. 저녁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다. 처음 이 행사에 참석했을 때, 늦은 시간까지 행사를 진행하는 원장에게 화가 많이 났었다. 어른들도 배가 고프지만, 아이들이 그 늦은 시간까지 밥도 못 먹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게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그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행사가 끝나고 원장에게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늦게까지 행사를 해야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 해부터는 조금 더 일찍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저녁을 먹기에 늦은 건 변함이 없다.


작은 아이는 아직 어려서 무대에 오르는 횟수도 적고, 언니 오빠들에 비해 일찍 순서가 끝나 옷을 갈아입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다른 부모들과 달리 우리는 서둘러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아이들은 피자를 원했고, 택시를 타고 근처에 있는 맛있는 피자집을 향했다. 작은 아이는 꽃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큰 아이도 자신이 했던 공연들을 하는 후배들을 보느라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나는 무척 피곤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얼른 아이들을 씻기고 일찍 잠들었다.


토요일에는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아, 정말 행복했다. 주말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쉴 수 있다니! 아내는 일이 있어서 나갔고, 아이들 점심을 차려주고 나는 책을 계속 읽었다. 별로 입맛이 없었는데, 책에서 자꾸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의 비극적인 처지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나도 술이 땡겼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청하가 한 병 있었다. 낮술을 마시면서 책을 계속 읽었다. 술병은 금방 비었고, 더 마시고 싶었으나 술 사러 나가기가 귀찮아서 다시 누워서 책을 읽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아이들 저녁을 차려줘야 했는데, 집에 마땅한 반찬이 없었다. 음식을 만들기가 너무 귀찮았다. 대충 어떻게 때워볼까 싶어서 냉장고를 뒤졌는데, 별로 쓸만한 게 없었다. 아이들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라면을 원했다. 라면을 먹이고 싶지는 않아서 계속 고민을 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마땅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분식집에 갈까? 치킨집에 갈까? 마침 길 건너편에 새로 치킨집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곳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치킨과 감자를 시켜주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벽에 붙어있는 큰 티비에서 쇼트트랙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동계올림픽을 하고 있었구나.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서 일부러 만들어놓은 얼음판 위에서 운동을 하는 모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올림픽이라는 행사 자체가 사실은 전쟁이다. 국가별로 누가 금메달을 더 많이 따는지를 놓고 경쟁하는 모양새도 영 보기 싫다. 생각은 그렇지만 막상 경기를 보니, 선수들이 트랙을 빠르게 도는 모습은 흥미롭긴 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고기와 감자를 먹으면서도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맥주를 두 잔째 마셨다. 간혹 쇼트트랙 경기를 보기도 하고, 폰으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맥주 세 잔을 마시고 나니, 아이들도 대충 접시를 비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적당히 취기가 올랐다. 낮술에 이어 저녁술까지 먹은 덕분이었다. 재빨리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잠들었다.


일요일엔 등산을 다녀왔다. 북한산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산에 올라 기분이 무척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파른 바윗길이어서 제법 힘들었다. 내려와서 산에 다녀온 시간만큼 술을 마셨다. 적당한 피로감과 적당한 취기로 기분이 제법 좋았다. 집에서는 읽던 책을 마저 끝내고, 일찍 잠이 들었다.


또 다시 바쁜 한 주가 이어졌다. 사실 이 글은 이주째 쓰다 말다, 또 이어서 쓰다 말다 하는 중이다. 어제는 회의를 마치고 친한 선배 집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말고 누군가 티비를 켜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봤다. 김연아 경기를 보는 건 처음이다. 나는 평소 김연아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가끔 언론이나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왜 다들 김연아에 열광하는 걸까? 혹시 내가 경기를 보지 않아서 모르는 건가? 만약 그의 경기를 본다면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관심은 없었지만 술을 먹다말고 김연아의 경기를 봤다. 피겨스케이트라는 경기의 룰과 기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경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랬다. 그의 기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지만, 별로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오늘 보니 김연아의 은메달을 두고 각종 언론과 SNS가 난리였다. 여전히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또 다시 돌아온 금요일.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에는 또 일정이 있다. 그래도 하루는 꼭 비워두고 누워서 책을 읽을 거다. 책 읽으면서 맥주도 마셔야지. 퇴근하면서 읽을 책과 마실 맥주를 고르는 것도 재밌겠다.
















2월 초에 과천에서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가고 싶었고, 가려고 했다. 당일 아침까지도 고민을 햇지만, 쉬고 싶었기에 그냥 집에서 책을 읽었다. 서형원 선배는 현재 과천 시의원이다. 무소속으로 재선까지 당선된 것은 대단하다 싶다. 그리고 이번에는 녹색당에서 과천 시장으로 출마한다. 그는 한때 내가 몸담았던 단체의 선배 활동가였고, 한때는 이웃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그가 과천에서 새로운 녹색 정치를 펼쳐갈 수 있도록,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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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2-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아무리 봐도 너무 바쁘게 사시는 분이어요^^*
그 가운데 글쓰고, 책 읽고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게 대단하게 보여요.
저질 체력에, 게으름이 습관화된 저 같은 이 크게 반성합니다.^^*
늘 반성문만 쓰는 게 문제지요ㅠ

감은빛 2014-02-24 17:54   좋아요 0 | URL
흠, 저만 바쁘게 사는 건 분명 아닐테고,
다들 바쁘게 살지만, 저처럼 유난떨지 않는 거겠죠.
직장일과 집안일과 녹색당과 취미 등을 다 놓지 않고 싶어서,
다시 말해 욕심이 많다는 거죠.
게다가 능력도 안되는 주제에 욕심만 많으니 늘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팜므느와르님, 저야말로 게으름쟁이입니다.
그저 이불 속에 누워서 안나왔으면 좋겠어요. ㅠ.ㅠ

transient-guest 2014-02-26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주독서는 참 좋은데, 책을 읽기에 무리가 없는 접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가끔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면서 책을 읽다가 종국에는 책을 덮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감은빛 2014-02-26 11:1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술이 점점 들어가도보면 책을 덮을 때가 있죠.
제 경우에는 주로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에 작정하고 책을 골라 읽는데,
그땐 술을 아주 적당히만 먹고, 책에 집중하곤 합니다.
이것도 습관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