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꾸만 생기는 오해 때문에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래도 또 오해는 생기겠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을 닫고 있는 나를 보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읽어내려 할 테니까. 하긴 내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 가끔은 나 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는데, 남이 어떻게 내 생각을 알 수 있겠어? 삶에서 오해란 일상적으로 늘 발생하는 것. 필수적인 것이겠지.
상처
그래. 좋아! 오해는 생길 수 밖에 없어. 그런데 그 오해로 인해 입은 상처는 또 어떻게 해야하지? 오해가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뒤따라오는 상처도 역시 삶에서 필수적인 것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유명인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던데, 청춘을 한참 지난 나는 왜 늘 아픈 걸까? 아직도 청춘이라 여기라는 건가? 아니면 청춘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늘 아픈 걸까?
아니. 그래. 다 좋아! 아플 수도 있지. 아프기도 하고 또 낫기도 하는 것이 인생일테니. 그런데 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지겨워 질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잠시 아픈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아픈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또 상처입고 또 상처입게 될 거라는 게 뻔히 눈에 보일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연말 풍경
연말은 늘 똑같아. 지겹도록 술을 마시고 또 다음날이면 술을 마셔야 하고 또 그 다음날에도 술을 마셔야 하고. 술자리 얘기도 대개 비슷해. 지난 1년간 수고 많았고, 또 다음 1년간 수고해라! 뭐 이런거지. 이 역시 완전 똑같은 패턴. 물론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기는 해. 하지만 내 머리는 그리 좋지 않아. 디테일은 늘 쉽게 잊어.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떠들고 마셨던 그 날의 기억이 작년 것인지, 재작년 것인지, 아니면 삼사년 전의 것인지도 가물가물해. 올해는 철도 민영화, 안녕들, 밀양 송전탑, 의료 민영화 등이 술자리에서 거론되었지만, 어느 해라고 안그랬나? 김대중 시절에도, 노무현 시절에도, 이명박 시절에도 늘 정부는 서민들의 목을 졸라댔고, 우리는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늘 술을 마셨지.
나랑 상관없는 어느 서양인의 생일
내일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느 서양인의 생일이라는데, 아니 그 동네가 서양이었던가, 동양이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십자가에 매달린 그 모습은 서양사람 느낌이니 그냥 서양인이라고 하자. 아주 옛날에 살았던 분이라는데, 심지어 그 생일도 실제로 그 분의 생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데, 왜 우리는 그런 사람의 생일을 기념해야 하는 거야? 아, 물론 이렇게 말하면 역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느 인도인의 생일을 기리는 날을 들먹일거야. 그래. 나는 그것도 이상하다 생각해. 그치만 인도인의 생일을 기리는 분위기와 서양인의 생일을 기리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 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거야.
거리에 흘러넘치는 해마다 똑같은 음악들은 지겨워! 나무들에게 뜨거운 전구를 잔뜩 달아서 눈을 어지럽히는 짓거리도 꼴보기 싫어. 아름답다고? 예쁘다고? 누군가 너에게 뜨거운 전구를 잔뜩 매달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면 네 기분은 어떨까? 넌 전구가 무겁고, 칭칭 감겨있는 전선이 갑갑하고 답답하고, 열을 내는 전구들이 뜨거워 괴롭기만 한데 말야.
흰 수염에 배 나온 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준다는 괴상한 얘긴 정말 듣고 있기 힘들어. 썰매를 타고 날아다닌다고? 그 배 나온 할아버지가 굴뚝을 통과해서 다닌다고? 굴뚝이 없는 집은 어떻게 할거야? 게다가 이거 불법주거침입이잖아. 선물이란 것도 그래. 사람마다 갖고 싶은 게 다 다를테고,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닌 다른 특별한 것들도 많을거야. 그 할아버지가 대체 어떻게 모든 이들에게 다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거니?
오늘 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마. 오늘은 그냥 12월 24일이란 숫자가 매겨진 하루일 뿐이야. 그저 어제와 똑같고, 내일과도 똑같을 하루. 괜한 의미를 부여했다가 나중에 더 실망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지내. 그래 그게 제일 좋을거야.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어느 추운 겨울 날 내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