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

 

주말에 녹색당 지역모임에 회의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애들은 아빠가 회의를 하는동안 알아서 노는 일에 익숙하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근처에 사는 아이들과 놀이터에 놀러간다.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데, 큰아이가 자꾸 아빠를 부른다. 왜? 큰 소리로 대답하니, 빨리 와보라고 한다. 회의를 진행하던 입장이어서 갈 수 없으니 말로 하라고 했다. 그러니 말로 할 수 없다고 와보란다. 옆에 있던 당원들이 잠깐 갔다오라고 해서 가봤다. 작은 녀석이 물 컵을 엎어서 탁자와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물을 쏟았으면 걸레나 행주를 찾아 닦아야지. 큰 아이에게 걸레를 찾아 건네주고 다시 회의하러 갔다.

 

회의가 끝나고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를 한 잔 했다. 한 분이 말씀하시길 "아유! 좋으시겠어요. 따님이 둘이니, 저는 아들만 둘이라서......" 뭐, 딸은 딸대로 예쁘고 귀여울테고, 아들은 좀 더 말썽을 부리긴 하겠지만, 그 나름 귀엽고 사랑스러울텐데. 물론 서로 못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질투심은 있을 것이다. 난 식당이나 공원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남녀 상관없이 무척 좋아하고 잘 놀아주는데, 아내는 하필 내가 남자 아이들을 예뻐해줄 때만 그 사실을 지적한다.

 

어른 다섯과 아이 둘이 치킨 두 마리와 맥주 서너병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헤어질 무렵 누군가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랑 놀러나와서 좋아?" 아이는 당연히 좋다고 대답을 했을테고, 그 누군가는 다시 질문을 바꾸었다. "아빠랑 노는 게 좋아? 엄마랑 노는 게 좋아?" 아이는 아마 아빠라고 답을 한 것 같다. 옆에 있던 큰 아이도 덩달아 "나도 아빠!"라고 대답을 했다. 질문을 했던 누군가는 내게 와서 "아유, 딸들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네요! 비결이 뭐예요?" 그러나 그 질문은 잘못된 사실을 근거한 것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보다는 엄마를 훨씬 더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그런 류의 질문을 하면 대개 그 당시의 상황에 따라 답을 한다. 엄마랑 있으면 엄마를 답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아빠랑 있으면 아빠를 답하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 그리고 아빠랑 있어도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를 답하는 경우가 제법 많고, 엄마랑 있으면서 아빠를 떠올려 아빠를 답하는 경우는 아주 적지만 가끔 있다. 어쨌거나 빈도를 따져보면 엄마가 답이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회의도 마치고 간단한 뒤풀이도 마치고 아내를 만나 공원으로 놀러갔다. 토요일 저녁이라 조금 늦은 시간까지 부담없이 바람을 쐬었다. 아이들은 낮에 누군가에게 아빠가 더 좋다는 답을 했던 것을 잊은 것처럼 아빠를 밀어내고, 엄마만 찾았다. 채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배신감에 이미 아주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맨 처음 배신감을 느낀 때는 아마 아내가 해외출장을 다녀 온 후였을 것이다. 큰아이가 두 돌이 되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둘째는 아직 없었다.) 대략 보름 가량 아내가 집을 비워야 한다고 했을때 걱정이 되긴 했다. 아이를 돌보는 건 늘 함께 하던 일이니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별로 엄마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에 도움을 줄 어른인 아빠에게 더 확실하게 애정표현을 했다.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잘 받아들이는 듯 했다. 누군가 물으면 엄마는 아주 멀리 갔으며 며칠 밤이 지나면 돌아온다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돌아오고 나니 아주 서럽게 울었으며,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 이유없이 아빠를 미워하고 밀어냈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비슷한 패턴은 반복되었다. 아이는 대견스럽게도 엄마의 부재를 잘 견뎠는데, 엄마가 돌아오면 이유없이 아빠를 밀어냈다.

 

그 배신의 수준이 가장 심했던 것은 아내의 마지막 출장이었다. 둘째가 아직 어려서 걱정이 되었다. 큰 아이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제 초등학생이니 잘 견디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장 기간도 둘째가 걱정되어 확 줄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었다. 막상 아내가 떠나고나니 큰 아이가 심하게 엄마를 찾았다. 작은 아이는 평소에도 자주 울었고 딱히 엄마를 찾아 더 많이 울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 아이 둘을 깨워서 씻기고 입히고 간단히 먹여서 데리고 나와야했다. 큰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찾아 울었고, 작은 아이는 언니를 따라 울었다. 달래고 얼르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출근 준비를 했다. 간신히 준비를 마치면 어린이집을 들렀다가 학교에 들렀다가 출근했다. 하루는 비가 많이 왔는데, 한 팔에 작은 아이를 안고, 기저귀 한 꾸러미와 분유가 든 가방을 매었고, 다른 한 손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큰 아이는 우산을 들고 내 가방 끈을 붙잡고 따라왔다.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자세 때문에 발밑을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맨홀 뚜껑에 발이 미끄러졌다. 몸이 휙 기울어지면서 넘어졌는데, 이대로 넘어지면 아이가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이 기묘하게 비틀어지면서도 아이만은 품에 꼭 안았다. 하필 아내가 없는 아침에, 하필 어린이집에 기저귀가 떨어져서 갖다주는 아침에 이렇게 비가 오나 싶어 무척 원망스러운 아침이었다. 발을 절뚝거리며 아이 둘을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 길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아이 둘을 돌보면서 직장 일을 해낸 그 길고 험난했던 일주일이 지나 아내가 돌아왔다. 아이들은 예상을 저버리지 않고 엄마에게만 매달렸고, 아빠를 멀리하고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건만 당연히 올해도 그러리라 예상했건만 그때만은 나도 무척 서러웠다. 지난 일주일 동안 고생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멀쩡한 녀석

 

작은 녀석은 자주 아침에 깨자마자 짜증을 부리고 울어댄다. 큰 녀석도 한동안 거의 매일 깨우면 짜증과 울음을 반복했지만, 아내와 내가 달래보고 또 야단치고 다시 대화하는 등 계속 노력해서 많이 좋아졌다. 작은 녀석은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만 달래고 야단치고 알아듣게 얘기해도 변화가 없었다. 정신 없는 아침, 요즘처럼 아침부터 더운 날엔 그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어쩐 일로 웃으며 일어나서 한 번도 울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양말도 혼자 찾아 신고 나보다 먼저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찾아 신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빠도 회사 가야지?" 하고 묻는다. 아주 멀쩡한 얼굴로.

 

또 며칠 전 저녁엔 운동을 나가려고 준비중이었는데, 작은 녀석이 "아빠, 아빠 어디 가?"하고 묻는다. "아빠 운동하고 올게." 했더니, "아빠 지금 깜깜한데 운동하러 가?" 라고 묻는다. 그래서 "응. 아빠는 저녁에 운동하러 가." 하고 답했다. 잠시 생각하던 녀석은 "아빠, 어, 아빠 지금 깜깜하니까 조심해야 돼. 어, 어, 또 비 올때, 어, 비가 오면 위험하니까 빨리 와야돼. 알았지?" 하고 말한다. 아주 멀쩡한 얼굴로.

 

요 녀석이 이제 아빠 걱정을 할 정도로 컸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빠가 조심해서 다녀올게. 빨리 올게." 라고 말해주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잠시 아빠 걱정을 해주던 녀석은 금새 인형과 장난감을 찾아 뛰어갔다.

 

경상도 말에 '시건이 멀쩡하다'는 표현이 있다. 대략 '대견하다.', '어른스럽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특유의 경상도 말투로 해야 어울리는데, 요즘 작은 녀석을 보면 저절로 이 말이 튀어나온다. "요 멀쩡한 녀석!"

 

 

아쉽다!

 

 이번 주 들어 읽기 시작한 책이다.

 물론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에 시작한 책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

 왠만하면 소설책은 주말에 밤을 새서 한번에 몰아서 읽으려하고,

 그외 나머지 책들은 천천히 쉬엄쉬엄,

 이거 조금 읽다 또 저거 조금 읽다 하고 있다.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민요 등을 다루고 있다.

 아, 맨날 수업 안들어가고 땡땡이 치거나,

 수업을 들어가도 잠만 잤던 국문과 시절이 생각난다.

 

 

 

 

  해방일기를 야금야금 읽고 있었다.

 워낙 천천히 띄엄띄엄 읽으니 진도가 늦다. 

 현재 2권을 읽고 있다. 2권을 다 읽어갈 무렵 3권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알라딘에서 1~5권 세트를 반 값 할인 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앗! 이럴수가! 반 값이라니!

 

 이걸 지르려니, 이미 사서 읽은 1, 2권이 아깝고, 무시하고 지나가려니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서 놓치기가 아깝다. 잠시 마음의 동요가 일었으나,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 지금 사놓아봐야 어차피 5권까지 다 읽으려면 아주 오래 걸릴거다. 원래 읽던 속도대로 천천히 읽으면서 3권 사고, 또 나중에 4권, 5권도 사면 되지 뭐. 당장 읽지 않을 것을 미리 사는 것은 낭비다. 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지만, 그날 이후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다 반 값 할인 끝날 즈음에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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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8-2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ㅎㅎ
아빠의 입장에서 쓴 아이들의 이야기 참 재밌어요. 한편으로 다른 집들도 비슷비슷하구나 싶고요.
아이들이 부모를 걱정하는 표현할때, 가슴 뭉클한 뭔가가 있었는데......애들 마음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우리가 더 부끄러울때가 있죠.ㅎㅎ

감은빛 2013-08-29 2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꿈꾸는섬님.
아이들 키우는 집은 대개 비슷하겠죠.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말씀처럼 아이들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해
늘 미안하고 또 부끄럽고 그렇네요.

Mephistopheles 2013-08-3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신감....공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죠.
엄마에게 들러붙는 건 물론이요. 단 둘이 있을 때 일을 엄마에게 고발까지 하니까...ㅋㅋㅋ

감은빛 2013-09-06 09:57   좋아요 0 | URL
역시 아빠 입장에서 공감해주시는군요.
아이들은 무서워요!
엄마나 할머니한테 금방 다 일러버리니까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3-08-3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딸은 제 딸이 아니예요 ㅎㅎㅎ
제가 오면 손정도 흔들어주고 할머니가 오면 격하게 뛰어가서 안겨요.. 외로워요 흑흑

감은빛 2013-09-06 09:58   좋아요 0 | URL
음 지금은 그렇군요.
좀 더 지나면 더 심하게 엄마를 찾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오히려 지금이 더 좋았지 싶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