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1월 1일 이라는 숫자는 좀 재미있다. 새 해를 시작하는 첫 달 첫 날.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24시간, 365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날, 달, 해 라는 시간 개념이 익숙해서 다른 별은 이게 완전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과학과 수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 하지만, 우리가 다른 별을 이주해 살아가야 한다면, 일단 지구와 시간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구보다 자전 주기가 훨씬 긴 별이라면 엄청나게 긴 하루를 살아야하겠지. 그런 곳이라면 하루에 여러 차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자전 주기가 지구 시간으로 100시간인 별이라면, 한 8시간이나 10시간 단위로 일과 휴식을 반복하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삼체]라는 작품에서처럼 해가 여러 개인 별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 곳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이 아주 짧거나, 어쩌면 아예 없을수도 있겠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긴 시간 적응해 살아왔기 때문에 이 24시간, 30일, 365일의 단위를 만들어 그에 맞게 생활해왔다. 만약 먼 미래에 지구에 살던 사람이 어딘가 다른 별로 이주한다면, 지구에서 살아봤던 사람은 새로운 별의 시간대에 적응하기 어렵겠지. 그 별에서 태어나 지구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떨까? 유전자에 각인된 시간 개념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태어난 별의 시간 흐름에 쉽게 적응할까?
아, 물론 우리 인간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은하라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약 250만년 걸린다고 하니, 다른 은하를 가보는 건 불가능한 일일테고,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다른 항성까지는 얼마나 걸리려나? 1977년에 발사한 보이저들은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는 중이라고 하는데, 그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이 얼마나 넓은지, 즉 우리 태양이 얼마나 넓은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사람이 타고 출발할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보이저가 출발한 시점보다 얼마나 더 우주공학이 발전했을지 몰라도 수명이 100살이 채 되지 않는 사람이 평생을 가도 못 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앞서 자전과 공전 주기가 완전히 다른 별로 이주하는 상상을 한 것은 결국 다 쓸모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과 생각이 대부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제부터 수없이 받고 있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카톡과 문자들을 보면 복을 바라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은 죄책감이 들 정도다. 나는 정말 딱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인사말로만 저 말을 쓰는데, 많이 쓰지도 않고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사적 친분 보다는 공적으로 얽힌 관계들에서 더 많이 쓴다. 당연히 그 분들이 실제로 복을 받으시라고 한 말은 아니다.
며칠 전에 사기 경험을 적은 글에 몇 년째 연락하고 지내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다고 썼었는데, 어제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제주항공 참사 소식을 접하고 쓴 듯, 혹시 내 주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물으며, 사고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해왔다. 나는 다행히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없었다고, 안부를 물어주고, 함께 애도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Happy new year 를 써서 보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런 식이 되었다. 명절이나 어떤 특별한 기념일에 인사를 건네고, 최근 소식들을 주고 받고 한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이번 처럼 큰 사고가 나면 또 생각나서 연락을 하게 된다. 몇 년 전이었는지, 그게 어떤 사고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데, 인도네시아에 큰 일(아마도 지진?)이 생겼을 때 나도 걱정을 담아 연락했었다. 아마 이번 참사가 없었다면, 그냥 새해 인사를 서로 나눴겠지.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친구가 이렇게 걱정을 해주고 신경을 써준다는 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디의 무슨 ‘장‘이라는 직함(예를들면 총장, 이사장, 회장 등)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형식적인 새해 인사를 보내오는데, 예전에는 일일이 답을 했지만, 이젠 아예 답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폰에 저장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것일테니, 나 하나 답을 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물론 그중에 일부러 나를 찾아서 나를 떠올리며 보내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 밥을 먹다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이런 메세지들 때문에 흐름이 끊긴다.
시국이 시국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이유가 있어서 이번 연말은 조용히 보냈다. 오라는 데가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못 가거나 안 갔다. 이제 나도 새로운 기분으로 늘 하던 일들을 다시 해야지. 물론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북플에서 지난 오늘 메뉴를 열었는데, 당연히 글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내가 알라딘을 이용해 온 약 20년 동안 1월 1일에 쓴 첫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