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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그가 매우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정반대로 평소에는 무척 과묵한 편이데, 글을 쓸 때만 끝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쩜 이렇게 많은 지식을 끝없이 쏟아낼 수 있을까? 그의 이런 경이적인 ‘수다’능력 덕분에 그의 책은 늘 재밌다.
빌 브라이슨이 이번에 관심을 가진 건 집이다. 그가 살고 있는 영국 어느 작은 마을의 오래된 목사관을 조목조목 살펴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생활사를 다룬 역사서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것들은 영국 혹은 미국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밝혀주는 역사적인 지식이다. 대개는 그 집이 세워진 1800년대 중반의 이야기들이지만, 가끔 고대문명을 언급하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정보들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무척 재밌어서, 한번 책장을 펼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슬쩍 맛만 보고 자려고 앞부분을 읽기 시작했는데, 대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수정궁 이야기에서부터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걸 깨달으며, 기분 좋은 낭패감을 느꼈다.
저자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풋볼매니저’라는 제목의 축구게임이 유행하는데, 한번 빠지면 속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게임만 하게 된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있다. 게다가 남편이 이 게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이혼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다분히 과장이 섞인 이 게임에 대한 소문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게임을 한번 해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히딩크’라고도 된 것처럼, 자신만의 선수들을 키우고, 유명한 선수들을 데려오고, 상대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짜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되면 자꾸만 게임 속으로만 빠져들게 된다. 난데없이 축구 게임 얘길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저 유명한 게임만큼이나 나를 정신못차리게 만들었다는 얘길 하기 위해서다.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아내는 몇 번이나 뭔가 말을 걸었다가 별 반응이 없자, 그냥 대화를 체념해버렸고, 큰 아이는 훨씬 더 자주 놀아달라고(혹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다가 지쳐 혼자 놀아야했고, 둘째 아기는 울음으로도 평소처럼 강력하게 내 주의를 뺏어가지 못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우리 집’은 단칸방에 좁은 재래식 부엌이 딸린 공간이었다. 그 집에는 그렇게 작은 단칸방이 아주 많았다. 집의 중앙공간에 주인집 가족이 살았고, 그 주인집을 빙 둘러서 디귿자로 단칸방들이 포위하는 모양이었다. 일층에만 대략 예닐곱의 단칸방이 있었고, 그보다 조금 적은 숫자의 단칸방이 이층에도 있었다. 그 집에는 적어도 열다섯 가족이 살았던 셈인데, 한 가족을 네 명(당시 가장 보편적인 핵가족의 숫자인)으로 잡으면 약 육십 여명이 그 좁은 공간에 함께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은 마당 한쪽 구석에 겨우 두 칸이 있었을 뿐이다. 아침마다 그 두칸의 화장실 뒤에는 신문지와 질이 좋지 않은 (회색빛에 가까운)휴지를 손에 쥐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바쁜 아침시간에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오래 시간을 끌면 뒤에 선 어른들이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나와 동생은 주로 재래식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큰일을 보았고, 작은 일은 마당 구석 담벼락에 해결하곤 했다. 세면공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여성들은 한 사람이 겨우 서있을 정도의 폭인 재래식 부엌에 쭈그리고 몸을 씻었고, 남자들은 마당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씻었다. 지금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지만,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 집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주인집은 절대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금지구역이었는데, 나중에 어떻게 한번 가본 후로, 처음으로 ‘빈부격차’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가족이 방이 여러 개 있는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두 번째 ‘우리 집’은 소형임대 아파트였다. 초등 2학년 때였다. 멀리 해운대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장산 기슭에 지어진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 가족은 이 집에 꽤나 오랫동안 살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동생과 나만 따로 방을 쓴다는 것이 몹시 낯설었다. 아직 어렸던 동생은 밤마다 울면서 큰방으로 가서 엄마 품에서 자곤 했다. 그러면 나 혼자 방 하나를 온전히 다 차지하고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분 좋았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나가지 않아도 집안에 화장실과 부엌이 있다는 것도 무척 이상했다. 부엌은 뭐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화장실이 집안에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뒷베란다에는 연탄창고도 있었다. 단칸방에 살 때는 가끔 이웃에서 연탄가스 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몰살했다거나,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았다는 소릴 듣곤 했는데, 이 아파트는 그런 걱정이 없다고 했다. 연탄창고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탄 이삼 백장쯤은 거뜬히 들어갔다. 우리 집은 4층이었는데, 겨울이 되면 연탄 집에서 아저씨들이 4층까지 부지런히 연탄을 날랐다. 연탄 배달이 오는 날이면 현관에서 부엌을 가로질러 뒷베란다까지 더러운 깔판을 깔아놓고 신발을 신은 그대로 아저씨들이 들락거렸다. 게다가 시커먼 연탄 가루가 여기 저기 바닥과 벽을 더럽혀놓았다. 배달을 마친 아저씨들이 깔판을 둘둘 말아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나면, 더러워진 부엌 바닥을 닦은 것은 내 일이었다. 연탄보일러는 나중에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연탄창고로 쓰이던 공간은 잡동사니를 쌓아놓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연탄창고 바로 옆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작은 문이 있었다. 시커먼 철제문을 잡아당겨서, 쓰레기를 버리면, 짧은 경사로를 따라 미끄러지던 쓰레기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잠시 후 1층 쓰레기장에 무사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문을 열면, 다른 층에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쓰레기의 낙하 시간은 층마다 달랐다. 저녁마다 쓰레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기다리며 ‘중력’의 존재를 느끼곤 했다. 그 문으로는 쥐나 바퀴벌레 따위가 드나들기도 했다. 여름이면 악취가 심하게 올라왔다.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통로마다 마련되어 있던 쓰레기장이 폐쇄되고, 더 이상 그 문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했다. 더 이상 쓰레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세 번째 ‘우리 집’은 어느 빌라 지하주차장 옆이었다. 서민들의 보편적인 거주지인 반지하였다. 방은 두 칸이었는데, 방 한 칸이 특이하게도 무척 길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여동생과 계속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 긴 방의 중앙에 바퀴달린 플라스틱 병풍처럼 생긴 칸막이를 달았다. 밤에 잘 때면 칸막이를 치고, 아침에 일어나면 걷었다. 남자인 내가 입구 쪽 공간을 쓰게 되었는데, 밤에 여동생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드르륵’하고 칸막이 여닫는 소리에 깨곤 했다. 하루는 주말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여동생의 친구가 놀러와 있었다. 살짝 잠이 깼는데, 여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들렸다. 여름이었고, 나는 팬티만 입고 자고 있었다. 낮이어서 칸막이는 열려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화장실을 갈지, 계속 자는 척하면서 녀석들의 수다를 듣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좀 아팠다.
네 번째부터 ‘우리 집’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 선배들과 술 마시느라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는, 안 들어오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군대를 갔고,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이사를 했는데,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휴가를 나왔다가 옛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제대하고 나서는 아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방과 고시원을 떠돌던 시절 얘기는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쯤에서 줄이는 게 좋겠다. 결혼 후 서울에 정착해서 전세방을 떠돌고 있는 지금의 얘기도 할 말이 무척 많지만, 역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가끔 딸아이에게 아빠의 어린 시절 얘기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난감할 때가 있다. 한 끼에도 계란 프라이를 두 개씩 먹곤 하는 아이에게, 계란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화만하면 이삼십 분 안에 프라이드치킨을 배달해주는 시대에, 전기구이 통닭이란 걸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을 어떻게 얘기해줘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준비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빌 브라이슨처럼 재밌게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