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이미 묻힌 자의 유골을 다시 파낸다는 것은 공포물에나 어울리는 소름 돋는 얘기다. 그래서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호러소설이거나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읽고 나니, 이 책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야 할지 참 모호해진다. 이걸 소설이라고 봐야할까? 아니면 인문교양서(역사)로 봐야할까? 모르겠다. 뭐 그런 기준이 뭐가 중요한가! 그냥 흥미롭게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면 될 일이다. 제목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분실사건’이라는 표현이다.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이 책은 단지 유골이 분실된 사건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실제 내용은 유골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옮겨 다니는 경로를 쫓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토머스 페인의 유골을 파낸 사건(분실사건) 자체는 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다분히 추리소설의 느낌이 나는 이 제목을 일부러 붙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우선 ‘토머스 페인’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미국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무척 생소한 이름이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책날개에 토머스 페인이 어떤 사람인지 상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의 앞부분에서도 그의 삶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상식 Common Sense>이라는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이 책은 출간 3달 만에 12만부가 팔렸고, 이후 3년 동안 50만부이상이 팔렸다. 저자에 의하면 당시 미국 인구는 250만이었고, 이들 중에 상당수가 문맹이었으므로, 글을 아는 사람은 모두 이 책을 읽었다고 보아야 한단다. 이 책은 <독립선언문>이 나오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독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까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혁명가였다. 이후 페인은 프랑스로 건너가서 프랑스 혁명에도 참여했다. 그런 그가 나중에는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그가 혁명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처럼 엄청난 혁명가가 왜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만 했을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책에 의하면 <이성의 시대>라는 책 한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종교제도와 성서의 정통성을 비판한 책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기독교를 건드렸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책 앞부분에는 마치 작가가 눈으로 본 것처럼 위대한 혁명가의 비참한 말로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엄청난 집중력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며 당시의 수많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잠시 방심했다가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헷갈려서, 앞 뒷장을 들춰봐야 한다. 이 독특한 형식에 잘 적응이 되었다면, 그다음부터는 저자의 뛰어난 묘사를 만끽하며, 유골의 행방을 좇는 흥미로운 지적 여행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좀 더 쉽게 읽는 한 가지 방법은 제일 마지막 부분에 실린 ‘더 읽을거리’를 제일 먼저 읽거나,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더 읽을거리’에서 해당부분을 찾아 읽는 것이다. 물론 제일 먼저 읽을 경우에는 뜻을 이해하려하지 말고 그냥 눈으로만 훑어야 한다. 본문을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 책이 쓰였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본문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지식 중에 하나는 ‘골상학’이라는 학문의 유행과 쇠퇴에 대한 부분이다. 게다가 골상학의 영향으로 소설에서 주인공의 두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해서 많은 유명한 작가들이 그런 방식의 글쓰기를 따랐다는 점도 재밌는 사실이다. 또 1819년 영국에서 등장했다는 ‘도서자동판매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언젠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도서자판기를 보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근대 영국의 혁명가들이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이 장치를 썼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을 직접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떠올렸다. 비록 출판될 때에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집필 당시에는 <상식 Common Sens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던 또 다른 책이 있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출판되기 전까지는 <상식>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러미스의 책을 다시 들춰보니 머리말에 토머스 페인의 <상식>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러미스는 자신의 책이 페인의 <상식>과 같이 거대한 변혁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는 마음의 <21세기의 상식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제목을 갖게 되었다. 일본어의 ‘상식’이 영어의 커먼센스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고, 익숙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출판사와의 논의를 거쳐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이럴 수가 나는 이미 여러해 전에 이 책을 통해 토머스 페인과 <상식>에 대해 읽었는데, 그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단지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상식>이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국내에 출간된 토머스 페인의 <상식>은 두 종이었다. 문고판으로 하나가 있었고, <상식>과 <인권>을 묶어서 출간된 단행본이 하나 있었다.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읽을 책 목록’에 넣어둔다. 페인이 이 글을 쓴 1776년의 현실과 2011년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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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3-22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은빛 2011-03-22 15: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cyrus 2011-03-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언뜻 추리소설물 같아요,, 먼저 토머스 페인이 쓴 책을 읽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거 같아요, 참고로 <상식>과 <인권>을 묶어서
나온 책이 영남대 법학과 박홍규 교수가 번역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분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번역한 적도 있구요,, 아무래도 문고판보다는 <상식. 인권>을 읽어보면 좋을거 같습니다. ^^

감은빛 2011-03-22 15: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아무래도 일부러 그런 제목을 정한 것 같아요.
그 책이 박홍규 교수님이 번역한 책이군요.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고판과 단행본은 가격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문고판은 정말 소책자던데요. 가격도 아주 저렴하구요. ^^

루쉰P 2011-03-22 21:33   좋아요 0 | URL
박홍규 교수님의 책은 오타쿠 수준으로 모으고 수집하는 히키코모리로서 <상식,인권>도 반드시 출판돼 있음을 증명해 드립니다. 국내 작가 중 강준만 교수와 박홍규 교수 책을 주로 읽죠.^^ 정말 읽어야 할 책인데 우리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 박홍규 교수님은 많이 번역하셨어요. 읽어 보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웃긴 건 저도 아직 못 샀다는 사실...하지만 전 박홍규 교수님의 서적을 무려 30여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오타쿠가 확실합니다.

감은빛 2011-03-23 14:03   좋아요 0 | URL
루쉰님 / 30여권을 갖고 있다면, 오타쿠가 확실 한 것 같습니다! ^^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장바구니에 담을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에서 1967년에 나온 번역본(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페인의 '상식' '인권'이 합본되어 있음)을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해서 <상식>을 읽었습니다.2단 세로줄에 국한문 혼용인데, 톡 쏘는 맛이 있더군요.나중에 마르크스나 레닌이 페인의 문체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를 비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시사평론을 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감은빛 2011-03-23 13:56   좋아요 0 | URL
톡 쏘는 맛이 있다니 무척 궁금해집니다.
어렵고 따분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감을 날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3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것 같아요.
특히 골상학 쪽 흥미로워요.

사실 이 책보다 아래쪽의 박홍규 교수 번역본이 더 흥미롭지만요~^^

감은빛 2011-03-23 14:02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저도 소개해주신 말씀들을 읽고 나니.
더욱 흥미가 생기네요.

골상학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은데,
전혀 몰랐던 분야인데,
의외로 굉장한 유행이었고,
여러분야에 영향을 많이 미쳤더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