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Happy birthday to me 이벤트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중고등학교때 날아올 주먹이 무서워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선배들. 학번은 깡패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운동권 선배들, 이런저런 일터들을 거치면서 제일 먼저 나이부터 물었던 일터(직장) 선배들을 떠올려보면 절대 공감하지 못할 말이다.
그렇지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그러니까 입에 풀칠하려고 학원에 몸 담았던 시절에) 어쩌다 친하게 지내던 수학선생님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얼굴과 외모로 보건데 분명히 마흔이 넘었어도 벌써 넘어서 쉰을 바라볼 나이일 것 같았는데, 그는 늘 자신을 스물아홉이라고 소개했다. 그냥 말로만 스물아홉이라고 들으면 그냥 피식 웃고 말겠지만, 옆에서 잘 보고 있으면 이사람 진짜 이십대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혹시 벤자민 버튼과 같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었을까?) 그때 아직 스물아홉이 되지도 않았던 나보다 훨씬 더 이십대 같았던 그가 참 재밌어서 함께 종종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그는 어찌나 수다스러웠던지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온갖 티비 프로그램 얘기며, 드라마에 나오는 예쁜 여배우 이야기, 최신 유행곡들 이야기 등을 줄줄 읊어대곤 했다. 학원 수업을 모두 마치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술잔을 기울이던 새벽, 어김없이 이어지던 그의 수다를 듣다가 문득 진짜 그의 나이가 궁금하다고, 도대체 몇 살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정도 친해졌으면 가르쳐주겠지 싶었는데, 너무 성급했던 걸까. 끝내 나는 그의 나이를 듣지 못했다.
학원을 정리하고, 더이상 그의 수다를 들을 일이 없게 되었을 때부터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 내 나이를 물으면 스물아홉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뻔뻔스럽게도 작년까지 스물아홉이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작년 가을 누군가에게 스물일곱인줄 알았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턴 다시 스물일곱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
서른 이라는 숫자는 참 이상하다. 어떤 마력을 가진 것 같다. 스물아홉에서 더이상 나이들기를 거부한 그도 서른이라는 숫자가 가진 마력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서른을 앞두고 유난히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이도 있었다.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김건모는 서른이 되고서부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먹을 때, 가장자리로 국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른이 대체 어떤 마력을 지녔기에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일까?
내 경우엔 어땠을까? 서른을 기준으로 뭔가 바뀌었을까? 글쎄 자동차보험을 들때 '30세 이상 한정 특약'에 들 수 있는 약간의 금전적 혜택말고는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나이를 기준으로 젊음과 (더이상)젊지않음을 나누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나이 '서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다. 대학시절 좋아했던 선배가 내 기타반주에 맞춰 불러주었던 <나이 서른에 우린>이란 노래도 생각나고(그 선배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서른'이 들어간 수많은 책들도 생각난다.(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서른살 경제학, 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등)
사실 '서른'하면 떠오르는 책은 딱 하나, <서른 살의 강>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서른이 되기 한참 전이었다. 관심을 가진 작가의 단편들을 모조리 찾아 읽던 시절이었고, 이 책을 쓴 아홉명의 저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보고 망설임없이 구입했던 책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주제를 담은 단편들을 모아놓았다.
역시 서른이 되기 전에 읽어서였을까. 별로 재미도 없었고, 괜히 심각해지는 그 분위기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알던 작가들의 글은 읽을만 했고(간혹 재밌기도 했는데), 잘 모르던 작가의 글은 괜히 어렵게만 느껴졌다. 나중에 '서른 살의 강'을 넘고 나서 다시 읽으면 뭔가 달라질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을 다시 떠올린 건, 서른 살의 강을 건너고 좀 지나서였다. 문득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도무지 어느 책에서 읽었던 건지 생각이 안나서 마구잡이로 책들을 뒤지다가 문득 이 책이 떠올랐다.
어느 구석에 있을까?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그럼 고향집 내 방 책꽂이에 있을까? 마침 명절이 가까웠던 때여서 내려가면 잊지 않고 꼭 찾아보리라 맘 먹었다. 그러나 고향집에도 없었다! 왜 없어졌을까? 어디서 잊어버린 기억은 없는데. 찾고 또 찾았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몇 달이 흘러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떠올렸다. 얼른 책을 찾아 읽었다. 아, 이 책 내가 읽었던 책 맞아? 왜 이렇게 낯설지? 도무지 읽었던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십대에 읽었을 때는 그냥 좀 어둡고, 조금은 심각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서른이 넘어 다시 읽으니 각 작가들의 고유한 문체와 특유의 정서가 하나하나 느껴졌다.
역시 이 책은 서른의 강을 넘어야 참 맛을 알 수 있는 거였구나! 라는 결론을 남기며 웬디양님께 보내는 긴 축하글을 마칩니다!(생일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