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여러 명이 있는 자리였고, 대화가 막 섞였고, 목소리가 큰 몇 몇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일부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조금 조용한 사람들이 남아서 대화를 나눴다. 이때 나는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아주 친하다고 하기에는 약간의 거리감을 느꼈던 어느 형과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노래 이야기였다. 나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본어 노래를 꽤나 들었지만, 이 형님은 일본어를 잘 하기도 하고,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해 잘 아는 분이었다. 내가 최근에 듣고 있는 일본 노래 두어 곡을 얘기했더니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와 곡들을 알려줬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주제가 노래에서 영화로 넘어갔다. 우리는 몇몇 아주 유명한 영화 OST를 들으며 해당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라스트레터] 등의 영화에 대한 솔직한 감상들이 오갔고, 이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영화들.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등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부터 좀 신기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워낙 유명한 분들이라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대중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 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꽤나 비슷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좀 까칠하고 까다로운 관객이자 독자라 어지간한 작품을 대하더라도 뭔가 문제를 찾는 편인데, 이런 내 태도에 대체로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다수는 작품은 작품일 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따지냐고 했다. 나는 굳이 따지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런 부분이 눈에 띄니까 말한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렇게 소위 말하는 까칠한 부분까지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법. 주제는 자연스럽게 영화 자체에서 감독의 성향으로 그리고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선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 이야기를 했고, [라스트레터]의 히로세 스즈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어서 이상일 감독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다 왕가위 감독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아마 음악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계속 뭔가 음악을 찾아서 틀어놓고 있었다. 마침 누군가 영화 [동사서독]의 음악을 틀었고, 너무 자연스럽게 [중경삼림] 과 [타락천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특히 [타락천사]의 삽입곡이었던 망기타(忘记他) 이야기를 내가 좀 길게 했었다. 이 곡을 떠올리면 몇몇 여성들이 생각난다. 그중에 지금은 덧이름을 바꾼 옛 알라딘 서재 이웃 ‘양철나무꾼‘님도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그 형에게 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 알라딘이라는 공간에서 ‘마녀고양이‘ 님과 ‘양철나무꾼‘님이 나에게 미친 영향력이 꽤나 컸었다.

암튼 그러다 갑자기 내가 [일생소애] 라는 노래를 틀었다. 그 형님도 이 노래를 좋아해서 배우 서기가 영화 [서유항마편]에서 불렀던 장면을 찾아 보여줬다. 나 역시 당시에 이 장면을 보고 [서유기: 월광보합]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 생각나 잠시 그 시절로 기억을 되돌렸다. 당시 내 기준에서 홍콩 영화계 여배우는 왕조현, 임청하, 구숙정 밖에 모르는 시절이었는데, 이 영화 덕분에 주인 이라는 배우를 알고 좋아하게 되었었다.

우리는 주성치 라는 감독이 가진 매력이자 독특한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발굴해낸 몇몇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대화가 끊어지거나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음악에서 영화로 다시 음악으로 그리고 다시 영화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거기서 다시 몇몇 인상적인 감독이나 배우 이야기로 넘나들며 폭넓게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흔치 않았다. 다 언급할 수 없어서 건너뛰었지만, 몇몇 우리나라 감독의 작품들과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었다. 확실히 나는 좀 폭이 좁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것들, 해야 할 것들은 많았다.

내가 이성애자 남성이자 중년 남성이라 가지는 어떤 특정한 편견과 시선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50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을. 그럼에도 그 변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과 환경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일 신기한 것은 나 혼자 이런 독특한, 혹은 까칠하고 모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신경 써주는 것은 너무나도 신기하면서도 당연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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