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약]과 [아웃사이드]

넷플릭스에서 좀비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날은 춥고 감기 기운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보니 뭔가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웠다. 암튼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볼만한 영화가 뭐 없나 생각하다 고른 영화가 [불사의 약]이었고, 이걸 다 보고 나서 영화 정보 페이지에서 유사한 영화라고 보여주는 영화들 중에서 [아웃사이드]가 눈에 띄어 클릭했다. 둘 다 딱 시간 때우기 괜찮은 영화였다. [아웃사이드]는 살짝 지루한 면이 있는데,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아서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둘 다 좀비영화이지만, [아웃사이드]는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좀비 때문에 망해버린 세상에서 불화로 깨어질 위기에 처했던 한 가족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다룬 이야기다. [불사의 약]은 좀비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후 작은 마을 하나가 좀비로 초토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도 불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 가족이 나온다. 그러네. 이 두 영화가 좀비영화이기도 하지만, 위기에 처한 가족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먼저 보았던 [불사의 약] 부터 이야기 해보자.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 영화다. 처음에는 분위기만 보고 태국영화인가 생각했다가 대사를 듣고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알아차렸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인도네시아 말을 익히곤 했었다. 원제는 [Abadi Nan Jaya] 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이라고 나온다. 영어 제목은 [The Elixir] 이다. 엘릭서는 연금술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로 불로장생의 약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그건 넥타르 라는 이름의 신들이 마시는 음료였다.

영화는 한 제약회사에서 만든 시제품을 두 명의 회사 중역에게 배달하라고 지시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한 명은 사장이고, 다른 한 명은 영화 맨 뒷부분에 등장하는 사람으로 아마도 상무이사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시제품이 바로 영화의 제목인 불사의 약이다. 제약회사의 사장은 이제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할 예정인 노인이었다. 이 약이 배달되는 날은 공교롭게도 회사 매각을 결정하는 서류에 사인을 받기 위해 사위와 딸이 방문하는 주말이었다. 그리고 이날 사장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 촌장 집에서는 무언가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고,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잔치에서 음식을 나르고 설겆이를 하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이 마을 파출소에서 일하는 젊은 경찰에게 삐진 상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사장 가족에게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처음에는 얼굴들이 낯설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이 가족 좀 독특한 구성이었다. 사장의 현재 아내는 사장의 딸과 어려서부터 절친이었다. 언제인지 시점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장의 아내가 죽고 나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아빠와 결혼한 것이다. 대화를 보면 사장의 딸은 당연히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경어를 쓰지도 않는다. 딸은 절친이 자신의 아빠와 결혼한 후로 마음의 문을 닫고 말도 섞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남들에게 말할 때에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사장의 아들, 그러니까 딸의 오빠도 이 현재의 사장 아내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다. 여동생의 친구라서 당연한 걸일까? 오직 사장 딸의 남편, 즉, 사위만 장모님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원어에서는 달리 부르는 걸 번역 자막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장 딸과 그 오빠가 모두 이 아내의 이름이나 애칭을 부르는데, 사위는 그러지 않는다. 영화 초반 최고의 갈등 요소는 이 두 사람의 불화이다.

사장은 회사에서 보낸 시제품인 약을 먹었고, 잠시후 흰머리가 검게 변하고, 주름진 얼굴이 펴졌다. 젊어진 것이다.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고, 나중에 다른 가족들도 모두 놀란다. 사장은 이 약 덕분에 젊어지자, 회사를 매각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가족들에게 전한다. 이 젊어지는 약으로 대박을 터뜨릴 거라고도 했고, 늙은 몸이 다시 젊어졌으니 은퇴할 생각이 없어질만도 하다. 하지만 평생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아빠 재산으로 고가의 장난감이나 사 모으고, 게임에 빠져 사는 아들은 반발한다. 회사를 팔면 아빠가 자신에게도 돈을 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 이 회사의 공장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위와 딸도 반발한다. 알고보니 사위는 이 회사를 매입하려는 다른 회사의 여성과 외도한 것으로 나온다. 딸은 사위와 이혼하고 이 회사를 판 돈으로 자신의 사업을 할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사장이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그대로 매각을 했다고 해도 그 돈을 자식들과 사위에게 나눠줬을까?

딱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제목, 불사의 약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다. 이후로는 그냥 좀비가 생기고, 퍼져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불사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맨 먼저 불사의 약을 먹었던 사장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며, 좀비로 변하고 그 집 고용인들과 가족들을 공격한다. 우왕좌왕하다가 고용인 한 명이 물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피를 뒤집어쓴다. 그리로 아들을 물려고 하다가 아들 손에 들려있던 석궁에 머리가 관통되어 움직임을 멈춘다. 영화의 제목인 불사의 약을 먹었는데, 좀비가 되어버린 것인다. 어쩌면 좀비를 불사의 존재로 볼 수도 있을까? 이 영화와 이따 다룰 영화 [아웃사이드] 모두 하반신과 분리되어 상반신만 움직이는 좀비가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머리를 제외한 다른 신체가 분리되어도 죽지 않는다. 오직 머리를 공격했을 때에만 움직임을 멈춘다.

이후의 내용은 좀비가 점점 퍼져가고, 주인공 일행은 좀 바보같이 억지로 살아 남는다. 파출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초반에 잠깐 등장했던 젊은 여성의 남자친구가 경찰이라서 활약을 좀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파출소의 경찰들과 또 구조요청을 받고 지원을 나온 이웃 파출소의 경찰들 모두 아무것도 못 하고 손쉽게 좀비들에게 당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에 주인공 일행 세 명이 파출소에서 보호장비들을 착용하고 총기와 방패 등을 챙겨 나서는 장면이 나올 때, 이제서야 좀 속 시원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오려나 했는데 아니었다. 이들은 너무도 무기력하게 수많은 좀비들에게 포위되고 아무것도 못 하다가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려 겨우 살아남는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개연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답답하고 무기력하다. 애초에 불사의 약이란 개념 자체가 현실성이 없고 이걸 먹었는데 왜 좀비로 변하는지도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으니,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 안에서 나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물리 법칙이 작용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다. 전체적인 전개가 좀 많이 답답한데,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고구마 백개 먹은 것 같은 모습이다. 맨 마지막에 약간 신파로 빠질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다행히 아주 짧게 쿨하게 넘어가더라. 이거 하나는 칭찬할 만하다.

인도네시아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답답한 상황이었어도 그냥 봤다. 만약 우리나라 영화나 영미권 영화가 이 모양이었다면 그냥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 등의 정보를 조금 찾아보기는 했는데, 우리말로 된 정보는 많지 않았고 익숙치 않은 인물들이라 그냥 넘어가야겠다. 내용은 많이 유치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은 대부분 다 좋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작은 시골마을 하나만 좀비가 퍼진 상황인데,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자 대도시에 살고 있는 이 제약회사의 또 다른 중역, 맨 처음에 시제품을 보낸 또 다른 인물에게 배달된 약병이 비워진 모습을 카메라가 클로즈 업하며 보여준다. 곧 대도시도 좀비 세상이 될 예정이다.

다보고 나니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생각난다. 연상호 감독이 이후에 만든 [반도]를 완전히 말아먹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규모의 이야기를 디테일을 살려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여기서 욕심을 부려 큰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영화는 한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한 편의 촌극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촌이 시골이란 의미의 촌이 아니란 걸 굳이 밝혀야 하는 걸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이 영화는 작은 이야기라서 그나마 그럭저럭 봐줄만한 영화였다고 본다.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이 감독이 연상호 감독처럼 이 영화 이후의 내용, 그러니까 도시에서 좀비 사태가 벌어진다거나 나라 전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을 생각이라면 누군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 대화를 주고 받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는데, 그에게 대신 좀 전해달라고 할까? 한국의 연상호 감독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자, 이제 두 번째 영화로 넘어가자. [아웃사이드]는 필리핀 영화다. 맨 처음 티비 화면으로 결혼식 장면을 비출 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라서 이게 어느 나라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결혼식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준 후에 한 가족이 어느 시골 빈 집, 낡은 빈 집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저택이라 부를만한 집에 도착하는 장면 부터 시작한다. 아, 여기서부터 좀 한 숨이 나온다. 이제 시작인데, 이 영화 호흡이 너무 느리다. 주인공 가족의 아빠가 공구 하나 들고 이 집을 살피는데, 느릿느릿 너무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이 가족은 중년의 아빠와 엄마 그리로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큰아들과 한 여덟살이나 아홉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들까지 네 명이다. 이 집은 아마 아빠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보인다. 아빠는 자신의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주 천천히 집을 살핀다. 이층 침실에서 먼저 아버지를 발견한다. 손목에 좀비에게 물린 자국이 보이는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 죽은지 그리 오래 되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은색 권총을 빼내고, 왼손에서는 은빛으로 빛나는 시계를 빼낸다. 슬퍼하는 기색은 전혀없다. 혹시 아버지가 아닌가? 모르는 집을 찾아온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방을 나와서 초첨이 아직 그에게 맞춰져 있어서 뒤쪽 배경이 흐릿하게 보일때 사람인 듯한 형체가 잡히고, 곧이어 그가 ˝엄마˝ 라고 불렀을 때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눈에 흰자위가 없이 검은색으로 채워졌고, 관자놀이 쪽에 뭔가 뽈록뽈롤 돋아올라 있었다. 전체적으로 낯빛이 어둡고 수척한 모습이 딱 좀비였다. 그리고 엄마가 말을 했다. ˝미안해˝ 잠시 후 또 미안하다고 반복했다.

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말을 한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대화하거나 사람과 대화하는 건 아니고, 한 두 마디 말을 그냥 끝없이 반복한다. 아마도 죽기 직전에 한 말을 계속 반복하는듯 보인다. 아니 그러니까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한 말. 이 엄마는 누군가 좀비에게 물리고 자신이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자신의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손목을 물었겠지. 그 남편은 침대 위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주 긴 시간 왕래가 없었던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영화는 좀비영화이지만, 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좀비는 한 마디의 대사를 한다. 만약 내가 이 영화의 단역 배우로 좀비 역을 맡았다면, 좀 당황했을 것 같다. 좀비라 당연히 대사 없이 이상한 소리만 내면 될 줄 알았는데, 한 줄 뿐이지만 대사가 있다니! 좀비인데 이 대사 감정처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죽기 직전 대사니까 슬프게? 아니면 왜 하필 나야 하는 심정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야하나?

주인공 남자 엄마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첫번째 좀비이고, 두번째 좀비는 철책으로 길을 막아놓은 곳에서 등장한다. 모래주머니로 쌓은 참호 안에서 나온 군인 좀비는 통행증을 보여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은 무척 신사적이다. 다른 영화의 좀비들은 사람을 보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들어 물기 바쁜데, 이 좀비들은 절대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 아주 예의 바르게 먼저 말을 건다. 그것도 천천히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준다. 마치 이런 것 같다. ˝나 좀비야. 나 여기 있어. 내가 지금은 여기 있는데, 곧 너를 물어뜯으려 달려들 예정이야. 그러니 잘 대비하고 있어. 나 곧 간다.˝

나중에 등장하는 많은 좀비 무리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중에 신부 아니 목사라고 해야하나? 암튼 성직자가 있었다. 이 성직자 좀비는 신이 어쩌고 하는 상대적으로 긴 대사를 반복한다. 정확한 말은 기억 안 나지만, 성직자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근데 성직자 좀비라니 좀 재미있는 모습이었고, 게다가 설교를 반복해 말하는 성직자 좀비라니 아주 참신한 설정이었다. 그외 몇몇 좀비들은 피하라고 하거나, 저쪽이라고 방향을 알려주는 등 어쩐지 마지막 순간이 그려지는 대사들을 갖고 있었다.

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 좀비가 죽기 직전 한 마디를 반복한다는 설정은 꽤나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아까 소개한 영화 [불사의 약]에 거의 주인공 비중으로 나오는 젊은 연인은 마지막에 함께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와중에 프로포즈를 하는데, 남성이 반지를 꺼내 여성의 손가락에 힘들게 끼워주고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게 각자 여러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좀비가 된 이 연인이 이쪽 영화로 넘어오면 이 두 좀비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 고백을 하는 아주 로맨틱한 좀비가 될 것이다. 게다가 저쪽 좀비와 달리 이쪽 좀비는 상대적으로 외모도 덜 혐오스럽다. 어쩌면 남녀 모두 외모가 괜찮은 배우를 섭외해 사람들을 홀리는 역할로 해도 재미있겠다.

앞의 영화도 답답한 측면이 많다고 했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 가족의 상황 자체가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태다. 영화 첫장면에 비디오 녹화 장면으로 나오는 결혼식은 이 부부의 결혼식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을텐데, 첫째 아들은 남편의 아이가 아니고 남편의 형님과 아내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들이다. 영화 중간에 둘째가 첫째랑 같이 옛날 사진첩을 보다가 삼촌(우리식으로 부르면 큰아버지)과 형이 닮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부러 캐스팅을 그렇게 했겠지만, 첫째를 연기한 배우도 아빠를 연기한 배우랑 거의 안 닮았고, 중간에 짧게 나오는 아빠의 형으로 나온 배우랑 닮았다. 그리고 첫째가 지금 청소년인데, 아내는 여전히 남편보다는 그의 형을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이 부부는 긴 시간 불화를 겪고 있고, 그 와중에 좀비 사태가 터졌다. 여기서 더 화가 나고 짜증나는 건, 찌질한 남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그는 둘째는 아들로 대하지만, 첫째는 마치 남의 집 아이 대하듯 한다. 또 아내는 남편한테 너무 지친 나머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은 바깥이란 뜻이다. 남편은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던 집으로 가족들을 데려왔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갇혀있곤 했던 지하실에 들어가면 여전히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고, 땀을 비오듯 흘린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죽고 없는 이 집에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아내와 첫째 아들은 이 집에 언제까지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고 하루라도 빨리 다른 사람들을 찾아 대피소로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내는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남편의 형이 북쪽으로 대피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착하고, 첫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북쪽으로 간다고 해서 역시 북쪽에 집착한다.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이 집에 계속 머물 것인가? 대피소를 찾아 위험한 밖으로 나갈 것인가?

남편의 아버지는 사탕수수 농장주였다. 집 바로 옆에는 닭장이 있어서 매일 계란을 먹을 수 있다. 농장주였던 부모님이 식량을 좀 비축해두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먹거리 걱정은 덜하다. 그리고 펌프로 깨끗한 식수도 언제든 먹을 수 있다. 그럼 사실 굳이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대피소를 찾아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모든 상황들보다 가장 큰 장점, 좀비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이 좀비 세상에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영화 후반부에 부상당한 군인 한 명이 도움을 청하러 온다. 그는 이 집에서 차로 반나절 떨어진 대피소에서 왔다고 했다. 보급품을 구하러 군인들이 나섰다가 좀비들의 습격에 모두 죽고 혼자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도 아내와 첫째는 집을 나서서 대피소로 가려고 한다. 아마도 일개 분대 규모는 되었을 군인들이 몰살당했는데, 차량도 무기도 없이, 대피소의 위치도 모른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앞의 영화처럼 이 영화에도 개연성이 떨어지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제법 있다. 답답한 측면들도 꽤나 있다. 그나마 앞의 영화는 줄창 좀비들과 부딪히며 빠른 전개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흐름도 너무 느리다. 좀비는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긴장 요소인데, 이것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기에는 그 힘이 좀 약해 보인다. 이 영화도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았다. 아역들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 후반에 아내와 첫째가 단 둘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둘이 약간 서먹한 듯 하면서도 서로의 정이 느껴지는 모습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괜찮은 장면이라 본다.

필리핀 영화도 인도네시아 영화 만큼이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맛이 느껴진다. 필리핀어? 아니 타갈로그어 라고 해야하나? 암튼 이 언어는 아는 단어가 전혀 없지만, 대사에 영어를 굉장히 많이 섞어써서 알아듣기가 편했다. 이 영화도 감독과 배우들 정보를 찾아보기는 했으나 딱히 얘기할 만한 내용이 없어 넘어가자. 아, 한 가지. 아내인 아이리스 역의 배우는 이름이 뷰티 곤잘레스라고 영어로 쓰여있었다. 영화 시작할 때도 읽었고, 끝나고 배역이 올라갈 때도 확인했다. 아마도 곤잘레스가 성인 것 같은데, 그럼 이름이 뷰티인가? 혹시 필리핀에서는 혹은 사람 이름이 때는 다르게 발음할까? 그럼에도 이름의 철자가 아름답다는 단어와 완전히 같다는 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아름 이란 이름을 많이 쓰는구나. 어쩌면 그리 어색한 이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 번에 몰아서 본 두 영화가 평소 접한 적이 거의 없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화라는 점, 둘 다 좀비영화라는 점 등이 재미있어서 북플 앱을 열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불편한 폰 자판으로 이렇게 긴 내용을 두드린 내 자신을 칭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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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1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사의 약‘을 먹고 ‘좀비‘가 된 건 방향은 틀리지만 불사라는 결과는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