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와 영화 [악의 꽃]
넷플릭스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1을 재미있게 보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죽음을 무릅쓰고 게임을 벌여야 하는 이세계를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 데스 게임을 벌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들이 돈 때문에 어쩔수 없이 데스 게임에 참여했다면, 여기 등장인물들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자신이 어떻게 온 지도 모른 채 데스게임에 강제로 참여하도록 강요받는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이 게임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고 참가했다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탈락자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여기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등장인물들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상한 세계로 옮겨와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탈락자가 곧바로 죽는 모습에 놀라고 겁을 먹는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1 공개일이 2020년 12월이었고, [오징어 게임] 첫 공개일이 2021년 9월이었다. 내용과 디테일은 많이 다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게임을 이겨 살아 남아야 한다는 데스 게임을 펼치는 내용의 드리마가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약 9개월 사이에 차례로 공개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오징어 게임]은 원작이 따로 없는 창작물인데, 이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원작인 만화를 각색해서 만든 시리즈였다. 원작은 아소 하로 라는 작가의 [임종나라의 앨리스] 라는 만화다.
[오징어 게임]은 처음에 1개 시즌으로 완결이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워낙 큰 인기를 얻어서 후속 시즌 제작이 결정되었고, 감독이 여러 상황과 변수를 고려하다가 두 번째 시즌을 두 개로, 그러니까 시즌 3까지 제작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시즌 3까지 다 본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감독이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라고 본다. 시즌 2에서 등장인물들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조금씩이라도 넣어야 하니 분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하나의 시즌으로 완결을 짓지 못해 시즌을 하나 더 늘려서 시즌 3까지 가져갔는데, 그 결과가 너무 기대에 못 미치게 나왔다. 그에 비해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처음에 시즌 2에서 완결되는 것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시즌 3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좀 의외였다. 이미 시즌 2에서 완벽하게 결말이 나왔는데, 여기서 더 무슨 할 이야기가 남았다고 후속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세 번째 시즌도 [오징어 게임] 세 번째 시즌처럼 아주 처참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주인공들을 다시 보더랜드로 돌려보내 죽음의 게임에 참여시키기 위해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전혀 개연성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끌고 간 이후의 게임들도 썩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시즌 1과 2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보더랜드로 갔던 것은 운석 충돌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사상태에 빠졌기 때문으로 나오는데, 시즌 3에서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보더랜드로 왔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 그러니까 여주인공 우시기와 남주인공 아리스가 왜 갔는지는 다소 억지스럽게 보여주는데, 두 주인공과 함께 게임을 펼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설명이 없다는 얘기. 이번에는 왜 한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사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보더랜드 라는 곳은 사람들이 죽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을 때 겪게 되는 어떤 세계라고 나온다. 게임에서 탈락하거나, 비자를 연정하지 못하고 소멸당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가사상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이라는 것. 죽음의 게임들을 거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국 가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자가 된다. 아, 게임을 끝까지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데, 하나는 이 보더랜드의 국민으로, 그러니까 더는 비자를 연장하지 않아도 되는 영주권을 보장받는데,대신 다음 체류자들이 오면 죽음의 게임을 준비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 살아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서 없이 [오징어 게임]과 비교해가며 시즌 별로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썼는데, 이제 감독과 배우들에 대해 알아보자. 감독은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와 [킹덤] 시리즈의 사토 신스케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를 인상적으로 봤었고, '킹덤' 시리즈 중에서는 첫 영화인 [킹덤]만 봤었다. 이 '킹덤' 시리즈는 원작 만화가 아주 큰 이야기일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만화 등장인물들의 외모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모습들이 거슬려서 후속 영화들을 더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공 아리스 료헤이 역은 야마자키 켄토가 맡았다. 사토 신스케 감독의 '킹덤' 시리즈의 주인공도 이 배우가 맡았다. 여주인공인 우사기 유즈하는 츠치야 타오가 맡았다. 시즌 1의 주요 인물들인 아리스의 친구들과 시즌 2에서 활약하는 비치의 여러 인물들까지 소개하려고 찾아보니 인물들이 너무 많다. 배역과 인물 소개는 그냥 패스하자.
이 시리즈의 내용이 죽음을 걸고 게임을 치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차례로 등장하는 게임들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게임들을 클리어 하면 트럼프 카드를 한 장 받는다. 이 카드의 모양과 숫자에 따라 게임의 정체성과 난이도를 추측할 수 있다. 카드 모양에 따른 게임 분류는 다음과 같다.
1. 스페이드: 체력전. 신체 능력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
2. 다이아: 지능전.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
3. 클로버: 단체전.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
4. 하트: 심리전.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게임
트럼프 카드에 들어가있는 숫자는 각 게임의 난이도를 의미한다. 숫자가 높을 수록 난이도가 높아 탈락자가 발생활 확률이 높아진다. 참가자들은 카드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비자 만료 이전에 게임에 참가해 비자 만료일을 연장시켜 놓는 것이 좋다.
시즌 1은 독특한 설정과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도쿄의 모습 등 시각적인 모습들이 인상적이어서 흥미로웠고, 게임들도 이야기 전개에 적절하게 잘 맞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시즌 2는 본격적으로 '비치'라는 집단과 보더랜드의 국민들이 드러나는데, 이야기가 갑자기 확 팽창되는 느낌이 드는 것에 반해 제시되는 게임들은 시즌 1만큼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다. 비치의 수많은 등장인물들도 제각각의 쓰임을 다하지 못한 채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전체 이야기를 잘 갈무리해서 크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고 완결을 지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반면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시즌 3은 애초에 만들지 말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진행에서 자꾸 구멍이 보이니 몰입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 세 번째 시즌에서 그나마 좋았던 것들은 새로운 등장인물들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띈 배우가 타마시로 티나였다. 모리카게 레이 라는 배역을 맡아 '좀비 헌트' 게임에서 처음 등장했다.
드라마를 모두 본 후에 이 배우가 궁금해 찾아보았다가 한참 나중에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 [악의 꽃]을 보았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였다. 유명한 시집의 제목이라 눈에 띄었고, 내용이 궁금해서 보았다. 이 영화도 만화 원작이 있었다. 나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거 원작 만화가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영화의 기본 정보부터 살펴보자.
감독은 이구치 노부로 라고 한다. 혹시 이전 연출작 중에 아는 작품이 있나 봤는데, 내가 본 것은 없었다. 남자 주인공인 카스가 타카오는 이토 켄타로가 연기했다.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연기력이 제법 좋았다. 여자 주인공인 나카무라 사와는 타미시로 티나가 연기했다. 이 배우의 [아리스 인 보더랜드] 에서의 모습 때문에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같은 반 친구이자 초반에 비중 있게 나오는 사에키 나나코는 아키타 시오리가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서 중간부터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점점 더 집중력이 떨어졌다. 아무리 청소년의 일탈이라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상식적인 선을 아득히 넘어서는 모습이다. 물론 세상 어딘가엔 이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로 보여지던 사에키 나나코 조차도 어느 시점부터 이유를 알 수 없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는 그냥 평범하게 공감할만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아무것도 없이 보았지만, 원작 만화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거대한 괴물 눈동자가 등장한다. 이런 연출은 원작 만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한다고 느꼈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원작을 각색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던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일단 초반에 중학생이었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고등학생으로 넘어가서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되는 토키와 아야(이토요 마리에가 연기함)의 분량이 애매하고, 크게 공감할만한 사건 없이 문득 여자친구 자리를 꿰어 차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영화의 분량 상 원작 만화의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으니, 이렇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 인물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특히 후반에 카스가가 나카무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이 토키와도 함께 가는데, 왜 함께 가는 것인지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원작 만화는 단행본 11권으로 완결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는 거의 망작이라 여길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의외로 원작 만화는 평이 좋고 판매량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겠지. 어느 정도 유명하고 평이 좋았으니, 영화로 만들어졌겠지.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원작이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이번에는 정말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모르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좀 미친 인간들이 미친 짓을 막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할 수 있겠다. 얘네들이 교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숲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있는 여름 축제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등 이 아이들의 미친 짓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스가가 나카무라를 찾아갔을 때 함께 갔던 토키와 까지 셋이서 미친듯이 서로 물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왜? 이 영화에 계속 좀 어중간한 수위의 폭력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그런 장면들도 언제나 설득력이 없었는데, 이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그 다음 장면에서 카스가와 토키와가 기차역에서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보면 이 아이들의 옷이 마치 새 옷처럼 깨끗하다. 바닷물에 빠지고 모래사장에서 뒹굴었던 아이들이 어떻게 몇 시간 후에 저렇게 깨끗한 모습으로 기차를 기다릴 수 있을까? 옷 뿐 아니라 얼굴도 머리도 너무 깨끗했다. 그냥 이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 세계인가? 셋 중 누군가가 마법사라서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준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쿠키영상에 혼자 해변에 남은 나카무라의 모습이 나오는데, 나카무라 역시 깨끗해진 옷과 얼굴, 머리카락을 보여준다. 아니 방금 바로 그 해변에서 셋이서 미친듯이 서로 물에 빠뜨리고 쓰러뜨리며 난리를 치고는 왜 금방 다시 깨끗해졌어? 혹시 그 물에 빠뜨리는 장면이 상상이나 꿈인가? 감독의 의도는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현실에서 세 명이 어딘가에서 씻었다면,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고, 만약 옷까지 세탁한 거라고 한다면 적어도 하루 이상 시간이 더 흘렀어야 했다. 하긴 이런 걸 굳이 따지고 있을 이유도 없는 것이 초반부터 끝까지 이렇게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굳이 뭘 결말을 두고 쓸데없이 개연성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영화에서 사에키가 토키와를 보고 누군가와 닮았다는 말을 해서, 실제 배우들은 하나도 안 닮았지만, 작중에서 토키와가 나카무라랑 닮은 설정인가 생각했는데, 나무위키 원작 만화 설명에 그렇다고 나오더라. 이걸 영화에서 제대로 연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저렇게 대사 하나로 넣으면 과연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타마시로 티나를 보려고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연기를 미친 듯이 잘 하더라. 그 살벌한 눈빛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영 별로였지만, 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아침 일찍부터 알라딘 서재에 접속해서 과거에 내가 쓴 글들을 많이 찾아 읽었다.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꽤 괜찮은 글들을 썼더라. 특히 '시와 함께 읽는 추억' 게시판의 글들은 '이달의 당선작'에 많이 뽑혔더라. 운이 좋았거나, 이달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분의 취향에 우연히 잘 맞았거나 그랫을지도 모르지만.
브런치에 글을 한번 써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뭘 쓸까?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연재하듯이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무엇을? 이라는 단계에서 막혀버렸다. 조금 더 고민해보고 해가 바뀌면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