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토마토
약 1시간 전 늘 나를 챙겨주시는 50대 언니 한 분이 갑자기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동안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자주 보다가 최근 한 2주 가량 자주 못 본 느낌이다. 내가 "어째 오랜만인 것 같아요." 하고 건네는 인사에 씩 웃어 보이시더니, 들어오시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방울 토마토 통을 들고 개수대로 가서 씻기 시작하신다. 그러더니 그릇 하나를 달라고 하신다. 아마 저 방울 토마토를 나에게 나눠주려고 그릇을 찾으시는 것 같아서 작은 그릇을 하나 가져갔더니, 그거 말고 큰 걸 달라고 하신다. 큰 그릇이 마땅한 것이 없을텐데, 앞서 그릇보다 조금 더 큰 그릇을 하나 드렸더니 거기에 열심히 씻은 방울 토마토를 담으신다. 그릇에 많이 안 들어가니 마치 고봉밥처럼 방울 토마토들을 위로 열심히 쌓기 시작하신다. 그런 와중에 역시 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50대 언니 한 분이 들어왔다. 앞의 언니는 50대 후반이시고, 지금 들어오신 분은 50대 초반이시다. 두 분은 곧바로 회의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며, 지하철 역 한 정거장 거리의 모 장소를 언급했다. 내 걸음으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인데, 회의가 7시 시작이라면 두 분은 이미 회의 시간에 늦으신 것일테고, 7시 반 시작이라면 조금 여유가 있는 상황일 것이다.
두 사람은 앉지도 않고 서서 방울 토마토 몇 알을 입에 집어 넣으며 이런저런 급한 일들을 나와 소통했다. 그 와중에 방울 토마토가 달다며 얼른 먹으라는 채근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이 급하게 나가고 내 책상에는 그릇에 수북이 담긴 방울 토마토가 남았다. 요즘 점심때마다 입맛이 별로 없어서 점심을 안 먹는 날이 많고, 오늘도 그랬다. 저녁에 달리기 모임을 가야 해서 6시가 되기 전에 뭔가를 좀 먹어야지 생각을 하긴 했는데,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래 달리기 하고 나서 맛있는 걸 먹자. 그러고 있었는데, 두 언니들이 방울 토마토를 한 그릇 가득 안겨주고 가셨다. 나는 일을 하면서 한 알씩 집어 먹었고,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다 먹었다. 세상에 방울 토마토로 배를 채우다니!
어떤 날엔 나 자신이 정말 바보 같고 멍청해서 싫고, 어떤 순간은 미친 듯이 외롭고 슬프지만, 이런 순간에는 내가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 바쁜 사람들이 회의를 가야 하는 바쁜 와중에 일부러 지하철 역 1 정거장 거리(회의 장소로부터)에 있는 사람(나)에게 방울 토마토를 챙겨 주려고 일부러 들러서 가다니! 이 두 사람에게, 특히 방울 토마토를 가져와 씻어주신 그 언니에겐 정말 고마운 일이 많다. 언젠가 내가 뭐든 도움을 드려야 할텐데. 사실 한 10년 전에는 내가 이런 저런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분이 요청하는 작은 일들에 힘을 보태기도 했고, 그 분의 일에 아주 사소한 도움들을 드리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고 보니 나는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그 분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깊이 도움을 주고 계셨더라. 난 왜 바보 같이 그런 것들을 모르다가 뒤늦게 깨달았을까?
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일단 오늘은 달리기 모임을 가야 한다. 일은 많고도 많은데, 하기는 싫고, 그런데도 자꾸만 새로운 일이 생긴다. 최근 며칠동안 갑자기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많아져서 일도 운동도 제대로 못했다. 오늘 달리기 모임을 계기로 다시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오늘 페이스북에서 강양구 기자의 글을 보고 주문한 책. 여러 사람들이 이 작가의 전작들에 대해서도 칭찬하더라. 이 책 읽고 그 전작들도 찾아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