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어려서부터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운동회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면 늘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개 2등 정도는 했었다. 그러니까 달리기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어른이 되고 달리기를 할 일이 없어서 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득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다. 작은 아이가 항상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큰 아이는 어렸을 때에도 조용한 편이었고, 별로 뛰어다니지 않았지만, 작은 아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늘 뛰어다녔다. 그때 떠올랐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늘 뛰어다니는 아이였음을. 그때 내 몸은 이미 배가 뽈록 나온 아저씨 몸이었다. 젊은 시절에 운동했던 흔적이 살짝 남아있긴 하지만, 볼품 없는 몸이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고립운동은 피하고, 전신운동 중심으로 운동을 하면서 되도록이면 달리기를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무릎이나 발목 등 관절 부상을 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골반을 다쳐서 한 달 이상을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관절염이 생겼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여기저기 다녀봐도 원인을 찾지 못한, 이제는 고질병이 되어버린 관절염. 한동안 달리기를 즐겼건만, 관절염이 생긴 이후에는 거의 달리지를 못했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큰 부상을 입었고, 거의 8달 가까이 전혀 운동을 하지 못했다. 몇 년간 운동을 열심히 해서 만들어 놓은 근육들이 다시 줄어들었다. 근육이 잘 발달한 몸은 아니었지만, 나름 예쁜 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만족감이 그래도 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는데, 근육이 확 줄어들고 나니 허무한 느낌이 컸다. 몸이 다 회복되고 다시 운동을 시작해서 처음 한 동안은 근육이 다시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없어진 근육들을 다시 회복해야 예전에 좋아했던 운동들을 할 수 있으니 그때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체기가 왔다. 운동을 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들어야 재미가 있는데, 계속 제자리 걸음처럼 느껴져서 흥미를 잃었다. 아마도 나이 탓이겠지.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한번 흥미를 잃고 나니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가 속한 의료협동조합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건강실천단 활동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매일 꾸준히 운동하고 그 성과를 참여자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일 각자 원하는 운동을 하겠다는 약속이 핵심이고, 참가자들끼리 그 운동의 성과를 공유하다는 것도 재미있고 참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위 친한 사람들에게 자주 운동을 해야 한다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효과가 큰 운동을 소개하곤 했다. 매일 짧은 시간만 투자해도 몸에 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설득하곤 했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운동에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주로 하는 운동들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한편으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널리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달리기 모임을 제안했다. 매일 각자 원하는 운동을 하되, 주 1회 이상은 모여서 함께 달리는 모임을 만들어 참가자를 모집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달리기를 못해도 본인의 컨디션에 맞춰 천천히 가볍게 달려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몇 분들이 참가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는데, 대부분이 60대 여성분들이었다. 달리기 경험이 있는지 여쭤보았더니 없다고 하셨다. 음, 일단 기본 자세부터 알려드려야 할 상황이다.
어쨌든 달리기 모임을 이끌어야 하니 나부터 먼저 준비를 좀 해야할 것 같아서 며칠 전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달렸더니 폐활량이 엄청 딸리는 것을 느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죽을 것처럼 숨이 찼다. 일단 담배부터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거의 끊은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평소에는 안 피웠는데, 업무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다시 담배도 늘었다. 일하다가 뭔가 막히면 나도 모르게 담배부터 생각났다. 당연히 완전히 끊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담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거리와 시간을 늘려가며 달렸더니 확실히 폐활량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다시 달릴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간혹 무릎이나 발목의 통증이 생기는 날도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관절 통증이 있는 날에는 달리기를 포기했었는데, 요즘은 매일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파도 달리기를 했다. 최대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달렸다. 통증이 있는 몸에 적응하면서 관절 통증이 있어도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소에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데, 한 2년 신던 운동화 앞 부분 접히는 부위가 찢어졌다. 달리기를 계속 해야 하니 새 운동화를 사려고 매장을 찾아갔다. 런닝화를 주욱 살펴보다가 평소라면 가격 때문에 눈길도 안 줬던 나이키 매대를 그냥 구경만이라도 하려고 가봤다. 그러다 할인이 붙어서 저렴한 운동화를 하나 발견했다. 디자인도 딱 내 취향이었다. 바로 직원을 불러 사이즈를 찾아달라고 했다. 신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주로 신었던 저렴한 운동화들과는 착용감이 완전 달랐다. 엄청 가볍고 푹신한 느낌었다. 난생 처음으로 나이키 신발을 신고 달려보았더니 완전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정말 신발이 중요하구나! 달리기를 제대로 하려면 좋은 신발을 신어야 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신발을 바꾸고 나니 관절통증이 있어도 달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 뭐든 제대로 하려면 장비를 갖춰야 해!
건강실천단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덕분에 다시 운동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몸매 유지를 위해 가벼운 맨몸 운동만 가끔 생각날 때마다 했었다. 바벨, 덤벨, 케틀벨, 불가리안백에 쌓인 먼지를 닦고 다시 조금씩 중량 운동을 시작했다. 악력기들의 먼지도 닦아내고 빨래 걸이로 전락했던 철봉에도 오랜만에 매달렸다. 운동이 주는 쾌감을 아주 오랜만에 느끼며 왜 한동안 내가 운동을 안 했을까 하며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지금부터라도 다시 운동이 주는 재미를 느끼며 살아야지. 이 재미없고 고단한 삶에 뭐하나 작은 기쁨이라도 느끼며 살아야지.
매일 잊지 않고 운동하기 위해 운동을 기록할 앱을 찾아봤다. 그간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를 많이 했었다. 검색해보면 광고가 붙은 앱들이 여럿 있었는데, 기능의 차이가 제법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헬스장에서 기구를 사용하는 운동을 중심으로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처럼 프리웨이트 운동만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앱들이었다. 이런저런 앱들을 깔았다가 지우면서 결국은 그냥 메모장 앱에 그날 그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을 했지만, 불편했다. 이번에 다시 검색을 하다가 괜찮은 앱을 하나 발견했다. 물론 이 앱도 대부분은 헬스장의 기구들을 이용한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소수이지만 프리웨이트 운동들이 있었다. 그리고 기존에 없는 운동들을 내가 새로 등록해서 기록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자주 새로운 동작들을 시도해보는데, 딱히 이름을 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동작들을 해보다가 뭐 하나에 꽂히기도 한다. 이런 것들도 기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바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운동이라는 작은 기쁨을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늙고 여기저기 관절이 아픈 몸이 되어버려 서글픈 삶이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었던 시절을 겪었기에, 지금 중량 운동을 할 수 있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나도 매일 운동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특히 요즘처럼 거의 매일 저녁에 회의나 토론회 등 행사가 잡히면 밤늦게 집에 도착하니 피곤해서 씻고 뻗어버려서 운동을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틈틈히 운동을 해야 한다. 일단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달리고, 점심 시간에 식당을 가는 길에 달린다. 일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가볍게 맨몸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고 외부 회의를 갈 때 또 달린다. 아무리 밤 늦게 귀가하더라도 씻기 전에 무조건 한 가지 운동이라도 꼭 하려고 노력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낼 수 있으면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특히 뭔가를 먹기 전에는 꼭 어떤 방식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결국에는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아, 어제 조금 여유가 있어서 이 글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다시 바빠져서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퇴근했고, 오늘은 엄청 바쁜 날인데도 이 글을 마저 두드려야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러고 있다. 언제나 바쁜 날일수록 더욱 딴 짓을 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뭘까? 하! 다시 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