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목성, 금성


어제 저녁에 아이들을 보러 가는 길에 하늘을 보니 손톱 모양 달과 거기서 비스듬히 대각선 아래로 두 개의 밝은 별이 보였다. 폰을 열어서 별자리 앱을 열었더니 달과 목성과 금성이 일직선 상에 놓인 상태였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직선으로 모여있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다. 얼른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오늘 아침에 잠시 SNS 를 살펴보다가 나처럼 달, 목성, 금성이 모여있는 사진을 찍어서 올린 사람이 있는 걸 확인했다.


아마 평생 지구라는 행성 밖으로 나가볼 일이 없을 테니 저 달과 목성과 금성 등을 가까이 볼 일도 없겠지. 달이라는 위성이 지구의 크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위성이라는 이야기와 달이 조금씩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떠올리며 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긴 목성에 대해서도, 금성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한 편으로 평소엔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그저 우연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는데, 마침 저 셋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그게 대단히 신기한 일인 것처럼 여기는 것도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너희는 각자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지구에 사는 우리에겐 가지런히 줄을 서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인데 말이다. 목성이나 금성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날 일이다.


이름


여기서 다시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달은 왜 달일까? 목성과 금성의 이름은 요일 이름과 겹치는 것 같은데, 어쩌다 나무와 쇠(혹은 금?)의 행성이 되었을까? 영어 이름으로는 제우스(로마 이름 쥬피터)와 아프로디테(로마 이름 비너스)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건 알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 이름(혹은 중국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들어본 기억이 없네.


이름이 가진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보니 작명이라는 행위는 참 어려운 일이다. 소설이랍시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 보려고 몰두 할 때마다 항상 제일 망설여지고 오래 걸리는 작업은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금까지 완성한 몇 안 되는 소설들 중에 그나마 제일 무난하게 괜찮게 썼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그 졸고를 읽어본 몇 안되는 지인들의 평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글은 주인공 두 명의 이름을 모티브로 전체 이야기와 구성을 완성했었다. 이름만 잘 지어도 이야기 하나를 거의 완성할 수도 있었던 것.


소설 주인공 이름을 지을 때에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 또 얼마나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일인지는 자명하다. 혹시나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발음이 좀 어색하지는 않은지? 좀 더 예쁜 느낌의 이름을 없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이름에 만족하고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학창시절에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놀림을 받기도 했고, 가끔은 내 이름이지만 발음이 좀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좀 더 어감이 좋았으면, 좀 더 둥근 발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평생 쓸 이름을 신중하게 정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 큰 아이 이름을 정할 때에는 우리 부모님과 장모님께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셨다. 좀 촌스러운 이름도 있었고, 작명소에서 지어줬을 것 같은 이름도 있었다. 나와 애들엄마는 독립운동가의 호를 따온 이름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어감은 좋으나 워낙 독특한 이름이라 좀 마음에 걸려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출생신고를 1달 안에 해야 한다고 해서 1달 동안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 이름으로 하자고 애들엄마와 대략적인 합의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이런 저런 이름들을 보내곤 하시던 양가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견이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결국 우리더러 알아서 하라며 참견을 그만두셨다. 거의 1달이 다 될 때까지 더 좋은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고, 결국 처음에 생각했던 그 독립운동가의 호를 이름으로 하고 출생신고를 했다. 아, 엄밀히 말하면 그 독립운동가는 그 이름을 호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어쨌든 그 이름을 한자까지 그대로 따왔는데, 한자의 해석은 그 분과 다르게 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렀다. 당시 아내는 둘째는 전혀 생각이 없다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 친구들, 지인들이 차례로 둘째를 낳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둘째를 갖고 싶어졌다고 심경의 변화를 내게 전했다. 그리고 금방 둘째를 가졌다. 둘째 이름을 어떻게 정할지는 정말 고민이었다. 첫째 때와는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약간 농담 식으로 했던 생각이 큰 아이의 이름을 따온 독립운동가와 아주 친한 동지였던 다른 독립운동가의 호에서 이름을 따올까 하는 것이었다. 그 호는 어감이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매우 독특한 이름이었고, 내 성과 썩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기도 해서 나로서는 정말 농담처럼 했던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애들엄마는 그거 좋다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음, 애들엄마는 너무 쉽게 그 이름이 좋다고 정해버린 듯한데, 나는 뭔가 좀 아쉬워서 그 이름 보다는 다른 이름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옥편을 뒤지고, 인명 사전을 찾아보고, 새로운 글자 조합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주위에서 큰 아이 이름을 잘 지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 이름을 지을 때 도와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어서 더 부담이 되고 어깨가 무거웠다. 이번에도 출생신고 기한 1달까지 최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더 좋은 이름을 찾고 또 찾았다. 결국 다른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감 기한이 다가올 수록 나도 애들엄마에게 설득당했다. 그 이름도 나쁘지 않네. 에서 그 이름 괜찮네. 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그 두 독립운동가가 절친이었으며, 역사에 분명한 궤적을 남긴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다만 큰 아이와는 달리 작은 아이의 이름은 한자까지 가져올 수 없는 글자였다. 한자는 발음이 같은 글자 중에 의미를 새로 부여해 정해야 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이름을 아주 특이하게 정하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특이한 아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초등 3학년쯤 되었을 때 동네에서 공동육아 방과후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참여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아이들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듣는 분을 만났다. 역사학 교수였다. 역사학자라면 당연히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이름들을 실제로 아이들에게 지어줄 생각을 했냐고 엄청 신기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두 독립운동가들의 남한 내 인식이 좋지많은 않을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듣고 쉽게 그 두 분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가들은 다른 한 분까지 셋이서 트로이카로 활동했었다. 나는 굳이 만약 셋째를 낳으면 또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전혀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그 나머지 한 분은 두 분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많이 낮고 활동 기간도 짧다. 두 분에 비해 일찍 일제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르셨고 나중에 석방된 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호도 없었다. 다른 대안은 있었다. 그 두 분 보다 훨씬 더 유명한 한 사람의 호를 갖다 쓰는 일인데, 그 이름도 정말 독특했지만 어감 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물론 셋째를 낳을 일은 없었기 때문에 전혀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들의 이름이 확실히 독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큰 아이의 이름은 워낙 특이해서 그랬고, 작은 아이는 이름만으로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지만, 내 성과 붙이면 특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둘 다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큰 아이는 초등 고학년 시절에 이미 자기 이름을 검색해보고 내가 존경해서 새로 바꾼 이름을 빌려온 그 분의 존재를 알았던 모양이다. 이 녀석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내게 자기 이름을 빌려온 분이 누구냐고 묻곤 했다. 작은 아이는 아직 자신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 모르는 눈치인데, 저번에 왜 자기 이름을 이렇게 지었냐고 물었을 때 설명해 준 적은 있었다. 다만,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아, 이렇게 적어 놓고 아이들 이름을 밝히지 못해서 유감이다. 개인 정보에 민감해야 할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아이들 실명을 오픈된 공간에 밝히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오늘도 한창 바쁜 날인데 어제 저녁에 본 달과 목성, 금성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 이름까지 주저리 주저리 떠드느라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버렸네. 얼른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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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2-2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가 호를 이름으로 쓰시다니... 좀 무거울 것 같으면서도 한국 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을 기억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알아보시는 분도 있군요


희선

감은빛 2023-03-17 18:34   좋아요 0 | URL
독립운동가의 호라고 하면 좀 무겁거나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어감이 좋아서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희선님. 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3-02-25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이름 지을 때 정말 고민많이 하죠. 감은빛님 아이들 이름 진짜 막 궁금해지네요. 누굴까 하면서.... 설마 경성트로이카 인물들은 아니겠죠 하다가 진짜 그럴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
저는 아이들 이름 지을때는 무조건 가볍게 짓자였어요. 뭔가 이름이 좀 대단한 아이들이 그 이름에 눌린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경우를 좀 자주 봐서였던듯요. 그래서 저희집 아이들 이름은 굉장히 가볍습니다. ^^

감은빛 2023-03-17 18:38   좋아요 1 | URL
궁금하시죠? ㅎㅎㅎㅎ
경성트로이카는 아닙니다. 그보다 조금 더 이전에 활동하신 분들이예요.

이름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긴 해요.
저도 막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 이름을 이런 뜻으로 지었다가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계셨는데, 그 이름을 따왔을 뿐이다.
뭐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줬어요.
아이들도 재미있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