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목숨이라는 것에 대해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 일대에 진도 7.8 강진과 90여 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 튀르키예 뿐 아니라 시리아 북서부에서도 엄청난 피해가 났다. 5,600여 개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예상된다. 현재 집계된 것만 약 4천여 명의 사망자와 2만명 이상의 부상자가 난 것으로 추정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 규모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는 무시무시한 한파로 인해 대만에서 146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원래 열대기후 지역이라 한파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제트기류가 출렁이며 북극 한파가 그대로 대만을 덮쳤기 때문에 일어난 재앙이었다. 어디 그 뿐일까. 세계 곳곳에서 십여 년 넘게 끊이지 않는 끔찍한 폭염, 한파, 가뭄과 산불, 폭우와 폭설이 정상이 아님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살인적'이란 수식어 밖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이제 한 달하고 4일만 지나면 일본 동일본 대지진 12주년이 된다. 지진해일에 이어 쓰나미가 덮쳐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가 일어난 날이었다. 4기의 원자로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건물이 터져나가서 12년째 방사능 물질이 공기 중으로 새어나오고 있으며, 뜨거운 핵연료 덩어리를 어떻게 해서든 식히기 위해 꾸준히 쏟아부어서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물을 더는 저장할 공간이 없다고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 해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전세계를 위협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장담하건데 일본 정부는 적어도 일이백년 안에 저 터져나간 4개의 핵발전소 건물을 막는 것조차 못할 것이다. 참고로 86년에 있었던 우크라이나(당시 러시아) 체르노빌 핵폭발 사고 당시에는 약 6개월 후에 석관을 만들어 덮어서 방사능 물질이 공기 중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았었다. 그 와중에 동원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머어마하게 희생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생각한다. 콩고 내전, 시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등 끊임없는 전쟁들을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 역시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다. 난방비 폭탄이란 말이 요즘 유행인 것 같은데, 폭탄은 언제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가격이 저렴한 나라에서 저 폭탄이란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에너지 공급 구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와 비교해 폭탄처럼 느껴지는 그런 요금을 맞이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전염병이 있다. 이는 기존에 알던 전염병이 아니라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다. 인수공통 전염병이지만, 인류에게 전파된 적이 없다가 우연한 접촉으로 인해 새로운 종을 숙주로 맛본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전파되고 계속 진화해 나가며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는 약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지만, 앞으로 또 언제 새로운 변종이나 전혀 새로운 종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평균 온도 상승으로 인해 열대 지역에 서식하던 수십여 종의 박쥐들이 온대 기후 지대였던 중국 남쪽으로 이동했음이 어느 과학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 어딘가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거나 죽어가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해본다. 나 역시 이 위기의 시대에 절대 안전하지 않다. 언제 어떤 일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공중 화장실


한 2주쯤 전이었다. 어느 선배가 불러낸 모임에 나가 놀다가 화장실에 갔다. 당연히 남자 화장실이었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풀어헤친 긴 머리가 너무 산발이 된 것은 아닌지 살피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문을 열었고, 잠시 후 앗! 하고 어느 남성이 놀라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곧 죄송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사과했다. 그때까지 나는 거울에서 시선을 돌리려다가 잠시 멈춘 상태여서 아직 상대를 보지 않고 있었다. 상대방 남성 역시 내 뒤통수만 보고 여성이라 착각한 상태에서 아직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휙 뒤를 돌아 보려다가 잠시 멈춘 이유는 만에 하나 상대가 내 얼굴을 보고도 남성임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그랬다. 


사실 2년 가량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가끔 상상한 적은 있었다. 공중화장실에서 긴 머리카락 때문에 여성으로 오해받아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저 때 이전에 그런 오해 때문에 뭔가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간혹 누군가가 오해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내 옷차림이나 모습을 통해 여성이 아님을 금방 깨닫지 않았을까. 그럼 그 날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평소 출근할 때는 머리칼을 묶고 다니지만, 쉬는 날엔 묶지 않고 풀고 다니는데,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답답하게 묶고 싶지 않았다.


암튼 그 남성은 화장실 밖으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고,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빠르게 화장실 밖으로 발을 내디디며 "아닙니다.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남성은 내 목소리를 듣고, 스치듯 내 얼굴을 보고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성큼성큼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꼼짝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직접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도 한동안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중에 그는 화장실을 다녀와 자신의 일행인 남성 친구에게 돌아가 목소리를 낮춰 내 이야기를 했다. 자리가 멀어서 그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과 몸짓은 분명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라고 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욕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놀랐다고만 표현했을까?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건, 그 이야기를 그리 길게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본의는 아니지만, 내 머리스타일 때문에 혹시 자신이 실수로 여성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줄 알고 놀랐을 그 남성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나도 조금 놀랐기에 그 자리에서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것 또한 미안한 일이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그때는 확실히 상황을 설명해야겠다.


잠과 실수의 상관관계


1월부터 3월까지 세 달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바쁜 시기라서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힘들다. 야근도 많고 시간에 쫓겨 뭔가 해야할 일들도 많다. 지난 주에 그렇게 시간에 쫓겨 연속으로 야근을 하고 밤새 일을 하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리고 어느 회의 자리에서 그 실수들을 지적 받았다. 여러 사람들이 다른 실수들을 집어냈는데, 그때마다 정말 부끄러웠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바로 깨닫고 바로잡았을만한 실수들이었는데, 그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보이지 않았다.


심리학자 김경일 선생이 책과 영상들에게 계속 반복해서 하는 말이 사람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나쁜 실수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읽고 들었고, 직접 경험해서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일을 하곤 한다. 나라고 좋아서 그러겠나.  


지금도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8시까지 매장을 보느라 문서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심지어 7시부터 8시까지는 매장 한쪽 테이블에서 회의를 하면서 손님이 오면 응대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8시가 넘어 매장 문을 닫고서야 비로소 문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글을 좀 쓰다 말고 잠시 쉬어야지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마치고 나면 원래 쓰던 문서에 좀 더 집중이 잘 될 것이다. 평소에도 그랬으니까. 오늘은 밀린 다른 일들에 더 손을 대지 않고 아까 쓰뎐 것만 마치고 12시 전에 집으로 가야겠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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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7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02-08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장실 에피소드는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너무 놀라셨겠어요^^;;;

오늘은, 감은빛님, 푹 숙면 하시길....

저는 이 밤에 키보드랑 놀고 있네요^^;;

감은빛 2023-02-17 19:0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얄라알라님.
저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제 뒷모습만 본 그 남성분이 훨씬 놀라신 것 같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3-02-24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뿐만이 아니라 먹지 않아 배고픈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날카로워집니다.
수면욕과 식욕, 이라는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해지나 봅니다.
그러니까 잠을 못 잤거나 배고픈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