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일 뿐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는 날들도, 달들도 그리고 한 해 또 한 해 지나가는 것들 모두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여기려고 한다. 22년 12월 31일과 23년 1월 1일은 그저 다른 날들처럼 그냥 하루가 지나간 것 뿐이다.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나 또한 어제와 다름없이 그저 나일 뿐이다. 그러나 자정을 넘겨 한 해가 지나가버렸음을 딱 깨달았을 때는 어쩔수 없이 어떤 회한이라고 할만한 감정이 들었다. 한 해동안 있었던 여러 사건들이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몇 해전까지만해도 해마다 연말연시에는 나름 이런저런 감상에 빠지곤 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그렇게 크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지나갔다. 새해라고 딱히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편이라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것일 뿐.
이명박이란 자가 풀려나고 엄청난 벌금도 다 면죄되었다는 소식에 화가 났다. 이 정부가 충분히 그러고다 남을 정부라는 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매번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이렇게 흔들리고 휘둘리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북한의 도발에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일종의 코메디처럼 느껴지는데, 이 정권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음을 깨닫고 약간의 절망감이 들었다.
지지난 주 주말 가장 친하게 지내는 몇몇 분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하고 있었는데, 조세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한 지인의 기자 친구가 전한 소식이었다.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쳤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글쓰기를 내 삶의 큰 목표로 정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수많은 문제들을 드러내고 바로 잡기 위한 삶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내게 큰 스승이었던 분이었다.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으려 했는데, 거의 몇 달동안 책장과 책상 위에 어지럽게 책을 마구 쌓아놓았기 때문에 바로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책 정리를 먼저 해야했는데, 그럴 여유는 또 없었다. 주말에 책을 찾아야지 했는데, 주말에는 이틀 내내 밖에서 시간을 보낸터라 아직도 책을 찾지 못했다.
작년 이맘 때 문서를 작성할 때마다 2022라는 숫자가 참 낯설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2023이란 숫자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작년 연말부터(불과 며칠전인데 벌써 작년!) 일상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일단 일이 조금 더 늘어났다. 일이 늘어난만큼 더 바빠졌는데, 그에 비례해 더 일하기가 싫어졌다. 예전에는 새로운 일을 맡으면 그만큼 더 의욕이 생겼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네. 이것도 다 나이가 들어서 이런 건가 싶다.
뭐라도 하자
해가 바뀌기 직전에 누군가의 강요로 어떤 모임에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 그만둔 어떤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한동안은 꽤 좋아했던 일로 어떤 계기가 만들어지면 다시 열심히 해보리라 마음 먹었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그저 귀찮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해봐야겠지.
저 앞에서 해가 바뀌었다고 해도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하루일 뿐이라고 적었는데, 그 말을 적고 나니 이상하게 자꾸 작년에 마음 먹었다가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음, 어차피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시간은 갈 뿐이다. 이왕 시간을 보낼 거라면 마음 먹었던 일들을 해보는 편이 더 좋겠지. 그래. 뭐라도 해보자.
거창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으련다. 그저 즉흥적으로 생각나는대로 살아갈 뿐.
누구를 원하시나요?
작년 초에 일터에서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열면서 매장 지킴이라는 새로운 일을 일주일에 두세번 가량 맡고 있다. 매장에 손님이 거의 없지만, 가끔 오시는 손님들과 마주치다보면 정말 다양한 상황을 겪는다. 아까 들어오신 50대 가량의 여성 손님은 들어오시며 "또 왔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셨는데, 내가 "어서오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니,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신다. "어, 그 분이 아니시네. 사람이 바뀌었나요?", "아, 여기는 시간대별로 여러 사람들이 매장을 보고 있어요." 그 분이 대번에 얼굴에 실망한 표정을 드러내셔서, 나는 좀 당황했다.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리셨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금방 말을 멈췄다. 이런 저런 상품들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하셨다. 한삼십여분 온갖 상품을 다 건드려보고 질문을 하더니 결국 하나의 상품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다. 최근 방문 횟수에 따라 도장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매일 방문해서 하나씩 상품을 사고 있다고 했다. 보니까 이미 도장을 6번 찍었고, 오늘이 7번째다. 상품을 안 사고 그냥 구경만 하다 나가도 괜찮고, 더 긴 시간 머물다 가도 괜찮고, 질문을 더 많이해도 아무 상관은 없는데, 이 분의 태도는 조금 마음에 걸렸다. 질문을 해놓고 대답을 하면 제대로 듣지 않는 느낌이었고, 뭔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는 태도처럼 느껴졌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을 깎으려고도 했다. 물론 나는 정해진 금액을 깎아줄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단호히 그렇게 답했다. 이제 남은 3번의 도장을 더 받기 위해 앞으로 3번 더 방문하실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이번 주는 내가 저녁에 매장을 보는 날이 대부분이라서 나랑 두 세번 정도 더 마주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예측할 수 있었다. 막상 10회 도장을 채우면 드리는 선물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서 그 분의 반응이 또 살짝 그려지는데, 그때쯤 되면 나도 꽤나 그 분에게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확실히 장사하는 사람은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마스크 위로 얼굴을 살피는데, 정말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불치병에 걸린 처지라 마스크를 안 썼어도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을 구분조차 잘 못하겠지만, 마스크를 쓴 상황에서는 더욱 심각했다. 지난 주에는 친한 선배가 매장을 방문했는데, 얼굴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 선배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엄청 낯익은 목소리에 이상하다 싶어서 얼굴을 다시 봤다. 목소리는 분명 아는 사람이 맞는데, 얼굴은 바로 매치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그 분이 마스크를 고쳐 쓰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장사는 한 번만 봐도 쉽게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해야 좋을 것 같다. 나는 같은 사람이 자주 와도 아마 계속 알아보지 못할 확률이 높다. 같은 이유로 나는 정치인으로서도 0점이다. 길에서 마주친 딸을 못 알아보다는 전유성 씨의 일화를 종종 떠올린다. 나는 과연 화장한 우리 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미 동생과 엄마의 화장한 모습을 못 알아봤던 적이 있어서 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