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대하는 태도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존경할만한 훌륭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닮고 싶은 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부러워했고,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면을 가진 사람을 보면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그렇게 좋은 사람은 사실 소수다. 다수는 그닥 상대하고 싶지 않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그 외에 정말 싫은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그중 제일 싫은 사람은 남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다른 측면에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좋게 생각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다른 사람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것이 그리 쉽게 드러나는 태도가 아닐 경우도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항상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잘 갖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 겪은 두어가지 사건이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믿었던 사람 아니 믿고 싶었던 사람에게 충격적인 표현을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알기 어려우니까. 자기 생각만으로 잣대를 만들어 살아가야 한다. 그 잣대가 남들과 많이 다르면 어렵고 힘든 삶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자기 잣대와 남들의 잣대가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무조건 옳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한 사람의 잣대가 더 적절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그 잣대만 맞다고 볼 수는 없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가? 아, 이렇게 말해놓고 나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이해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모르겠다. 나는 나고 너는 너일 뿐. 사람은 영원히 다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부모 자식이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속에서 사람들을 점점 지워가게 된다. 최근에 몇몇 사건들을 겪으며 또 몇 명의 사람들을 지웠다. 좋은 사람에서 왠만해서는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마음 속에서 분류를 바꿨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다.


육체노동을 하고 싶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2년 4개월이 지났다. 사고 이후 긴 시간 제대로 먹지 못해 위가 줄어들어서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었던 기간이 지났다. 스트레스를 이유로 과식과 폭식을 이어간 덕분에 다시 예전처럼 위가 늘어났다. 먹는 양이 줄어들어 있을 때에는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배가 부르면 뭘 더 먹을 수가 없었으니 몸매 관리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그런데 이젠 아무 생각없이 먹다보면 끝없이 먹게 되어 배가 나온다. 그럼 또 한동안 식사 조절을 해서 다시 배를 넣고 몸매 관리에 들어간다. 익숙한 일이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조금만 참고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그런데 점점 더 어려워 진다는 걸 느낀다. 그 참고 노력하는 일.


머리가 아픈 일들이 많다. 다 그만두고 그냥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다. 아무 생각없이 힘을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 생계를 위한 직업이었으면 좋겠다. 답이 안 나오는 일을 갖고 고민하는 것 너무 피곤한 일이다.


차별 없는 삶


한 2주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이 책을 다 읽었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저자의 직업이 부러웠고, 저자의 유연한 태도와 사고가 부러웠다. 나는 대학시절 여성학 강의를 들으며 처음 여성주의를 접했다. 남성을 적대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더너 강사의 태도 때문에 나도 모르게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머리로는 당연히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감정은 자꾸만 삐뚤어졌다. 특히 학년대표였기 때문에 늘 그 강사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았던 나를 유난히 괴롭히는 듯한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강사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남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성숙되지 못한 사람이었던 거라고 이해해보려는 생각을 해봤다. 그 후로 다시 마주친 적이 없기 때문에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성주의라고 부르건, 페미니즘이라고 부러건 용어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암튼 성별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평생에 걸쳐 몸에 체득해야 할 태도다. 맨 처음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적었는데, 성별로 인한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건 그 기본에 포함되는 내용이다. 당연히 꼭 지켜야 할 하나의 도덕이자 규범이라 여기고 살았다. 물론 일상에서 그것을 잘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큰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활동가들에게도 그런 말을 듣곤 했다. 하루종일 아기와 집에 있는 날들이 답답하면 아기를 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백화점에 가서 사람 구경을 하곤 했다.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기 위한 공간들이 백화점에는 잘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거기서도 나는 눈총과 수근거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음, 쓰다보니 또 자꾸 옛 기억에 빠져들게 되네.
















책을 다 읽고 한 가지 고민은 과연 우리 인간이 자신의 삶 안에서 명확하게 차별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회적인 태도로는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답하기 어렵다. 어떤 태도나 어떤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거부 반응이 들기도 하니까. 내가 싫은 것과 사회적 차별은 다른 문제라서 아무리 싫은 어떤 취향의 사람이라도 그가 차별받는다면 그를 위해 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계속 그를 아니 그의 취향을 싫어하는 상태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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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로 또 한동안 마음이 힘들어 일상생활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세월호 사건 당시에 매일매일 괴로웠던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정부의 대응을 보며 답답해 죽을 것만 같다. 민주당 정부가 뭐 잘한 거 하나도 없지만, 박근혜나 윤석열은 어떻게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지를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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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즉흥적으로 아이들에게 놀러가자고 말을 꺼낸 후에 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못하고 며칠을 보냈다. 멀리 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차도 많이 막힐 것이고 힘드니 비교적 가까운 곳을 가며 좋겠다 생각하다가 충청도 지역으로는 제대로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을을 깨달았다. 충청도 출신 후배들에게 어디 좋은 데 없냐고 물어보고 서너군데 추천을 받았다. 거의 여행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단양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1박2일동안 단양8경을 돌아보고 오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애들엄마가 미리 말을 해주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일주일 해외 출장 일정을 알리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여행은 그 일정의 거의 가운데 위치했다. 어쨌거나 아이들과 재밌게 잘 놀고 돌아왔다. 첫째날은 늦게 출발해서 숙소에 들어와 저녁 먹고 노는 것으로 끝났고, 둘째날 아침부터 저녁 나절까지 단양8경을 모두 보는 강행군을 거쳤다. 사실 두번째 중선암은 먼 발치에서 보고 돌아섰고, 세번째 상선암도 스쳐지나듯 보기만 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석문의 경우 아이들은 올라오지 않고 나 혼자 빠른 속도로 올라와서 보고 내려갔다. 어쨌거나 목표는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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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25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싫은 사람은 남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 동의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근데 보통 그런 사람이 처음에 괜찮았던 적도 없는거 같아요. 저건 기본적인 심성에 관한거 같아서요.
여러가지 일들로 늘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어지럽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또 그속에서 의미있는 시간들도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지는듯 합니다. ^^

감은빛 2022-11-28 18:0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참 속상하기도 하고 또 이상하기도 합니다.
매일 보내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참 어렵네요.
어느새 11월도 휙 지나가버리고 12월이 다가오네요.
금방 또 23년이 다가오겠지요.

지나가버리는 날들이 아까워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다보니 그것도 쉽지 않네요. ㅎㅎ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더 기분이 쳐지네요.
이따 축구보면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11-28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어요. 자신이 오만해서일 수 있고 자신이 무지해서일 수 있고... 오만한 쪽이 더 싫지요. 그리고 남을 무시함으로써 자기의 위치가 올라가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거예요. 그런 이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안다면 안 그럴 것 같은데 말이죠.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것, 부럽네요. 저는 요즘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른다는...

감은빛 2022-11-28 18:08   좋아요 1 | URL
네, 페크님. 저는 오만한 사람이 무지한 걸로 보이기도 하더라구요.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것으로 보여요.
분명 똑똑한 사람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잘 나가는 사람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잘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기도 한 거겠지요.

페크님께서 제게 부럽다고 하시니, 제가 민망하네요.
제 글은 그저 생각이 흐르는대로 막 쓰는 거라 내용이 부실하지요.
페크님의 글은 정갈하고 멋져요.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