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같은 사람


엊그제 오랜만에 마을 활동가 한 분과 마주쳤다. 가끔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은 있는데, 말씀을 나눈 건 몇 년만인 것 같다. 딱 나를 보자마자 오키나와 여행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린 일행의 사진에서 봤다고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그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상기시켰다. 그 일행은 나보다 거의 10살 가량 많은 여성 선배였는데,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이 무척 좋았다면서 일행들에 대해 한 마디씩 남겼는데, 내게는 "오빠 같은" 이란 수식어를 달았었다. 나도 그 선배가 그 글을 올렸을 때 보고 속으로 왜 오빠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회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차례 그 선배의 사소한 실수들을 바로 잡아주거나, 이런저런 잡다한 부탁들을 여러번 해결해줬던 기억이 났다. 여행 때도 일행 중 딱 나이대가 중간이라 위로 선배들 챙기고, 아래로 동생들 챙겼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쓴건가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분이 다시 언급하셨다.


그 분도 아마 나와 그 선배의 나이 차를 대략 짐작하신 듯. '오빠'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선배 같은 연차가 오래된 활동가도 오빠처럼 의지할 만한 분 이시군요. 뭐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당시 경황이 없어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웃고 넘겼고, 나중에서야 그 분이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 분은 짧은 대화에서 또 다른 기억을 상기시켜주셨는데, 오래 전 지역 시민신문에 육아일기 성격의 글을 연재했던 얘기를 꺼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는지 물어보셨다. 큰 아이가 중2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하긴 그때는 아마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블로그에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안해서 시민신문에 1년 조금 넘게 연재했었다. 아빠랑 함께 놀기 라는 컨셉으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니 실제로 아이들과 놀 여유가 별로 없었고, 그냥 단순히 놀았던 걸 글로 풀어낼 수 없으니 매번 뭔가 독특한 소재를 찾아야 해서 글을 연재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인사해주신는 분들이 있어서 바쁘고 힘들어도 억지로 쓰긴 했는데, 나중에 신문 개편 과정에서 다른 기획을 이유로 연재를 그만하자고 편집장님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 분에겐 내가 오래전에 아이들과 놀면서 지낸 이야기를 연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정작 나는 연재를 그만둔 후로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어떤 순간을 공유했던 누군가에게 나는 늘 그 기억으로만 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나쁜 짓 하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싶다.


통상적으로는 술꾼,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과격한 운동권, 빨갱이, 또 누군가에게는 독설가로 기억에 남아있겠지. 어쩌면 육아하는 아빠, 늘 아이랑 함께 다니는 아빠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로 남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부 간의 평등














어제 밤 9시 반에 회의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나니 10시였다. 선배들이 근처 술집에 자리잡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히 마시고 헤어지려던 자리는 부부 간의 불화, 불평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 주제가 바뀐 후로 갑자기 불이 붙었다. 운동권이지만, 좌파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부부 간의 평등은 쉽지 않다. 


물론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하는 이념과는 상관없이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집안 일을 잘 하는 남자들도 분명 있고, 요즘 젊은 층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다만, 여전히 그 한계는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결혼하기 전부터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로서, 남녀 불평등을 말로만 떠는 사람이 되지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 가사노동과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아무리 야근을 하고 돌아와도, 아무리 술을 마시고 새벽에 돌아와도 아이 천 기저귀는 다 빨아서 삶아놓고 잠들었다. 그래서 잠을 두세시간 밖에 못 자더라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평일에는 할 수 없었던 집안 일과 육아를 주말에 몰아서 다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주말에 잡힌 회의나 행사에 늘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도 아마 애들 엄마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현실은 그런 것이라 믿는다. 어제 몇몇 선배들의 솔직한 속내 이야기를 들으며, 분명 공감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진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다 각자의 현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에 그런 면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로 서로의 차이를 깨닫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는 건 봤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건 궁금하니까 한 번 읽어봐야겠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일정으로 아이들과 지내야 할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아이들은 자꾸만 훌쩍 커버리는데, 아이들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데, 나는 자꾸만 바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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