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정거장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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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의 이번 작품집을 읽고 나서 강렬하고 눈부신 태양빛이 연상되었다. 감정의 파란이 마구 생기는. 단호하고 예리해서 받아들이기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이는 전경린만이 가진 매력이라 할만하다.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게 만드는 고유성이 바로 전경린에게는 매섭게 돌진해나가는 그 추진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때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게 관습화된 폭력을 묵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를 가슴 뜨끔하게 제시한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와 관념에 대한 전복의지는 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사회규범이나 질서 안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우리네의 삶에서 <낙원빌라>에서의 성폭행안 남성에 대한 휘양의 복수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기존의 관습화되고 견고한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다고 할만한 휘양의 복수가 내면에 잠복해 있는 욕망을 일탈을 통해 충실히 따르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

이는 무모해 보이지만 실은 은밀하게 감춰진 인간의 가장 솔직한 본능이란 내면을 공감할 수 있게끔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물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인물의 내면풍경도 자극적이다. 전경린,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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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올해의 문제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푸른사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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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도 대체적으로 재미있었고, 나름대로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도 몇 있었다. '2003 올해의 문제소설'은 '우리 소설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성과 문제성을 지닌 작품'을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다. 우리 '소설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성과 문제성'이라....... 한마디로 좋은 소설을 뽑았단 말인데, 정말 그럴 수 있나? 그러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나, 하는 데 질문이 뭉글뭉글 솟아난다. 너무나 느닷없이.

여하튼 이 책이 수록된 작품은 다 읽었고, 그 중에서 우리 문학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김종광의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위대한 낙서문학사 창시자 유사풀의 평전을 쓰려는 연구자가 생전에 유사풀과 관계 맺었던 사람들을 통해 그를 얘기하게한다. 다양한 계층에 속해있는 인물들이 말하는 유사풀의 삶이 내용인 이 작품은 우선 속도감 있게 술술 읽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인물들의 성격이 잘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유사풀의 '낙서문학'이다. 이름부터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 낙서문학은 유사풀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지향점이었다. 낙서문학은 유사풀 자체이며 전부였던 것이다. 하여, 자신의 낙서문학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졌을 때, 자기 존재역시 바스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신념을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그가 느낀 문학에 대한 회의나 절망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비춰진다. 그렇지만 죽고 나서 자신이 전연 의도하지 않았을, 상업적인 포장으로 인해 그의 낙서문학은 '21세기'다운 문학으로 인정받으며 우리 한국 문학사의 커다란 기념비적인 성과란 지위를 향유하게 된다.

여기서 낙서문학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자. 이 소설 작품에서는 낙서문학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학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성격의 무엇이라고 제시하려는 듯, 희곡, 평론, 수필에서 따운 형식이나 내용이라는 혐의가 짙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낙서문학은 지금 우리 문학을 비롯한 사회의 비판이나 야유나 조롱일 뿐이다. '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첩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이 작품의 요지이며 바로 작가의 문제의식이다.

오직 잘 팔리기 위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나 비평가들이 신념을 진정성을 내팽겨쳐버렸다. 이는 문학이 썩었으며 황폐해졌단 말이며 곧 우리 사회가 이렇다는 말과도 일치한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물질을 숭배하며 부조리하다는 말인 것이다. 낙서문학 창시자인 유사풀의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2015년에 제정했으며 노벨상보다 더 많은 상금을 내걸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데에서 설핏 웃음이 나올 만큼 낙서문학은 그야말로 말짱 허구임이 밝혀진다. 다만, 우리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기 위한 좋은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 문학과 사회에 대한 한없는 빈정거림과 이죽거림을 낙서문학을 내세워 조롱하고 있는 바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고도로 발달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은 어떠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사실 문학은 타락한 이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비껴서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자신들이 이러면 패배하고 상처입을 줄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작가가 아닌가.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 작품에서의 인물들. 그들을 통해 우리네 삶을 반성하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길.

다만, 이랬음 좋겠다. 적어도 문학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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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기쁨 - 한국 현대 시인 25인과의 아름다운 만남
정효구 지음 / 작가정신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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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구는 <시 읽는 기쁨>에서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시를 많은 대중이 알게 되길, 시를 괜시리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시를 접해보길, 대중들이 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관념에서 벗어나길, 대중들이 시를 사랑하고 시를 풍요롭게 읽어낼 수 있길, 시와 시인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사실,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세우는 주장을 매우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그럼직해 보이는 근거들로 그 텍스트 해석을 읽는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정효구의 <시 읽는 기쁨>에서 25명의 현대 시인들의 시 한 편을 제시하고 그 시를 시인의 삶이나 문학적인 가치 등을 말하면서 해설한다. 물론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다르게 판단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그럴 듯하게 말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들은 자신의 삶의 깊이로 작품을 쓰고, 독자 역시 자신의 삶의 깊이로 그 작품을 해석한다고 했을 때, 독자 저마다의 스키마로써 판단하고 평가하는 바는 당연하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와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시를 어렵게 생각해서 시를 손대기 어려워한다면, 이처럼 시를 해설 해 놓은 책을 한번 접해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시인을 꼽아 그 시인의 작품을 찾아 읽는 방법도 좋을성 싶기 때문이다. 한가지 당부하고 싶다면, 어느 문학 연구자(비평가)의 해설은 그들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라는 바다. 공감되는 바가 있겠지만 일치하지는 않을 거다. 사람은 다양하고 복잡한 법이니. 실은, 이 말은 바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내가 작품을 읽고 난 후의 감정이 하찮게 느껴져서 논리적인 비평가의 말에 은연중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러, 이 책을 읽어보았다.

어쩌면 나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려고 있은 책이 적잖게 도움이 되었다. 자신이 받은 감정을 남에게 얘기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자신의 진실한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내가 요즘 얼마나 시를 읽지 않는지 반성도 하게 되었다. 익히 알고 있는 시인도 있지만, 더러 처음 들어보는 시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읽고 느끼고 해석하고 싶은데 자꾸만 한 작가에게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아직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아무런 편견없이 읽어봐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결국, 시 읽는 즐거움은 그 시를 읽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며 자기를 되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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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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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해서 그간 발표했던 시들을 묶어낸 시선집은 독특한 시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정호승 님의 말대로 자신을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모아 몇날 며칠 어루만져' 다시 세상에 내보이는 마음을 어렴풋 짐작해 볼 수 있다. 시인 정호승 님은 그 마음이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새똥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난 감히 그 마음만은 잘 모르겠다.

글쓰는 데 재능이 없는 나라고 일찍이 단정지어버려서인지 자신의 글이 세상에 내어졌을 때의 그 기분은 도통 알 수 없으니. 다만 시인이 그 마음이라는 데 공감도 반대도 할 수없는 기분이다.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시인은 작가의 말도 멋지게 쓰는 구나하고 또 감탄할 뿐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 '잘 가라. 고통이 인간적안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이겠지.'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선집이 무얼 토대로 선별한 시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시들의 이번 주제는 바로 사람인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완전한 무엇을 갈망하고, 약하고 약해서 곁에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상처받지 않는, 완전하고 씩씩하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럴 때 생기는 절망이나 환멸은 도무지 시인 정호승에게는 어울리지 않다. 낮은 곳에서부터 생기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소통이 사라진 관계에서도 사랑은 늘 노래되어지고, 사랑이 끝까지 와줄 거란 기대는 버리지 않는다. 사랑하다가 죽을지언정. 그러면서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보며 기다린다. 그러면서 절망은 결코 아닌 자기 연민과 그리움을 굳게 다진다. 어쩌면 이 광속도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다지도 미련스러울만치의 감정이 유지될 수 있을 수 있을까. 증오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그 지독하고 순진무구한 마음을 어떻게 가능할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진 않을 거다. 그렇지만 화자는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아파한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건 사람 관계를 삭막하게 한다. 오히려 더 아플 거다. 결코 증오도 사랑할 수 없고 증오는 증오로 남을 뿐이다. 혼란으로 뒤덤벅된 마음에 그만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실린 시들의 화자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한다.

화자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사랑, 그만큼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이기에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다. 밤을 밝히어주고 환한 웃음을 웃게 해주는 사랑을 아는 사람이기에. 아무도 내게 관심가져주지 않을 때 나를 사랑해주고, 기다려 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의 주검을 씻기어주고 나의 죽음이 된 타인를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정 내가 전에 맛보았던 사랑이든 그렇지 않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자기가 가야할 길은 반드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죽음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읊조릴 정도의 이 화자는 기다림과 그리움이 인간이라면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고 있다. 화자의 무한한 사랑이 가능한 건 이런 이유도 포함된다. 혼자되는 외로움도 견디어낼 수 있다. 이런 화자는 또다른 대상에게서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상처가 스승이 된다고 말하는 데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테다. 예수의 못자국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우리네의 근원이 촉촉히 적셔지듯, 나도 너에게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이뿐이다. 다만. 사랑이 두렵지 않으므로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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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위하여 - 2001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완서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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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떠 어떠한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면 으레 관심의 대상이 된다. 문학평론가들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으로 비평하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 수긍이 되고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같은 작품을 읽고서 반응이 각기 다를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을 어떻게 나타내느냐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인 비평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이뤄놓은 지식이든 감정따위에 근거해 아주 논리적으로 평하면 그럴듯해보인다.

어쩔 땐 내가 읽은 작품이 아주 보잘 것 없다고 느꼈더라도 전문가들이 대단하다 말하면 그렇게 끌려가기까지 한다. 아주 언짢은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작가들이 그들 삶의 깊이로 작품을 쓰듯, 문학평론가들 역시 그들 삶의 깊이로 작품을 평한다고 하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독서 후 내 감정, 내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 휩쓸리지 않고 말로써, 글로써 잘 표현할 수 있게 훈련을 해야 하겠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힘들여 찾지 않고서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은 생각만큼이나 유쾌한 일이다. 가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문학상 수상작에 실망할 때도 있지만, 문학상 수상작을 읽는 것은 유익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익히 들어보았지만 작품은 읽어본 일이 드문 내게-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먼저 섭렬하는지라 여러 작가의 작품 읽기에 속도가 느리므로-다양한 작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에.

'2001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 김원일의 '나는 두려워요',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최일남의 '명필 한덕봉'이 특히 좋았다. 좋았다는 단순하고 평범한 말로 표현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좋았다. 박완서의 작품이나 최일남, 성석제의 작품은 처음 접하기 때문에 더욱 새롭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다음 이들 작가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다른 작품 감상은 다음에 미루고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와 김원일의 '나는 두려워요'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자 한다.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왜 박완서의 작품을 읽는지 알았다. 엄청나게 사회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 사소하고 그래서 하찮게 보았을지도 모른 그런 일상생활의 일들을 통해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끔 해준다. 쉽게 술술 읽히는 것도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되지 않게 단 한줄로 줄거리를 말하면'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 동생에게 은연중이든 어떻든 '상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순전히 동생의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행복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그릴 것이 없어 메마른 가슴으로 살아왔던 삶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움이란 감정을 채워가겠다고 '나'는 말한다. 그리움을 잊고 메마른 가슴으로 살아온 이는 비단 부유하게 살아온 '나'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인의 얘기가 아닐까.

김원일의 '나는 두려워요'는 주님의 이름 아래 평생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봉사와 헌신으로 살아온 '윤 선생'이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주님께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음에 걸렸던 일들을 고해하면서 주님을 만나기가 두렵다는 말을 한다. 생을 타인을 위한 봉사와 헌신으로 살아온 이도 자신의 결함을 생각하면서 완전무결한주님께 다가가기가 두렵다고 말하는 데서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부끄러웠고 부끄러웠고 부끄러웠다. 지금부터 나는 두렵기로 한다.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사회에. 감히 송구스러워하면서 진실하고 또 진실하게 살고 싶다. 또한 이 작품에서 여실히 보여지는 건 '윤 선생' 한 개인의 삶은 우리 사회의 질곡도 잘 드러내준다.

여러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누구나 다 하는 얘기만 덧붙여 놓은 것만 같다. 내가 한 말들은 마뜩잖지만 '2001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충분히 읽어볼만한 재미와 감동을 갖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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