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해서 그간 발표했던 시들을 묶어낸 시선집은 독특한 시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정호승 님의 말대로 자신을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모아 몇날 며칠 어루만져' 다시 세상에 내보이는 마음을 어렴풋 짐작해 볼 수 있다. 시인 정호승 님은 그 마음이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새똥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난 감히 그 마음만은 잘 모르겠다.

글쓰는 데 재능이 없는 나라고 일찍이 단정지어버려서인지 자신의 글이 세상에 내어졌을 때의 그 기분은 도통 알 수 없으니. 다만 시인이 그 마음이라는 데 공감도 반대도 할 수없는 기분이다.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시인은 작가의 말도 멋지게 쓰는 구나하고 또 감탄할 뿐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 '잘 가라. 고통이 인간적안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이겠지.'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선집이 무얼 토대로 선별한 시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시들의 이번 주제는 바로 사람인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완전한 무엇을 갈망하고, 약하고 약해서 곁에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상처받지 않는, 완전하고 씩씩하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럴 때 생기는 절망이나 환멸은 도무지 시인 정호승에게는 어울리지 않다. 낮은 곳에서부터 생기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소통이 사라진 관계에서도 사랑은 늘 노래되어지고, 사랑이 끝까지 와줄 거란 기대는 버리지 않는다. 사랑하다가 죽을지언정. 그러면서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보며 기다린다. 그러면서 절망은 결코 아닌 자기 연민과 그리움을 굳게 다진다. 어쩌면 이 광속도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다지도 미련스러울만치의 감정이 유지될 수 있을 수 있을까. 증오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그 지독하고 순진무구한 마음을 어떻게 가능할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진 않을 거다. 그렇지만 화자는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아파한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건 사람 관계를 삭막하게 한다. 오히려 더 아플 거다. 결코 증오도 사랑할 수 없고 증오는 증오로 남을 뿐이다. 혼란으로 뒤덤벅된 마음에 그만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실린 시들의 화자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한다.

화자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사랑, 그만큼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이기에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다. 밤을 밝히어주고 환한 웃음을 웃게 해주는 사랑을 아는 사람이기에. 아무도 내게 관심가져주지 않을 때 나를 사랑해주고, 기다려 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의 주검을 씻기어주고 나의 죽음이 된 타인를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정 내가 전에 맛보았던 사랑이든 그렇지 않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자기가 가야할 길은 반드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죽음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읊조릴 정도의 이 화자는 기다림과 그리움이 인간이라면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고 있다. 화자의 무한한 사랑이 가능한 건 이런 이유도 포함된다. 혼자되는 외로움도 견디어낼 수 있다. 이런 화자는 또다른 대상에게서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상처가 스승이 된다고 말하는 데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테다. 예수의 못자국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우리네의 근원이 촉촉히 적셔지듯, 나도 너에게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이뿐이다. 다만. 사랑이 두렵지 않으므로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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