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그림자 2005-12-26
근황.
#성탄절이었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가 성탄절 연휴.
어제 라면을 사러나간 거리가 텅 비어있어서 놀라고, 문 닫힌 상점들에 한 번 더 놀라고. 혹시나 해서 간 다른 상점들도 일제히 문이 닫혀있고. “내가 문연 데 없다고 그랬잖아.” 툴툴거리는 리앤에게 대꾸없이 차창밖만 쳐다보다가, 뜬금없이 몇 마디.
-난 열넷부터 학교 때문에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살아야했거든? 근데 고등학교 방학 때든, 대학교 방학 때든 집에 돌아가기가 싫었어.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공부한다고, 대학 때는 일한다고 집에 가지 않았어. 그런데 우리나라는 설날이라고 큰 명절이 있거든? 음식 잔뜩 장만하고,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 이 날만큼은 다들 모이고. 이 날은 나도 빠질 수가 없었어. 그래서 집에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 나는 얼른 학교로 가고 싶었어. 그리고 난 꼭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먹었어. 삼사일 내내. 원래 라면 같은 거 안 먹는데 꼭 그때만큼은 그랬어.
=그래서?
-우리 엄마, 많이 서운했겠다, 싶네.
=왜 하필 라면이었는데?
-몰라.
자전거를 타고 라면 사러 갔다오겠다고 했는데, 오늘 상점들 다 문 닫혀있다고, 게다가 비 오는데 무슨 자전거냐고 하면서 운전을 하고 같이 나와준 리앤이었다. 같이 사는 뉴질랜드 부부가 한달간 미국을 가고, 리앤과 같이 이 집에서 살고 있다. 항상 툴툴거리고, 싫은 거, 좋은 거 분명한 똘똘한 아이. 공항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까지 잠에 취해있다가, 내가 나가는 기척에 일어난 아이. 피곤한 기색 역력한데도 같이 따라나와주고. 가만 생각해보니까 늘 툴툴거리면서도 언제든 나에 대한 배려가 상당하다. 딴 데서 뭔 말 듣고 그 뜻을 몰라서 리앤에게 물어보면, 너는 언제쯤 다 알아들어서 나한테 질문 안할까,라고 말해 사람 속 뒤집어놓지만 언제 미운 소리 했나싶게 찬찬히 설명해주는 아이. 부탁 안 들어줄 것처럼 굴다가도 글 쓴 것도 고쳐주고 발음도 고쳐주는 아이. 가만 생각해보니까 새삼스럽게 고마워져서,
-고맙다.
=너, 라면이 정말 먹고 싶구나? 중국인 상점은 문 열었을지도 몰라, 그럼 그리로 가보자.
그리고 어제 라면 먹었다. 신라면.
(페어퍼에 글을 쓸 수가 없다. 자꾸 오류 창만 뜬다. 방명록에 글쓰기를 시도하니 되네, 참. 몇주전부터 마음은 이미 한국에 있다. 공부고 뭐고 될 턱이 없다. 마음이 한 자리에 못 앉아있어서 떠나왔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는 공간을 바꿔봤고 환경을 바꿔봤다. 그간 시간만은 잘도 흘러가더라. 그간 얼마간은 변했다고 인정. 그리고 여전한 건 있다고도 인정. 그래도 나 한 뼘 정도 자랐다고, 힘들기도 했지만 잘 견뎠다고 말하면 기특하다 말해줄 사람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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