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할 때가 왔다고, 이제 그만 미련스런 미련을 버리자고 다짐했다. 결심을 굳히기 위해 떠나겠다고 했다. 그러자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던 그 상대는 여전히 나를 가소로워했다. 오히려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절절한 고백을 다시 한 번 한 셈이다. 나 자체를 오직 그대로 가득 채우려했다고 말이다. 그만큼 빠져있었다고 말이다. 속절없는 고백, 그 눈물나는 짝사랑을 이제는 그만 두리라, 돌아와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리라. 없는 듯 잊고 살아가리라.
늘 애정과 열의와 열정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따금씩 재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재능의 문제라고, 내가 그것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을 무작정 믿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실체없는 공허함일 뿐이라고 한 가득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너였다가 그대였다가 그것이었다가 호칭은 수시로 바뀌는.
문학에 대한 짝사랑을 그만 두겠다고 선생님에게 고백을 했고, 선생님은 다른 일도 모두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갈피를 못 잡고 헷갈리는 것이 문학이라고. 실체가 비어있어 각자가 채우는 것이 그것이라고. 그 말이 위안이 됐고 마음 독하게 먹고 단칼에 베려고 한 마음이 우스울 만큼 흐물흐물해졌다. 어디 마음 먹는대로 되기만 하랴. 문학 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느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년 학교를 쉬려고 한다고, 계속 공부를 하겠다는 역량도 없이 그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나의 진로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어디 마음처럼 될까. 일년 쉬는 일이 남들에게 뒤쳐지는 일이 아닌가 조바심쳤지만 뭐가 꼭 그렇기만 할까.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그저 차곡차곡 채워나가길 바란다. 이렇게 자꾸 흔들리지만 생각할수록 극단으로 스스로를 내몰지만, 다른 방향에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길. 어차피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 같은 것은 일찌감치 버렸으니까(분명 아직 덜 버렸을테지만) 보다 인간답게, 충실하게 살았으면 한다.
언제까지 짝사랑을 할지는 모르겠다. 버리려고 하지만 맘처럼 될지 모르겠어서. 한 일년 학교를 쉬고 문학 아닌 것들로 둘러싸여보려 하지만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이 불투명성.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막막함, 그 막막함은 불안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그저 문학 때문에 받은 여러 마음을 문학을 여전히 짝사랑하는 그들에게 말할 수 있음은, 이 사실 하나는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