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올해의 문제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푸른사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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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도 대체적으로 재미있었고, 나름대로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도 몇 있었다. '2003 올해의 문제소설'은 '우리 소설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성과 문제성을 지닌 작품'을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다. 우리 '소설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성과 문제성'이라....... 한마디로 좋은 소설을 뽑았단 말인데, 정말 그럴 수 있나? 그러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나, 하는 데 질문이 뭉글뭉글 솟아난다. 너무나 느닷없이.

여하튼 이 책이 수록된 작품은 다 읽었고, 그 중에서 우리 문학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김종광의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위대한 낙서문학사 창시자 유사풀의 평전을 쓰려는 연구자가 생전에 유사풀과 관계 맺었던 사람들을 통해 그를 얘기하게한다. 다양한 계층에 속해있는 인물들이 말하는 유사풀의 삶이 내용인 이 작품은 우선 속도감 있게 술술 읽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인물들의 성격이 잘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유사풀의 '낙서문학'이다. 이름부터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 낙서문학은 유사풀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지향점이었다. 낙서문학은 유사풀 자체이며 전부였던 것이다. 하여, 자신의 낙서문학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졌을 때, 자기 존재역시 바스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신념을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그가 느낀 문학에 대한 회의나 절망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비춰진다. 그렇지만 죽고 나서 자신이 전연 의도하지 않았을, 상업적인 포장으로 인해 그의 낙서문학은 '21세기'다운 문학으로 인정받으며 우리 한국 문학사의 커다란 기념비적인 성과란 지위를 향유하게 된다.

여기서 낙서문학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자. 이 소설 작품에서는 낙서문학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학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성격의 무엇이라고 제시하려는 듯, 희곡, 평론, 수필에서 따운 형식이나 내용이라는 혐의가 짙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낙서문학은 지금 우리 문학을 비롯한 사회의 비판이나 야유나 조롱일 뿐이다. '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첩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이 작품의 요지이며 바로 작가의 문제의식이다.

오직 잘 팔리기 위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나 비평가들이 신념을 진정성을 내팽겨쳐버렸다. 이는 문학이 썩었으며 황폐해졌단 말이며 곧 우리 사회가 이렇다는 말과도 일치한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물질을 숭배하며 부조리하다는 말인 것이다. 낙서문학 창시자인 유사풀의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2015년에 제정했으며 노벨상보다 더 많은 상금을 내걸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데에서 설핏 웃음이 나올 만큼 낙서문학은 그야말로 말짱 허구임이 밝혀진다. 다만, 우리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기 위한 좋은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 문학과 사회에 대한 한없는 빈정거림과 이죽거림을 낙서문학을 내세워 조롱하고 있는 바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고도로 발달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은 어떠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사실 문학은 타락한 이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비껴서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자신들이 이러면 패배하고 상처입을 줄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작가가 아닌가.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 작품에서의 인물들. 그들을 통해 우리네 삶을 반성하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길.

다만, 이랬음 좋겠다. 적어도 문학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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