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에 문외한 나임에도 마냥 좋은 화가가 있고, 작품이 있다. 그리 많은 작가와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미술가의 작품을 보고 나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느낌을 갖는 것은 실로 매력적이다. 내 식대로 가치판단하기 바쁜 나지만, 내가 잘 모르고 있는 미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은 내가 작품을 느끼는 정도에 기여를 하므로 미술 서적을 가끔 읽는 편이다. 미술 서적이라고 말하고 나니, 뭐 대단한 책인 것 같지만, 내게 있어서 미술 서적이란 미술에 관해 담고 있는 그런 내가 이해하기 쉬운 책일 뿐이다.

<팜므 파탈>은 팜므 파탈을 주제로 쓰인 책이다. 팜므 파탈이란 여성상을 주제로 잡고, 그에 해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그녀들과 관련 있는 매혹적인 그림들과 함께 싣고 있다. 팜므 파탈은 '세기말 탐미주의와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요부형 여성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 그때의 사람들은 그녀들을 '사랑에 빠진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숙명의 여인'으로 일컬었다고 한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들은 자신들의 매력을 이용해서 남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되기를 강요당한 게 아닐까, 한다. 남성들의 선택은 팜므 파탈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름다운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매력을 한껏 이용해서 기존의 체제가 만들어 놓은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려한다. 그녀들에게 있어 타고난 아름다움은 자기가 이루려는데 적극 활용 가능한 장점이자, 자신을 유지시켜나가고 지키기 위한 무기로 돌변할 수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남성을 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사악하고 음탕한 요부일 따름이라고 정의내리기엔 매우 불합해 보이는 것이다. 일상성의 평온함과 안락한 질서 유지를 바라는 기존의 체계는, 남성성의 폭력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부인하고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아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그렇지 않았거나, 혹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근대성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 성격을 지닌 여성들이 아니었는가 한다.

쪽마다 테두리를 만든 것이 내게는 매우 조잡해 보였다. 사소한 거에 트집을 잡는 것 일 테지만. 여하튼 저자가 그림에 대해 뭐라 뭐라, 작가에 대해 뭐라 뭐라 말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몰랐던 분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감은 매번 흐뭇하다. 다만, 팜므 파탈이란 말이나 그 의미를 기계적이게 반복한다는 느낌도 들어 글을 읽어나가는 데 약간의 지겨움은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인들의 그림을 살펴보는 일은 즐거움을 한가득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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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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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석제의 소설은 하나같이 해학과 풍자의 건강한 유쾌함과 그 무엇이 진탕 버무려져있다. 범인들의 속되고 저속한 몸짓과 말로 웃음을 유발하되 건강하다. 단박에 웃게 만들지만, 건강한 웃음으로 하여금 돌이키고 생각해봤을 때, 종종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직 그의 작품을 꼼꼼히 다 읽어보지 못했기에 성급하게 말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 <순정>을 통해 그의 문학의 특징이라 말할만한 것이 발견된다. 마치 판소리문학의 그 대중성을 엿보는 듯하다. 읽기 위해 보급되기 보다, 창자가 청자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었기에 쓰인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물이나 온갖 대상을) 과장하고 열거하고 상투적으로 표현하고 그려주고 보여준다. 한 사람의 창가가 다수의 청자를 대상으로 들려주었기에 피치 못한 거다. 앞서 말한 방법들이 청자가 오로지 들으면서 인식해야했기에,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한들 과장하고 열거해 의미를 파악하게 하지 않으면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다. 들으면서 부족한 부분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한껏 보태어야만 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이야기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목소리를 반영한다. 그래서 단성적이 아니라 다성적이다. 여러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민중들의 목소리가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때 그의 이야기는 빛을 본다. 삶의 본질에서 한 치도 비껴서본 적인 없는 그 민중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한한 힘을 얻게 된다.

그의 소설은 전복과 모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순정>에서는 범속한 무리들은 결코 가지지 못한 기이한 출생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치도'란 인물을 정면에 내세운다. 고대소설에서의 전형적인 영웅구조 이야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성석제는 이것마저 한껏 비튼다.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출생 부분이다. 이치도의 어미가 이치도의 태몽을 말하는 내용에서 범속함을 뛰어넘으면서 그 범속함의 터울에 갇히는 인간을 만난다. 이치도가 천부적으로 가진 재능이 남들을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해를 끼치는 훔치는 일로 설정한 부분도 주목해야할 바가 아닌가 싶다. 그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타고난 인물 생김새와, 이야기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남들이 그 이야기에 솔깃하게 해서 듣게 하는 무구한 힘에 끈기까지를 갖추고 있고,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민첩함을 자랑할 수 있는 능력도 그가 타고난 재능이다. 이같은 재능은 작품의 한 주인공이, 그것도 영웅의 일대기를 답습하고 있어 무진 거창할 듯하지만, 그 실상은 세상에 뒤쳐진 사람들의, 중심부에 서지 못한 주변부의 인물들 대변하기도 하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힐 터. 이치도를 비롯한 단순하지 않는 특이한 성격의 인물들이 제 한 몸 불살라 독자를 웃기게 하는 것처럼 보임은 작가의 능청스러움 덕이다. 그네들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연민과 인간애에 기인하는 게 아닌가한다. 그런데 <순정> 이 작품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물들의 그야말로 씨알도 안 먹힐 어색하고 작위적인 행위 그 자체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여성의 수난사가 읽는 내내 불편했다는 정도이다.

여담인데,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 성석제에게 강연회를 부탁하면 으레 성석제는 조심스럽게 말한다고 한다. '그래도 돼요? 저, 하나도 안 재밌는데요. 저 정말 하나도 재미없는데 그래도 되나요?'하고. 그러고보면 내가 생각하는 성석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싶다. 여러 사람들과 모인 각종 모임에서(특히 술자리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그런 걸쭉한 입담으로 많은 사람들을 웃어 제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너무도 당연히 가졌던 것 같다. 여하튼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다소 싱겁지만, 그래도 투정처럼 묻고 싶다. '그래도 돼요? 이렇게 웃겨도 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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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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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으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옆에 있던 애먼 사람을 때려가며 유별나게 웃어 제치기도 했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며, 작가가 말하는 게 하도 장황하고 어수선해서 다소 거치적거치적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쉬지 않고 단번에 읽어내려 가게 하는 힘은 바로 재미에 있더라.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시종일관 경쾌함이 있었다. 작중인물 '그'나 서술자는 세상을 빈정거리기도 하고 배배 꽈서 은근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짐작과는 너무도 다르게 굴러가는 우리네 인생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소설이다. (소설이기에 바로 세상이나 인생을 담고 있으리라. 당연히.)

소설 속의 그, 그는 소설을 쓰지 못하기에 시방 위기의 남자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기에 걱정 또한 없었던, 흘러가는 시간에 자신을 방관하고 있으면 무사하고 태평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안일의 시간들도 제몫이 될 수 없었다. 그와 동명이인이었던 L의 소설을 감격 받으며 읽은 기억을 들추어내며 갈팡질팡하다가 아내가 소설을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행여 자신의 본색이 소설에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소설 쓰기를 다짐하는 그. 아내의 말대로 '목숨 걸고' 써보려고 해도 통 잡히지 않고, 소설과 허구와의 문제로 고민하고, 기억대로 글을 써보고자한다. 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던 소설 쓰기는 지지부진하다. 그러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일들. 아니 사건들보다는 소설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그의 내면풍경은 자못 인상적이다. 어쩌면 글을 쓰고싶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고민해봤음직한 아니면,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작품 속에 나오는 L처럼 '소설가가 아닌 나는 없다는 걸 깨닫'는 다면, 그러니까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존재가 바스러질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는 글이 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상황이 온다는 건 장담할 수 없으니, 혹시 그런 상황이 오면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이고만 있을 수 으니 그냥 글이 쓰고 싶을 때는 써보는 거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련다. 뭔가 끄적여보고 싶은데,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말하며 되지도 않을 피해의식에 싸여있을 이유는 하등 없을 테니. 뭔가 끄적여보고 싶다는 건, 적어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거니까 되려 그것을 감사하려고 한다. 쓰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접으면 되는 거고. 언젠가 Y에게 동시대의 그럴 듯한 작가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면 어쭙잖은 소설 쓰기를 멎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렇다. 그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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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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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겨울, 이다. 참 춥다. 온종일 바깥에서 옹송그리며 쏘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니, 익숙하고 편안한 온기가 날 맞아줬다. 내가 유독 겨울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 소소한 일에도 만족을 느끼고 감사함을 배울 수 있게 해주어서이다. 추운 곳에 있다가 뜨듯한 곳에 들어오면 '와! 좋다!'하는 말이 곧장 튀어나오듯이. 따듯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사방이 막혀있는, 바람막이가 되어있는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지는 그런 계절이 겨울이니까.

「자기 앞의 생」을 읽는 내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혼자 떨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몸이 저릿저릿했다. 너무 마음이 불편했다. 항상 이유도 없이 겁을 먹는 모모다. 그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곳을 망칠까봐서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런 모모가 참다 참다 못해 울컥하고 울어버릴 것만 조마조마하고 안타까워서---. 열넷 웃자란 모모는 마치 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말투로 인생이란 이런 거야, 하고 위악을 떨어대며 말한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법적으로 어른이 되면 나는 아마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라고. 그렇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그 어떤 일에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다. 어리게 느껴지는 것이 겁이 날 만치 어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가 바란 것은 오직 관심어린 말을 해주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결핍되어 있는 것이 사랑과 관심이기에 그렇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의 공통점은 '우리 둘 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 말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환부로 남는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성장을 가로막을 만치 너무나 치열했던 그런 상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처절하게 아프게 겪었던 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지고 그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상처. 로자 아줌마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바로 인류의 치욕이라 할만한 아우슈비츠 사건이다. 그런 상처를 가진 그녀에게 모모는 참으로 서로에게 있어서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이다.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모모에게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아프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사랑'을 생각해본다. 너무 쉽게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혹은 그녀를 내 멋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일까, 하고.

모모가 제 삶을 통해 치열하게 보여준 사랑의 흔적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모모는 불편한 마음과, 따스한 감동을 뭉텅이로 안겨준다. 마지막 부분에서 로자 아줌마를 가슴에 묻고, 나딘 아줌마와 라몽 아저씨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받을 그가 '사랑해야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기 앞의 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우리들, 우리 역시 사랑해야한다. 이렇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진리를 익숙하지 않게 풀어간 작가가 대단해뵌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말, '모모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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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위에서 떨다 창비시선 22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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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직선 위에서 떨다』를 들고 있었다. 막 읽으려던 차에, 옆에 있던 선배가 무슨 책인지 달라고 한다. 그리고 미처 두 장을 다 못 읽고 내게 넘겨준다. 왜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이 대뜸 「나팔꽃」에서 '사랑이란 가시나무 한그루를 알몸으로 품는 일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린 침묵 아니겠느냐'란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단다. 마치 인생을 다 통달한 듯이 단정적으로 말하는 시인은 신뢰가 안 간단다. 시인이 제 인생을 그렇게 살았는지는 모를 일이며, 혹 그렇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성급한 결론은 독자로 하여금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거 아니겠냐고 말한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몇 자 읽지도 않고 평가하는 거, 그것부터가 성급한 결론이 아니겠느냐고. 그리고 선배에게 받아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것은. 벼랑에 오직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 놓여 있다. 삶의 숙명에 대한 비애가 느껴진다. 왜 하필 누군가는 벼랑 앞에 섰어야하며, 어찌하여 이 쪽 벼랑과 저 쪽 벼랑 아닌 곳을 이어주는 게 달랑 외나무다리 하나란 말인가. 대범한 체 하는 인간이라도 벌벌 떨면서 건널 수밖에 없는 길이 벼랑에 놓여있는 외나무다리이다.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지 않겠느냐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다주는 그 단호한 직선마저도 실은 떨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숙명을 가진 존재는, 어찌할 수 없이 그 살풍경을 배경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너야만 하는 사람들도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들을 엎드려 받아주는 외나무다리 둘 다를 말한다.

시인이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는 일은 예삿일이면서도 특별한 일이다. 쓸쓸이 혼자 남겨진 채로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것에 닿아서야' 정말 그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을 인식한다. 변변치 않고 허술해 보이는 세상살이에 느끼는 서글픔은 남들이 위로조차 해줄 수 없을 정도다. 동시에 적의와 자신에게 향하는 무기로 보이던 고드름이 뾰족한 끝에서부터 녹는 것을 보고서 이제 누군가를 용서하고 이제야 누군가를 용서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이런 일들에 전혀 익숙해지거나 편해지지 못하고 매번 다른 같은 무게의 통증을 느낀다. 세상 자체가 극단을 오락가락하게 만들기 때문일 터. 단순화된 세상은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는 오히려 '엄살하고 발광하고 총질하고 땐스하는 이 엽기'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에 염증을 느낀다. '스스로를 팔기위해 악착같이 이 거리에 매달린' 셈이며 이런 삶은 쓰레기를 닮아갈 뿐이다. 그래서 그는 지나간 일들을 말한다. 순전히 아름다워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지나간 일들을 말한다. 또한 인간 우위에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한 사물에 대해 노래를 하기도 하는---.

시집의 맨 끝장을 덮고서 답답해져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시인이 시를 '아무리 먹어도 배 안 불러지는 순 다원성 순 다양성의 진수성찬'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한다. 푸푸 입김을 내뿜어 뿌옇게 만든다. '시를 모르겠다.'고 쓴다. 정말 시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게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모르겠으니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뭘 알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그냥 덮어두고 말 수가 없어서다. 그동안도 마찬가지였고 또 한참이나 시 주변에서 계속 기웃대고 있을 나다. 아마 다른 것도 마찬가지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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