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옆에 있던 애먼 사람을 때려가며 유별나게 웃어 제치기도 했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며, 작가가 말하는 게 하도 장황하고 어수선해서 다소 거치적거치적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쉬지 않고 단번에 읽어내려 가게 하는 힘은 바로 재미에 있더라.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시종일관 경쾌함이 있었다. 작중인물 '그'나 서술자는 세상을 빈정거리기도 하고 배배 꽈서 은근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짐작과는 너무도 다르게 굴러가는 우리네 인생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소설이다. (소설이기에 바로 세상이나 인생을 담고 있으리라. 당연히.)

소설 속의 그, 그는 소설을 쓰지 못하기에 시방 위기의 남자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기에 걱정 또한 없었던, 흘러가는 시간에 자신을 방관하고 있으면 무사하고 태평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안일의 시간들도 제몫이 될 수 없었다. 그와 동명이인이었던 L의 소설을 감격 받으며 읽은 기억을 들추어내며 갈팡질팡하다가 아내가 소설을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행여 자신의 본색이 소설에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소설 쓰기를 다짐하는 그. 아내의 말대로 '목숨 걸고' 써보려고 해도 통 잡히지 않고, 소설과 허구와의 문제로 고민하고, 기억대로 글을 써보고자한다. 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던 소설 쓰기는 지지부진하다. 그러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일들. 아니 사건들보다는 소설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그의 내면풍경은 자못 인상적이다. 어쩌면 글을 쓰고싶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고민해봤음직한 아니면,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작품 속에 나오는 L처럼 '소설가가 아닌 나는 없다는 걸 깨닫'는 다면, 그러니까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존재가 바스러질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는 글이 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상황이 온다는 건 장담할 수 없으니, 혹시 그런 상황이 오면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이고만 있을 수 으니 그냥 글이 쓰고 싶을 때는 써보는 거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련다. 뭔가 끄적여보고 싶은데,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말하며 되지도 않을 피해의식에 싸여있을 이유는 하등 없을 테니. 뭔가 끄적여보고 싶다는 건, 적어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거니까 되려 그것을 감사하려고 한다. 쓰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접으면 되는 거고. 언젠가 Y에게 동시대의 그럴 듯한 작가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면 어쭙잖은 소설 쓰기를 멎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렇다. 그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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