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겨울, 이다. 참 춥다. 온종일 바깥에서 옹송그리며 쏘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니, 익숙하고 편안한 온기가 날 맞아줬다. 내가 유독 겨울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 소소한 일에도 만족을 느끼고 감사함을 배울 수 있게 해주어서이다. 추운 곳에 있다가 뜨듯한 곳에 들어오면 '와! 좋다!'하는 말이 곧장 튀어나오듯이. 따듯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사방이 막혀있는, 바람막이가 되어있는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지는 그런 계절이 겨울이니까.

「자기 앞의 생」을 읽는 내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혼자 떨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몸이 저릿저릿했다. 너무 마음이 불편했다. 항상 이유도 없이 겁을 먹는 모모다. 그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곳을 망칠까봐서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런 모모가 참다 참다 못해 울컥하고 울어버릴 것만 조마조마하고 안타까워서---. 열넷 웃자란 모모는 마치 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말투로 인생이란 이런 거야, 하고 위악을 떨어대며 말한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법적으로 어른이 되면 나는 아마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라고. 그렇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그 어떤 일에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다. 어리게 느껴지는 것이 겁이 날 만치 어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가 바란 것은 오직 관심어린 말을 해주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결핍되어 있는 것이 사랑과 관심이기에 그렇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의 공통점은 '우리 둘 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 말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환부로 남는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성장을 가로막을 만치 너무나 치열했던 그런 상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처절하게 아프게 겪었던 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지고 그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상처. 로자 아줌마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바로 인류의 치욕이라 할만한 아우슈비츠 사건이다. 그런 상처를 가진 그녀에게 모모는 참으로 서로에게 있어서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이다.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모모에게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아프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사랑'을 생각해본다. 너무 쉽게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혹은 그녀를 내 멋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일까, 하고.

모모가 제 삶을 통해 치열하게 보여준 사랑의 흔적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모모는 불편한 마음과, 따스한 감동을 뭉텅이로 안겨준다. 마지막 부분에서 로자 아줌마를 가슴에 묻고, 나딘 아줌마와 라몽 아저씨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받을 그가 '사랑해야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기 앞의 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우리들, 우리 역시 사랑해야한다. 이렇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진리를 익숙하지 않게 풀어간 작가가 대단해뵌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말, '모모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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