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성석제의 소설은 하나같이 해학과 풍자의 건강한 유쾌함과 그 무엇이 진탕 버무려져있다. 범인들의 속되고 저속한 몸짓과 말로 웃음을 유발하되 건강하다. 단박에 웃게 만들지만, 건강한 웃음으로 하여금 돌이키고 생각해봤을 때, 종종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직 그의 작품을 꼼꼼히 다 읽어보지 못했기에 성급하게 말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 <순정>을 통해 그의 문학의 특징이라 말할만한 것이 발견된다. 마치 판소리문학의 그 대중성을 엿보는 듯하다. 읽기 위해 보급되기 보다, 창자가 청자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었기에 쓰인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물이나 온갖 대상을) 과장하고 열거하고 상투적으로 표현하고 그려주고 보여준다. 한 사람의 창가가 다수의 청자를 대상으로 들려주었기에 피치 못한 거다. 앞서 말한 방법들이 청자가 오로지 들으면서 인식해야했기에,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한들 과장하고 열거해 의미를 파악하게 하지 않으면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다. 들으면서 부족한 부분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한껏 보태어야만 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이야기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목소리를 반영한다. 그래서 단성적이 아니라 다성적이다. 여러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민중들의 목소리가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때 그의 이야기는 빛을 본다. 삶의 본질에서 한 치도 비껴서본 적인 없는 그 민중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한한 힘을 얻게 된다.

그의 소설은 전복과 모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순정>에서는 범속한 무리들은 결코 가지지 못한 기이한 출생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치도'란 인물을 정면에 내세운다. 고대소설에서의 전형적인 영웅구조 이야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성석제는 이것마저 한껏 비튼다.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출생 부분이다. 이치도의 어미가 이치도의 태몽을 말하는 내용에서 범속함을 뛰어넘으면서 그 범속함의 터울에 갇히는 인간을 만난다. 이치도가 천부적으로 가진 재능이 남들을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해를 끼치는 훔치는 일로 설정한 부분도 주목해야할 바가 아닌가 싶다. 그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타고난 인물 생김새와, 이야기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남들이 그 이야기에 솔깃하게 해서 듣게 하는 무구한 힘에 끈기까지를 갖추고 있고,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민첩함을 자랑할 수 있는 능력도 그가 타고난 재능이다. 이같은 재능은 작품의 한 주인공이, 그것도 영웅의 일대기를 답습하고 있어 무진 거창할 듯하지만, 그 실상은 세상에 뒤쳐진 사람들의, 중심부에 서지 못한 주변부의 인물들 대변하기도 하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힐 터. 이치도를 비롯한 단순하지 않는 특이한 성격의 인물들이 제 한 몸 불살라 독자를 웃기게 하는 것처럼 보임은 작가의 능청스러움 덕이다. 그네들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연민과 인간애에 기인하는 게 아닌가한다. 그런데 <순정> 이 작품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물들의 그야말로 씨알도 안 먹힐 어색하고 작위적인 행위 그 자체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여성의 수난사가 읽는 내내 불편했다는 정도이다.

여담인데,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 성석제에게 강연회를 부탁하면 으레 성석제는 조심스럽게 말한다고 한다. '그래도 돼요? 저, 하나도 안 재밌는데요. 저 정말 하나도 재미없는데 그래도 되나요?'하고. 그러고보면 내가 생각하는 성석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싶다. 여러 사람들과 모인 각종 모임에서(특히 술자리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그런 걸쭉한 입담으로 많은 사람들을 웃어 제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너무도 당연히 가졌던 것 같다. 여하튼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다소 싱겁지만, 그래도 투정처럼 묻고 싶다. '그래도 돼요? 이렇게 웃겨도 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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