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한 편씩 발표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묶어놓고 읽어보니, 차갑다. 나 자신의 작품인데도, 이제는 모르는 사람 보듯 매정한 인상을 풍기는 연인을 마주한 듯한 느낌이다. 혹은 별거하고 있는 부부와 함께 합석하여 얘기 나누는 것 같다 할까. 아니면 저물녘 공원 그늘로 들어가 만져보는 구석진 자리의 서늘한 철봉 촉감 같은---.

   아무튼 나에게는 그러한 느낌이다. 스스로에게 다소 연민이 느껴진다. 이 삭막하고 살벌하고 기만적인 세상에서 손해보지 않고 살아가려 아등바등, 체온을 내가 이렇게까지 낮추고 살아 왔구나, 싶다. 인간은 항온동물이지만, 어쩌면 우리 정서는 이렇듯 세상을 견디기 위해 세상 인정과 분위기에 따라 스스로 조절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 냉혹한 세상을, 이 세상의 기만성을, 비웃고 싶었고 내 딴에는 날카롭게 노려보고 싶었던 것인데, 그 결과물이 이번 작품집인 셈이다.

   그러니까 평소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분들, 인간이란 도대체 믿을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세상이 기만적이다 라고 비난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견해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분들이 읽으면 그래 맞아, 무릎 치며 공감하는 재미를 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곳이다. 그래도 인간은 꽃보다 아름답다. 그래도 세상에는 희망이 있다 라고 믿는 분들은 이 책을 열어보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런 희망적인 바람들을 비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 비아냥도 견디지 못하는 희망이라면 그따위 희망이야말로 위선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자신의 정서적 체온이 과연 작가의 냉소를 이겨낼까 그렇지 못할까 시험 삼아 읽어보는 기회로 삼으 수 있겠다.

   사실 나도 좀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더구나 여기 실린 적잖은 글이 연애 이야기 아닌가. 착한 독자들이 눈물 흘리며 가슴 훈훈해하는 그런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러한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고 내게 경고한다.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아쉬움이 있다면 오히려 좀더 서늘했어야, 좀도 냉정했어여, 좀더 잔혹했어야 했는데, 하는 것이다. 굳이 그 일례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세상은 이 소설집보다 한결 살벌하고 기만적이며 잔인하지 않은가. 그것을 , 나는 언제나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오늘날의 소설이 세상의 참상을 미처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이 점을 생각하면 늘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몹시 조급해진다.

   그래도 내 단엔 등단 이후의 발표 작품들 중에 엄선하여 추려 엮었다. 수록하지 못한 작품들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아쉽지만 앞으로 쓸 작품에 스스로 기대해본다. 대략 역순으로 묶었다. 내 관심사와 스타일의 변이를 차분히 감상해보고 싶은 이는 역순으로 읽기를 권한다. 다음 작품집은 또 언제일지 모르나 청탁에 응하다보니 어느새 작품을 엮을 때가 되어 엮는 식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스스로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

  

   이번에도 민음사에 큰 신세를 지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여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이만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작가들에겐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는 건 그저 습관이다. 작가 초청 강연회에를 가면 마땅히 그들을 뭐라 부를지 모르겠더라. 그중에서 가장 근사한 호칭은 선생님이란 말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나보다 먼저 문학을 한(?) 그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여하튼 이만교 선생님을 보고 너무 반가웠다. 같이 선생님을 본 한 친구는 쑥스럽다고 말을 전하지 못했다. 나 혼자 다른 동료들과 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붙여봤다. 작품 잘 읽고 있다고. 반갑다고 말이다. 술자리에서 만난지라 괜히 선생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봐 열없는 인사말만 하고 말았다. 친구와 자리에 앉고 그리고 계속 그쪽을 힐끔거리면서 실제로 보니 인물이 훤하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나 집에 가서 책을 가져올 거라고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 책을 가져와서 싸인을 받을 거라고 오도방정을 떨었다. 친구는 말렸고 나는 기다리라고 말하고 급하게 바깥에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너무 유난스럽다는 생각에. 그래서 말았다. 작가들을 만나면 말 한 마디 붙여보고 싶다. 그리고 반갑다. 그들의 작품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반갑다. 사실 이만교는 농담을 좀 하는 작가다. 특히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가 은근히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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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남자인 아들과 착한 며느리, 손녀들이 오면 마냥 웃는다. 딸내미는 또 얼마나 고운가. 적적해지면 편하게 앉아 눈을 감는다. 온갖 상념들이 들끓지만 문득 정적이 찾아올 때도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가을날의 잠자리처럼 투명해지지 않을까. 늙어가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다.

 

   처녀시절부터 남몰래 짝사랑하던 『창작과 비평』에 글을 싣고 또 작품집까지 엮어내니 여한이 없다. 수고하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삶의 엄중함 못지않게 작업의 준엄함을 말없이 깨우쳐주신 백낙청 선생님과 황석영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어머니와 성백회 아우들에게 뜨거운 손을 내민다. 

2003년 5월

홍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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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0년 전 컴퓨터를 샀다. 이유는 단 하나. 일기를 맘놓고 쓰고 싶어서였다. 일기란 쓰는 것보다 간수하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자신에 취해 정신 없이 쓰고 나면 백이면 백 이걸 누가 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내 일기란 말이 일기지 이건 푸념에다 하소연에다 일관성 없는 감정의 분출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일기 노트를 어디다 감출까 늘 고심했다. 장롱 서랍도 보고 전축 뒤 먼지가 소복한 곳도 보았다. 겨우 노트 한 권인데 감출 것이 어쩌면 그리도 없는지---.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지면 근심이 더 했다. 궁여지책 끝에 노트 가장자리를 포장용 누런 테이프로 붙였다. 그리곤 또 어디다 숨길까 전전긍긍했다. 한 마디로 일기 노트는 풀지 못하는 숙제만큼이나 버거운 물건이었다. 생각 끝에 태워 없애려 성냥을 찾아 그었다.

   컴퓨터를 사서 제일 먼저 한 게 일기였다. 비밀번호를 붙여가며 디스켓에 넣었다. 나중엔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열어보지 못했다. 내 일기는 불에 타서 죽고 비밀번호에 갇혀 죽고 이래저래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 내게 일기란 없다. 뭐든 끄적거려야 숨통 트였던 일들이 이제 소설이라는 옷을 입고 외출했다. 처음으로 나온 밖은 어떤가? 안에서 움츠리기만 했던 함성이 터져 나오긴 했는데 아, 내 함성이 너무도 작았다. 소설이라는 거대한 고원을 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보잘것없었다. 소설은 광야도 고원도 아닌 무한의 지대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을 허용하지 않고 완벽이나 완성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곳엔 천둥 번개가 치고 꽃이 피고 비가 오고 있었다. 지시할 수 없고 주관할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예측을 불허하며 살아있었다. 나는 감히, 개미보다 더 작은 한 마리로 이 무한의 세계를 더듬는다.

 

   행복했다. 고통이 극점에 달했을 때 느꼈던 이 행복을 나는 결코 잊지 않는다. 너무 늦게 시작한 건 아닌가, 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있는 건가. 수없이 의심하고 좌절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솔직히 행복했다. 그들을 만들고 그들과 속삭이면서 나는 나를 만났다. 그들은 막막해진 나를, 때론 쩔쩔매며 안달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나와 그들은 어느새 같이 있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와 소설과의 만혼을 주선해주신 분들이 있다. 전상국 선생님은 내가 잠시 춘천에 살 때 소설의 문을 열어주셨다. "소설을 쓰려면 독해져야 합니다. 정주 씨한텐 반드시 독자가 생길 겁니다" 이 말씀은 내게 격려와 빚이 되었다. 전상국 선생님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또 한 분, 수유연구실+ 연구공간 '너머'에 몸담고 계신 정선태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은 내게 텍스트 바깥을 보여주셨다.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그린비, 2001, 증보판 서문 재인용)고 했지만 나는 텍스트 바깥을 보면서 비로소 눈을 떴다. 정선태 선생님은 텍스트를 소재가 아닌 사유로 보게 해주셨다. 이 두 분이 아니었던들 나는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한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해도 책장 속에만 들어있어선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흠이 맣은 글을 책으로 엮어 주신 소명출판 사장님과 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외에도 감사드릴 분이 너무 많다. 나를 묵묵히 받아준 남편, 아이디어와 정보를 제공해준 아들, 나보다 더 안타갑게 나를 지켜봐 준 친구들, 다 눈물나게 고마운 사람들이다. 감사를 전하고 싶은 분들이 많지만 지면을 다 빌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 이 모슨 길을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나는 이 책을 선물하련다.

 

2002년 10월

김 정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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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바다, 내 고향 바다는 듣기 위함이 아닌 침묵하기 위한 귀를 내게 보여주었다. 접신(接神)한 귀, 침묵으로 아름다워진 말들이 대양을 건너는 새떼들을 기르고 있었다. 바다의 귀 때문에 내내 부끄러웠다. 

   시끄럽다. 내 뼈가 살을 향해 내 살이 뼈를 향해 이토록 부대끼는 시끄러운 싸움은 언제쯤 끝나려는지. 어쩌겠는가 때로 나는 이 싸움이 즐겁기도 한가보다. 잘 발라져 가붓하게 스스로 떠오를 때까지, 어쩌면 최후까지 들끓어야 하리라. 누대에 걸쳐 이미 죽은 것들이 뒤척이는 날 것의 몸을 끌고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세속을 꿈꾸는 것이다.

   서른이다. 공중에서 얼어붙곤 하던 꽃들이 부빙을 이루며 흘러갔다. 나의 혁명이 몽환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나의 몽환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생각건대 내가 진실로 사랑한 것은 모든 생명이 품고 있는 독기였으니. 부디 이 시들이 세상의 소란에 독이 되기를. 

 

   부족한 첫시집에 기쁨이 있다면 고향 바다와 어머니 아버지께 바쳐야 하리라.

2000년 1월

김선우

  

   '침묵하기 위한 귀'는 커녕 '듣기 위한 귀'마저 갖질 못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기 보단 내 말만을 내세우기 바빴다. 나와 내 편과 남과 내 편 아닌 것들로 나누는 데 앞섰다. 옹졸했으며 독선적이었고 이기적이었으며, 때로는 자기기만적이기도 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인지 흠결하나 없는 도덕적으로 드높은 사람인 체 했다.  

   이런 나를 온 마음 다해서 껴안을 수 없을 때. 더이상 가식적인 나를 견딜 수 없을 때. 마음놓고 실컷 소리내어 울 수도 없었을 때.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정해놓은 나에게서, 그 선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음을. 자기 검열이 폭력과도 같음을. 실은 엄청난 가혹함이었음을. 

   더구나 내 약점을 가리기위해 둘러쓴 휘장이 실은 세상을 향해 내 눈을 막는 꼴이 되어 버렸음을.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기보다는 선험적인 내 인식을 믿어버렸기에 그랬다. 세상을 헛보는 일이 많기만 했다. 오로지 내 기준, 내 잣대, 내 판단들로.

   이들로 내 속이 이미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남이 상처를 주기보다는 나 스스로 쉴새없이 할퀴고 후벼파서 만든 상처. 곧 꾸미고 허세부린 겉과 내색하지 못한 속과의 괴리. 그 틈에서 상처가 솟구쳤던 셈. 여기서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이즈음 눈에 띄게 말이 줄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내가 흐뭇하다. 낯설기도 하다. 혹은 편안하다. 아마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럴 거다. 단숨에 내가 꿈구는 다른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서서히, 차차 나아질 테지.

   이렇게 마음을 바꾸어본다. 내가 애쓴 만큼, 딱 그만큼 얻어 가길. 더이상 허황된 욕심을 부리지 않길. 그렇다고 희망을 놓아버리진 않길. 나에 대한 주문사항이 어려울 수록 힘이 난다.    

   (아마, 나는 김선우와 그녀의 시에 대한 인상을 말하고 싶었을 테다. 그의 말, 몇 구절을  따오면서 애먼 얘기만 해댔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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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실수를---. 말이나 글로 실수가 많다. 오늘은 평소에는 어려워서 말도 잘 못 건냈으면서 새해인사를 한답시고 카드로 너무 건방을 떨었다. 그간 그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함서 아는체를 했고, 그리고 또 한 번 주책스럽게 어리광을 피웠다. 내 나이, 이제 21살. 어른 나이답게 철 들때가 됐는데---. 여하튼, 오늘 그 사람한테 안 그래야했는데, 쩝, 그래, 첫날이라 나 스스로를 너그럽게 봐 주련다. 다음에는 안 그래야지. (별로 미덥진 않지만, 그래서 또 그럴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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