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10년 전 컴퓨터를 샀다. 이유는 단 하나. 일기를 맘놓고 쓰고 싶어서였다. 일기란 쓰는 것보다 간수하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자신에 취해 정신 없이 쓰고 나면 백이면 백 이걸 누가 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내 일기란 말이 일기지 이건 푸념에다 하소연에다 일관성 없는 감정의 분출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일기 노트를 어디다 감출까 늘 고심했다. 장롱 서랍도 보고 전축 뒤 먼지가 소복한 곳도 보았다. 겨우 노트 한 권인데 감출 것이 어쩌면 그리도 없는지---.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지면 근심이 더 했다. 궁여지책 끝에 노트 가장자리를 포장용 누런 테이프로 붙였다. 그리곤 또 어디다 숨길까 전전긍긍했다. 한 마디로 일기 노트는 풀지 못하는 숙제만큼이나 버거운 물건이었다. 생각 끝에 태워 없애려 성냥을 찾아 그었다.

   컴퓨터를 사서 제일 먼저 한 게 일기였다. 비밀번호를 붙여가며 디스켓에 넣었다. 나중엔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열어보지 못했다. 내 일기는 불에 타서 죽고 비밀번호에 갇혀 죽고 이래저래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 내게 일기란 없다. 뭐든 끄적거려야 숨통 트였던 일들이 이제 소설이라는 옷을 입고 외출했다. 처음으로 나온 밖은 어떤가? 안에서 움츠리기만 했던 함성이 터져 나오긴 했는데 아, 내 함성이 너무도 작았다. 소설이라는 거대한 고원을 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보잘것없었다. 소설은 광야도 고원도 아닌 무한의 지대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을 허용하지 않고 완벽이나 완성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곳엔 천둥 번개가 치고 꽃이 피고 비가 오고 있었다. 지시할 수 없고 주관할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예측을 불허하며 살아있었다. 나는 감히, 개미보다 더 작은 한 마리로 이 무한의 세계를 더듬는다.

 

   행복했다. 고통이 극점에 달했을 때 느꼈던 이 행복을 나는 결코 잊지 않는다. 너무 늦게 시작한 건 아닌가, 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있는 건가. 수없이 의심하고 좌절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솔직히 행복했다. 그들을 만들고 그들과 속삭이면서 나는 나를 만났다. 그들은 막막해진 나를, 때론 쩔쩔매며 안달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나와 그들은 어느새 같이 있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와 소설과의 만혼을 주선해주신 분들이 있다. 전상국 선생님은 내가 잠시 춘천에 살 때 소설의 문을 열어주셨다. "소설을 쓰려면 독해져야 합니다. 정주 씨한텐 반드시 독자가 생길 겁니다" 이 말씀은 내게 격려와 빚이 되었다. 전상국 선생님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또 한 분, 수유연구실+ 연구공간 '너머'에 몸담고 계신 정선태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은 내게 텍스트 바깥을 보여주셨다.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그린비, 2001, 증보판 서문 재인용)고 했지만 나는 텍스트 바깥을 보면서 비로소 눈을 떴다. 정선태 선생님은 텍스트를 소재가 아닌 사유로 보게 해주셨다. 이 두 분이 아니었던들 나는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한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해도 책장 속에만 들어있어선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흠이 맣은 글을 책으로 엮어 주신 소명출판 사장님과 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외에도 감사드릴 분이 너무 많다. 나를 묵묵히 받아준 남편, 아이디어와 정보를 제공해준 아들, 나보다 더 안타갑게 나를 지켜봐 준 친구들, 다 눈물나게 고마운 사람들이다. 감사를 전하고 싶은 분들이 많지만 지면을 다 빌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 이 모슨 길을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나는 이 책을 선물하련다.

 

2002년 10월

김 정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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