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퍼온글] 세계에서 젤 큰 수영장



 

 

 

 

 

 

 

 

 

 

 

 

 

 

 

 

 

 

 

 

 

 

 

 

 

 

 

 

 

 

 

 

 

 

 

 

 

 

 

 

 

 

 

 

 

 

 

 

 

 

 

 

 

 

 

 

 

 

 

 

 

 

 

 

미야자키(宮崎) - 오션돔(Ocean D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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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고흐 기념 우표

아를르의 여인, 지누부인(Arlesienne.아를르 1888년 11월)

아르망 룰렝(Portrait d'Armand Roulin) 1888년11월 작품

가을 풍경(jardin des maraichers) 1888년 작품

 

오베르 성당(L'Eglise d'Auvers) 1890년 6월 작품

별이 빛나는 밤(La Nuit etoilee) 1889년 6월 작품

피아노를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양(Mademoiselle Gachet au piano) 1890년 6월작품


젊은 부인 (La Mousmee. 1888년 7월 작품)

베트남에서 발행한 룰렝부인의 초상화 기념우표

그림도구상인 탕귀씨(Le Pere Tanguy. 파리 1887년 작품)

 

고흐의 자화상을 넣은 모나코의 반마약 캠페인우표

아들린느 라부의 초상을 담은 베트남의 반 고흐기념쉬트 (RAvoux 1890년 작품)

 

1988년 북한에서 발행한 해바라기 우표(1888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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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사랑님의 익 네임과 같이 싱그럽고 청순해 보인다

 

더위사냥
  하 현주(bebe322111@hotmail.com)

요즈음
마루바박 마져도
끈적이니 시원한곳은 어디일꼬?

청량제 
같은 서늘함을 생각하는 
추억이 떠오른다.

젊은 날은 아름다웠다.

그때도
살인 폭염은 여전한데

발목잡는 
손을 뿌리치고 봇짐만 챙겨서 
길떠나는 순례자가 된다.

만원 
버스에 짐짝처럼 시달려도
좋기만하여 내린곳은
골짜기에 있는 기도원이 였다.

왜? 
그렇게도 사모하며
단숨에 온듯 하셨을까?

가히
짐작도 못한 인파들
빽빽히 들어찬 본당 
들어갈 틈이라곤 없었다.

이 무더위에 
오직 한마음들 "오! 주여!'였다.

부득불
지붕아닌 창문을 훌쩍 넘어
떨어졌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받아주었고
자리도 얻었으니
"할렐루야!"꾸벅 인사요

그곳엔
허물이 없는 초대 교회였다.

모두가
절절하게 목청을 올린다.

폭포수 
같은 눈물이 은혜의 
바다를 이루고

하늘의 
맛나는 새 소망이요
기쁨이였다.

이러니
찜통더위는 아랑곳 없고
더위사냥은 믿음의 
정복이였고

처음
사랑으로 좇은 열정이였다.

이제도
동일하신 그 품으로
아직도 붙들어 주신다.

오직!
내게는 바다같은 사랑되어
더위를 날려보낸 영성훈련이였고

언제나
여름날의 동산으로

그래서
지금도 더위사냥을 맞이한다....

2004 /07 /25

양희순 (hsyang1029@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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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퍼온글] 베르사이유 궁전

*궁전 안, 정원


 

 

 

 

 

 

 

 

 

 

 

* 정원의 숲의 일부


 

 

 

 

 

 

 

 

 

 

 

 


 

 

 

 

 

 

 

 

 


 

 

 

 

 

 

 

 

 


 

 

 

 

 

 

 

 

*거울의 방


 

 

 

 

 

 

 

 

 

 

 

 

*응접실의 일부


 

 

 

 

 

 

 

 

 

 

 

 


 

 

 

 

 

 

 

 

 

 

 

*복도


 

 

 

 

 

 

 

 

 

 *왕궁내부


 

 

 

 

 

 

 

 

 

 

 

 

 

 

 

 

 

 

 

*침실(첫번째 사진은 실제 마리앙뜨와네뜨가 썼던 방.


 

 

 

 

 

 

 

 

 


 

 

 

 

 

 

 

 

 

 

 

 

 

 

 

 

 

 

 

 

 

 

 

 

 


 

 

 

 

 

 

 

 

 

 

출처 -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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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그림은 사랑의 또 다른 편지 - 제임스 티솟

프랑스인이지만 영국을 사랑해 19세기 말 한동안

영국에서 활동한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솟...

자크 조셉이었던 자신의 이름을 제임스로 바꿔 부른 이유도 거기에 있었죠


Le Banc de Jardin (The Garden Bench), 1882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들과 행복의 시간을 나누는 모습이 보이시죠...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티솟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A Convalescent, 1876

티솟이 영국에서 활동할 때였어요

캐슬린 뉴턴이라는 운명적인 여인이 다가온 것은 1876년의 일이었죠

그림 속 아이들의 엄마가 바로 캐슬린입니다

이 그림은 1882년 캐슬린이 죽기 직전 티솟이 그린거죠

이 그림은 티솟이 가장 아끼는 그림이었으며

40여 년 동안 늘 곁에 두고 추억으로 바라보던 그림이라고 해요

불과 6년의 짧은 시간이지만,

티솟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리움과 추억을 남긴

큰 시간이었어요


A Passing Storm, 1876

위에 그림은 캐슬린을 모델로 한 첫 그의 작품입니다

청순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그녀의 모습에서 티솟의 사랑을 느낄 수 있죠


캐슬린은 당시 언니 부부의 집인 런던에 머물고 있었어요

바로 이웃이 티솟이었던거죠

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곧 동거를 하며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갔어요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입바람을 타고 전해지자

사교계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를 피했을 뿐 아니라

왕립 아카데미의 연례 전시에서도 1881년까지

스스로 출품을 포기할 만큼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렸죠

그 이유는...

티솟이 사생아를 둘이나 낳은 젊은 바람둥이 이혼녀와

거리낌없이 연애를 하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죠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녀는 부도덕한 여인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캐슬린에게도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육군 장교로서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인도의 공중보건의로 있던 외과의사 아이작과 그녀를

억지로 결혼시키려 했었죠

당시 그녀는 17살...

사춘기의 소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홀로 배를 타고 이국으로 향하고 있었죠


The Gallery of HMS Calcutta, 1877

항해 도중 캐슬린은 필리저 선장과 달콤한 로맨스를 즐깁니다

이때 그녀는 새 생명을 잉태하게 되었어요

인도에 도착한 뒤 캐슬린은 아이작과 결혼하였고

뒤늦게나마 이 사실을 고백하죠

아이작은 상당한 충격과 함께 당장 그녀와 이별을 선언했고...

상처를 안고 돌아 온 그녀가 바로 언니부부의 집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죠

언니 부부의 집에서 생활하던 캐슬린은

4년 뒤 한 남자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티솟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하지만, 아이를 낳던 해가 티솟과 만나 해로 미루어 볼 때

사실이 아님은 밝혀집니다

이런 사랑의 상처만을 안고 있던 그녀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던 티솟...


October, 1877

티솟은 아일랜드 출신이었던 캐슬린을

티솟의 프랑스인의 패션 감각으로

그녀의 패션을 확 바꾸어 놓기도 했답니다


Waiting for the Ferry, 1878


이 둘의 사랑은 6년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캐슬린에게 폐병이 찾아와 불과 28살의 나이로 티솟의 곁을 떠났어요

티솟에게 캐슬린의 죽음은 큰 충격인 동시에 슬픔이었어요

그는 당장 집을 싸들고 본래의 고향인 파리로 떠나

다시는 런던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의 작품은 캐슬린 죽은 후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를 추억하기 위한 과정이었죠


Women of Paris: The Circus Lover, 1885


The Letter (1873 - 1883 )


Berthe, 1882


L'Ambitiuse (The Political Lady), 1883-85,


파리로 돌아 온 그는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뜻한 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어요

1885년 강신술을 통해 캐슬린의 혼백을 만나

그녀를 추억하기도 했답니다

신비주의 체험을 한 이후

티솟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The Annunciation, 1886-96


Hagar and the Angel in the Desert, 1896-1900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방을 여러 차례 여행하였고

신약 성경을 소재로도 350여 점의 수채화를 그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티솟의 캐슬린에 대한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zzica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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