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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느 기러기아빠의 자살
“여보 집에 가자, 집에 가자.”

2일 오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 정모(50·서울송파구방이동)씨의 영정 앞에서 강모(47·여·캐나다 거주)씨는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오열했다.

정씨 부부는 딸(20)과 아들(17) 교육문제로 2001년 8월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갔다가 몇 달 뒤 정씨만 다시 귀국했다. 현지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등 가족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에서 해오던 사업을 정리할 수가 없었기 때문. 지병인 고혈압 때문에 가족들은 혼자 떨어져 지내야 하는 정씨의 건강을 염려했지만 정씨는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잘 이겨냈다. 아내와 아들 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긴 했지만 자녀의 방학 때 등을 이용해 만나는 것으로 달랬다. 독일제 금속기계 제품을 수입, 국내 업체에 소개하는 사업도 불경기 영향을 다소 받긴 했지만 순조로웠다.

하지만 올해 들어 고혈압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두통이 심했고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우울증세가 심했고 결근도 잦아졌다. 정씨 남동생(42)과 직원들은 “올초부터 부쩍 ‘몸이 아프다’고 하고 우울한 기색을 보였다”고 전했다. 결국 정씨는 지난 1월 아내에게 전화해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안 아픈 데가 없다”며 “당신이 좀 들어와야겠다”고 말했다.

서둘러 귀국한 강씨는 남편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판단, 곁에서 돌보기 위해 3월쯤 정씨와 함께 캐나다로 떠나기로 했다. 담당 병원에서 300일치 혈압약도 짓는 등 주변 정리를 했다. 하지만 정씨는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은 모습을 꿈으로만 간직한 채 눈을 감았다. 3·1절 휴일을 맞아 모처럼 바람을 쐬러 처가 식구들과 가까운 산에 올랐다가 먼저 귀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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