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 중고차 수입시장] “수입중고차 20대중 1대는 도난차”

“일본·두바이서 차량 훔쳐 국내에 대량 공급”… 3억원짜리 고급차, 3000만원 선에서 밀거래
“전문 밀매매꾼 7~8명” 추정… 열쇠 하나뿐이거나 차대번호·서류 다르면 ‘훔친 차’ 가능성

허영심을 부추기는 도시의 밤.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두 줄기 헤드라이트 빛이 비쳤다. 잠시 후 늘씬한 자동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메르세데스 벤츠 CL600. ‘지상 최고의 승용차’로 불리는 초호화 쿠페다. 이 차의 신차 가격은 2억6000만원. 등록비·세금 등을 포함하면 무려 3억원을 투자해야 마련할 수 있는 최고급 자동차다. 눈앞에 나타난 벤츠는 일본서 들어온 2004년형 CL600 모델. 1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워낙 귀한 고급차이기 때문에 중고라 해도 1억7000만~2억원 사이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 2~3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자동차 모델인 벤츠 CL600

차를 들여온 수입상이 일본 수출업자에게 지불한 돈은 3000만원. 이 차가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요자에게 넘어간다면 수입상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관련경비를 모두 빼고도 1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장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벤츠 CL600이나 SL55AMG처럼 3억원을 오르내리는 최고급 모델이라 해도 중고 초기 매입가는 30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수억원짜리 고급차가 왜 이렇게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들어오는 것일까?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와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수입상들은 정말 그렇게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일까? 소비자가 입는 피해는 무엇일까? 이같은 의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도난된 최고급 자동차의 유입 과정을 우선 알아봐야 한다.

어디서 훔쳐오나

외제 도난차의 유입 루트는 크게 일본과 두바이, 두 가지다. 도난차 거래상은 아랍국가의 자동차 등록·관리가 비교적 허술하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두바이는 그 중에서도 특히 관리가 느슨하기 때문에 ‘업자’들 간에 ‘국제 도난차 시장의 메카’로 통하고 있다. 통관서류나 차대번호(VIN; Vehicle Identification Number) 등을 위변조하기 쉽기 때문이다. 차대번호란 영문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17자리 코드. 해당 자동차의 제조국가 제작사 차종 제작연도 제조공장 등을 암호처럼 기록해 놓은 일종의 기호다. 따라서 차대번호를 위조하거나 교체하면 해당 자동차는 전혀 다른 자동차로 둔갑하게 된다.

▲ 벤츠 SL55AMG

업자들은 유럽 등에서 자동차를 훔쳐 두바이로 들여오거나 두바이 현지에서 고급차를 훔쳐 제3국으로 반출한다. 도난된 고급차가 두바이 현지의 등록절차를 거쳐 ‘주인’에게 넘어가면 도난차는 자연스럽게 ‘세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점도 업자들이 노리는 포인트다. 두바이에서 한 번 세탁을 거친 자동차를 다시 훔쳐내 제3국으로 팔아넘길 경우, 차량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인 단점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운송료가 비싸진다는 점. 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운반비가 비싸진다는 것은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또 한 가지 단점은 업자의 외국어 실력이다. 이들은 대부분 학력이 높지 않다. 따라서 영어를 사용해 외국인과 거래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국내의 도난차 거래상은 주로 일본 루트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운송료가 싸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재일동포가 다수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업자들과의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외제 도난차들은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혹은 일본을 거쳐 유입된 차들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훔쳐가나

영화를 보면 키박스를 부순 뒤 전선 두 가닥을 합선시켜 시동을 걸어 자동차를 훔쳐가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다. 고급 차량에는 비싼 가격에 걸맞은 첨단 시동장치가 장착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모빌라이저(immobilizer)’ 시스템이다. 이 장치는 열쇠에 내장돼 있는 비밀코드와 자동차에 장착된 암호 코드가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코드가 일치하지 않으면 엔진 ECU(컴퓨터 제어장치)가 연료공급을 차단해 운전이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경보음이 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벤츠 코리아의 조현준 엔지니어는 “이모빌라이저가 장착된 차량은 열쇠수리점에서 키를 복사해 꽂아도 작동하지 않는다”며 “전류를 연결시켜 시동을 건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라고 말했다.

▲ 번호판 지지대에 붙어있는 스티커형 바코드와 차대번호. 벤츠 코리아측은 "공식달러를 통해 본사에서 한국으로 직수입되는 차량의 경우엔 이곳에 차대번호가 붙어 있지 않다"며 "금속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대번호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억원에 달하는 고급 차량은 함부로 끌고 갈 수도 없다. 앞·뒤 어느 쪽이든 일정 각도 이상으로 바퀴가 들어올려지면 경보음이 울리기 때문이다. 이 경보음은 열쇠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 소리를 끌 때까지, 자동차 배터리가 남아있는 한 며칠이고 계속 울려댄다. 그렇다고 차를 통째로 들어낼 수도 없다. 트레일러 등에 싣고 달아나는 경우에 대비, 4바퀴가 모두 땅에서 떨어져 수직으로 이동할 경우에도 경보음이 울리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차 유리를 깨거나 강제로 문을 부숴도 마찬가지다.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를훔쳐갔다 하더라도 열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차량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주행은 물론, 통관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키를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곳은 자동차를 제작한 해외 본사 한 곳뿐이다.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열쇠를 분실했을 경우엔 외국 본사로 연락해 재발급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키가 없으면 원천적으로 자동차를 훔칠 수 없다. 그렇다면 최고급 도난차들이 어떻게 멀쩡하게 국내로 들어올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수입 중고차 시장의 한 관계자는 유입된 외제 도난차에 대해 “발리 파킹(주차대행)을 해주는 척하면서 자동차와 열쇠를 한꺼번에 들고 도주한 경우와, 주차장·카센터 등에서 승용차와 키를 함께 훔쳐낸 경우, 그리고 차를 담보로 돈을 빌렸지만 갚지 못해 압류된 경우의 3가지 유형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를 훔칠 수 있는 장소가 주차장 음식점 카센터 등으로 제한돼 있고, 범행수법상 열쇠를 한 개 이상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하라”며 “중고 외제차에 열쇠가 하나밖에 없거나, 키가 하나밖에 없는 상태에서 본사에 추가로 키를 주문했다면 그 차는 훔친 자동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면 보조키를 포함해 2~4개의 키가 지급된다”며 “따라서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사고 팔았다면 열쇠는 2~4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들여오나

‘꾼’들은 최고급 차량만 노린다.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고급차 중에서도 특히 표적이 되는 것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쉐. “벤츠는 수요계층이 넓고, 포르쉐는 상대적으로 훔치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포르쉐는 대표적인 독일의 스포츠카.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차량이지만 “경주용 자동차라는 특성상 전자·편의장비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서울의 한 중고 외제차 거래시장.

차량을 훔쳐낸 ‘꾼’들이 2차로 벌이는 작업은 해당 자동차의 차대번호를 위조하는 것. ‘자동차의 주민등록증’이라 할 수 있는 차대번호 위조기술은 이 바닥에서 ‘첨단’으로 통하는 신기술이다. 차대번호는 얇은 금속판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에 위조나 변조가 대단히 어렵다. 시장을 잘 아는 한 사람은 “전문가를 동원해 일본 현지에서 아예 각자를 쳐서(금속판에 번호를 새겨서) 들여오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내에선 차대번호를 위변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기술이 도난차 유통의 핵심 노하우로 통한다”고 말했다.

위변조는 워낙 감쪽같이 이뤄진다. 때문에 중고차를 거래하는 수입상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도난된 자동차를 정상적인 중고차로 오인, 제값을 주고 들여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도난차 조직이 금융사기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한 관계자는 “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잡은 소위 금융차를 압류해 한국 등으로 밀수출한 뒤, ‘관계’를 맺고 있는 보험사에 도난신고를 해 보험금을 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조직은 고리대금·밀수출·보험사 등 3가지 ‘작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중고차 수입상들 사이에선 “일본의 도난차 전문 대형조직이 한국과 연계돼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전문조직이 부하들을 아르바이트 형태로 음식점 등에 취직시켜 고급차를 훔쳐낸 뒤 차대번호 등을 위조해 한국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수입상들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라며 “국내에 도난차를 공급하는 대표적 조직”으로 일본의 C사를 거론하기도 했다.

차대번호 위조에 비하면 등록서류 위조는 식은 죽 먹기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조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차대번호와 서류 위조를 통해 새롭게 탈바꿈된 도난차는 일본 세관을 거쳐 우리나라로 향하게 된다. 문제의 차량이 한국에 도착하면 세관을 거쳐 배기가스 소음 등 관련검사를 받은 뒤 기준에 합격하면 인증을 받게 된다.

도난차 수입업자는 이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 전문 브로커를 동원해 인증을 대신 처리하도록 한다.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차대번호 위조사실이 드러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관련 기관과 브로커들 사이에 유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입 중고차 매매상은 “인증과 관련해 알려진 전문 브로커만 5~6명”이라며 “일반 차량의 경우 400만~500만원, 도난차량의 경우엔 1000만~1500만원 가량 지불하면 무사히 일이 끝난다는 얘기가 암암리에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어떻게 판매하나

도난차 시장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아무도 ‘도난차’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급하는 쪽이나 공급받는 쪽은 물론, 중간 브로커를 포함한 관련자 전원이 ‘도난차’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왜 이렇게 값이 싸냐”고 물으면 그저 “금융차”라고만 답할 뿐이다.

차를 산 국내 소비자가 해당 차량의 도난 여부를 알아보려면 자동차를 제작한 외국 본사에 차량 차대번호를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1억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차를 산 사람이 자신의 차가 도난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외국에 문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최종 소비자는 자신이 구입한 중고차가 훔친 차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타는 경우가 많다.

도난차 유통은 쌍방향 거래다. 자동차를 훔친 외국의 업자가 국내업자에게 연락해 “이런 차량을 갖고 있다”며 구입을 타진하기도 하고, 거꾸로 수요자 요청을 받은 국내업자가 외국 업자에게 “특정 모델이 있느냐”고 타진하기도 한다. 양쪽의 의사가 일치되면 곧바로 매매가 이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급되는 차량의 모델 색상 옵션 등과 수요자가 원하는 사양은 일치되지 않는다. 게다가 문제의 차량은 도난차. 차를 훔친 국가에선 거래가 불가능하다. 수출상 입장에선 다른 나라로 빼돌릴 수밖에 없다. 도난차를 들여오는 국내 수입상 측에선 위험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자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맞아떨어진다. 거래를 성립시키기 위해 파격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차값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래는 점조직 형태로 이뤄진다. 수입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입상은 통상적으로 중간상에게 도난차 판매를 위탁한다. 이 경우 수입상은 ‘얼마에 들여온 것이니 얼마를 받아달라’고만 말한다.

중간상이 다음 중간상에게 얼마를 받든, 그 다음 중간상이 얼마를 받고 구매자에게 차를 팔든 상관하지 않는다.
도난차는 일반적으로 2~3단계의 중간과정을 거쳐 최종 구매자를 만나게 된다. 수입상이 3000만원을 지불하고 들여온 자동차가 최종적으로 1억5000만원에 팔렸다고 해서, 그가 1억2000만원의 이윤을 남겼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가격 범위는 있다. 수입 중고차 시세가 그것이다. 따라서 최종 구매자라 해도, 일반적으로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 가량 싼 값에 차를 사게 된다. 하지만 해당 차량이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차종이거나 구매자가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 경우엔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물론 있다.

지불방식은 무조건 현금이다. 이 바닥에 외상이나 선불은 없다. 차를 넘겨받는 것과 동시에 현금으로 값을 치른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수증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난차 거래상은 대부분 실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수시로 반납과 재등록을 반복한다. 가게를 내는 경우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수입 중고차 시장에선 “K, Y, C, 또 다른 C씨 등”을 거론하면서 “도난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수입상이 7~8명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고객층은 개인사업자들과 연예인들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제 중고차를 애용하는 대표적 계층이 연예인”이라며 “이 바닥에선 탤런트 S, 가수 Y, K씨와 또 다른 가수 K씨 등이 구입한 외제차가 도난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식별하나

수입 중고차를 사려는 소비자 입장에서 도난차 여부를 식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본사에 차대번호를 통보해 도난여부를 문의하면 되겠지만 ‘같은 모델의 다른 차’로 완벽하게 위조됐을 경우엔 식별이 쉽지 않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차대번호는 일반적으로 뒷좌석이나 조수석 밑부분 또는 트렁크 안쪽이나 엔진룸 등에 새겨져 있다. 눈에 안 띄게 가려져 있기 때문에 찬찬히 살펴야 찾을 수 있다. 이 차대번호와 서류상의 차대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차량은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공식 딜러가 수입한 차량과 비공식 딜러가 들여온 차량의 차대번호가 다르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벤츠의 경우, 공식딜러가 들여온 자동차의 차대번호는 ‘WDB-’로 시작된다. 하지만 비공식 딜러가 들여온 차량은 인증과정에서 새로운 차대번호를 부여받기 때문에, 건교부가 규정한 시리얼 넘버에 따라 ‘K-’로 시작되는 차대번호를 갖게 된다.

가장 손쉽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열쇠가 몇 개냐 하는 점. 앞서 기술한 관계자의 지적처럼 키가 하나뿐이거나 본국에 추가로 열쇠 제작을 주문해 놓은 상태인 수입 중고차는 일단 조심하는 것이 좋다.
웃지 못할 이 바닥의 아이러니는 ‘아무도 손해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도난차를 들여온 사람도, 거래를 중개한 브로커도, 시세보다 싸게 차를 구매한 소비자도, 심지어 차를 도난당한 원래의 주인도 손해를 보지 않는 ‘요지경 구조’가 이 바닥의 특징이다. 한 관계자는 “차를 도난당한 사람은 보험금을 타면 되고, 보험금을 지불한 보험사는 재보험을 청구하면 된다”며 “결론적으로 국제적 규모를 지닌 대형 보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아이러니도 있다. 차대번호를 위조하는 것도, 서류를 조작하는 것도 모두 일본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도난차 수입상이나 브로커가 “장물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처벌할 뚜렷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제 중고차 업자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훔친 차의 유입이 급증, 최소 6000대 이상의 도난차가 전국을 질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난차 유입이 본격화한 것은 최근 3년간의 일이지만 1년에 50~200대 가량 들여오는 전문꾼만 7~8명에 달하는 데다, 개인적으로 매년 2~3대씩 들여온 뒤 치고 빠지는 ‘나까마’들이 수백 명에 이르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기에 본의 아니게 도난차와 직면할 수밖에 없는 업종 특성을 감안해 본다면 실제로 유입된 도난차의 총수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거리로 나가보면 최근 2~3년간 수입차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면서 “국내 경기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부자가 급증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외제차가 늘어난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건설교통부 통계는 “2005년 1월 현재, 국내에 등록된 수입승용차 수가 11만961대”라고 밝히고 있다. 업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시내를 질주하고 있는 수입차 20대 중 1대 이상이 도난차란 계산이 나오게 된다. 한국이 ‘국제 도난차 시장의 메카’란 오명을 뒤집어쓸 날이 머지않았는지 모른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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