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여권의 통큰 도박과 박 대표
기사입력 : 2005.02.13, 18:01

아이가 급류에 떠내려간다. 많은 사람들이 겁이 나 어쩌질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한 시민이 옷도 벗지 않은 채 물에 뛰어들어 아이와 함께 물 밖으로 나왔다. 용감한 시민에게 우레같은 박수가 보내진다. 그 용감한 시민 혼잣말로 “어떤 ××가 떠밀었어? 큰일날 뻔했잖아”라고 투덜댄다. 케케묵은,그래서 썰렁한 우스갯소리다.

당사자가 들으면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요즘 이 썰렁한 우스갯소리처럼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 권력에 떠밀려서 투사로 변신해가는 인사가 있는 것 같다. 하기야 투사라는 게 자의에 의해서보다는 모진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긴 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정국은 그보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그러니까 박 대표의 돌아가신 아버지 평가 작업으로 더 시끄러울 것 같다. 그 와중에서 박 대표는 수없는 담금질을 거쳐 진정한 철의 여인으로 우뚝 서거나,아니면 고철 조각으로 전락할 것이고.

정부·여당의 계획대로라면 일제 때부터 1979년 사망 때까지 박 전 대통령의 주로 어두운 행적에 대한 해부가 금명간 시작된다. 국회 친일규명위원회는 그의 친일 행적을,국정원의 과거사진실규명위는 정수장학회사건,동백림사건,김대중납치사건,인혁당사건,김형욱실종사건 등 그의 재임 중 의혹 사건들을 파헤친다. 한일협정 문서가 이미 공개됐고 국방부가 실미도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히는 등 군,검경도 비슷한 작업에 동참했으며,문예계 등 사회 각 분야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다.

이같은 작업들이 바람직한지,다시 말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작업들이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박 대표를 겨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박 대표로서는 기왕 이리 된 이상,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상황을 맞이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박 대통령 시절 민주화 운동(사안에 따라 다른 시각의 성격 규정도 있겠지만) 등과 관련하여 엄청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정권의 핵심에 포진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들로선 보복까진 아니더라도 진상을 밝히고 신원(伸寃)을 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박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그의 정부 때 지금과 같은 일이 없었던 것은 그가 노 대통령보다 훨씬 복잡한 사고의 소유자였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박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또 하나의 까닭은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부채를 함께 안아야 하는 원칙 때문이다. 박 대표의 오늘이 있고 유력한 대선 후보군에 포함된 배경엔 물론 본인의 인물됨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후광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으면 그의 그림자도 안을 수밖에 없다.

또 박 대표로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심판대 위에 세운다는 게 여간 언짢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짧지 않은 기간 한 나라를 이끌면서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아니 두고두고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수용해야 한다.

“정부의 과거사 조사 자체도 언젠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는 박 대표의 말대로 지금의 박정희 평가는 다시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박 대표는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여러 차례의 평가 위에,다시 말해 아버지의 공과 과를 모두 상속한 대차대조표 위에 독자적인 리더십을 개척함으로써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유산으로 아버지의 빚을 갚고,혹 모자라면 자신이 벌어 갚겠노라고 약속해야 한다. 박 대표로서는 여권의 통큰 도박의 성격이 없지 않은 지금의 상황이 지도자로서 홀로 설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관문인 셈이며,그래서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감히 청하진 못했으나 원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 일이라는 게 앞의 우스갯소리처럼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남에게 떠밀려 익사하는 경우도 많지만,때론 영웅으로 우뚝 서는 수도 드물지 않다. 대통령이 된 두 김씨를 비롯하여 현 정권의 핵심들도 그러한 측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여권의 통큰 도박에 올려진 박 대표가 익사할지 영웅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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